사과·배값 1년 새 50% 올라
“올해는 차례상 안 차릴 것”
시장 찾은 소비자들 ‘한숨’
“씨알 굵은 사과 한번 와서 보세요. 거의 원가에 드려요.” “사과 크기는 괜찮은 거 같은데….”
4일 오후 2시 서울 동대문구 청과시장 내 청과물 상가. 설 명절을 앞두고 상인과 고객의 흥정이 한창이었다. 상인은 발걸음을 멈춘 이들에게 4만5000원짜리 사과 상자를 들어 보였다. 상자를 한참 들여다보던 노부부는 몇번 상자를 매만지더니 이내 발길을 돌렸다.
주말을 맞아 붐비는 건어물·찬거리 골목과 달리 청과물 상가가 모인 골목은 비교적 한산했다. 상인들은 바구니에 담긴 과일을 다듬거나 스마트폰을 보면서 자리를 지켰다. 남편과 과일을 사러 나온 김모씨(69)는 “농산물 가격이 1년 전보다 두 배씩은 뛴 것 같다. 얼마 전 대형할인점에 갔더니 제일 작은 사과 하나가 3000원이어서 놀랐다”며 “작황이 안 좋아서 그런지 감, 사과를 비롯해 안 비싼 게 없다. 올해부터는 차례상을 안 차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1년 새 훌쩍 뛴 물가에 설 명절 차례상 준비를 앞둔 시민들의 시름이 깊다. 특히 차례상에 주로 올리는 사과·배의 가격이 전년 대비 50%가량 뛰었다. 시민들은 물품을 낱개 단위로 사거나, 더욱 저렴한 품목으로 눈길을 돌리는 모습이었다.
시장에서 만난 최모씨(57)는 “차례상에 올릴 귤, 사과, 한라봉 등을 사러 왔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 아직 하나도 못 샀다. 작년에는 사과 한 상자를 2만5000원이면 샀는데 지금은 제일 싼 게 4만5000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해산물이나 육류 가격은 덜 올랐지만 그렇다고 늘 차리던 차례상 메뉴를 바꿀 수는 없지 않겠나”라며 “양을 좀 덜 사거나 저렴한 상품을 찾아 시장을 좀 더 돌아볼 생각”이라고 했다.
이명숙씨(68)는 “전통시장이 대형마트보다 가격이 싸서 자주 찾았는데 여기도 배 하나에 5000원이 넘어 가격이 많이 오른 게 느껴졌다”며 “지금까지는 꼬박꼬박 차례상을 준비해왔지만 앞으로는 좀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할 것 같다. 올해는 떡이랑 한과 위주로 마련할 생각”이라고 했다.
대형마트에서 만난 소비자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전날 광진구의 한 마트에서 만난 문모씨(59)는 “사과는 너무 비싸 귤이라도 사려고 했는데 귤도 한 상자에 2만원이 넘어 쉽사리 손이 안 간다”면서 “차례상에 들어갈 총비용이 작년보다 1.5배 정도는 더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과일류 물가 오름세에 놀랐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네이버 생활정보 카페에서 한 누리꾼은 “아이들이 과일을 너무 좋아하는데 작년 추석 이후로 가격이 너무 뛰어서 못 사주고 있다”며 “아쉬운 대로 (가격이 덜 오른) 바나나만이라도 사고 있다”고 했다. “과일값 보고 고기값인 줄 알았다” “올해 처음으로 차례상에 올릴 밀키트를 알아봤다” “컵과일이나 못난이 과일을 찾아봐야겠다” 등 반응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