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거부 법망’ 피하는 의사들…이번엔 “파업” 아닌 “집단사직”

강은 기자

의사 파업권 유무, 매번 논쟁

위법 논란 의식해 명칭 변경

행정명령 피하려 사직 택한 듯

법적 분쟁 땐 ‘사유’ 등 쟁점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 중단 방침을 밝힌 전국 종합병원 전공의들이 실제 집단행동에 들어가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요 쟁점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의료법이 금지하는 ‘진료 거부’에 해당하는지, 여기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이 과거부터 파업, 휴업, 사직 등 집단행동의 이름을 바꾸고 있는 것은 위법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와 2014년 원격의료 논란, 2020년 의료정책 반대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이뤄질 때마다 이들에게 파업권이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노동3권이 보장하는 파업으로 인정되면 집단행동으로 발생한 피해에 대한 책임이 면제될 수 있다. 적법한 파업이 되려면 참여자가 노동법상 노동자여야 하고, 노동조합이 주도해야 하며, 파업의 목적이 정당해야 하는 등의 요건을 갖춰야 한다. 전공의 등 종합병원 소속 의사들이 노동자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전공의협회·의사협회를 노조로 보기는 어렵다. 파업의 목적도 ‘근로조건 유지 및 개선’과 거리가 멀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번 집단행동은 전공의들이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이들이 명시적으로 ‘파업’이라는 용어를 내세우지 않는 것은 법적 논란을 최대한 피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강연배 보건의료노조 선전홍보실장은 “지난 정부 때만 해도 의사들은 집단휴업과 파업이라는 용어를 섞어 썼다”면서 “비슷한 일이 있을 때마다 파업권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정부에서도 강한 조치를 시사하니 조금이라도 논란을 피하려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휴진을 넘어 사직을 택한 것 역시 정부의 행정명령을 피할 목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직한 이상 업무개시명령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논리를 구성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집단행동이든 ‘진료 거부’ 행위로 인정될 경우 의료법 위반을 피해가기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의료법 15조는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같은 법 59조는 “보건복지부 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하여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그럴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면 업무개시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수사 및 재판이 진행되면 의료법이 단서로 두는 ‘정당한 사유’가 주요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박호균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변호사는 “개인적인 사유를 들어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더라도 조사를 하다 보면 실질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당한 사유란 본인이 아팠다거나 중차대한 일신상 사유가 있는 등 일반인의 상식선에서 납득 가능한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민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변호사는 “업무개시명령 불응에 따른 의료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는 적용 가능성이 높다”면서 “다만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 집단행동을 어떻게 봐야 할지, 업무개시명령 송달을 받지 않은 경우 어떻게 할지 등 부수적 쟁점도 따라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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