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사회 혼란 야기?···윤 대통령 풍자 영상 차단 논란

오동욱 기자
사회관계망에 유통되는 ‘가상으로 꾸며본 윤석열 대통령의 양심고백 ’영상. SNS 갈무리

사회관계망에 유통되는 ‘가상으로 꾸며본 윤석열 대통령의 양심고백 ’영상. SNS 갈무리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통신소위가 23일 임시회의를 열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윤석열 대통령 양심고백 영상’ 에 대해 접속 차단을 의결하자 “대통령 ‘심기경호’를 위한 무리한 규정 적용”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언론 관련 시민단체와 전문가는 방심위가 ‘사회 혼란 야기’를 이유로 해당 안건을 상정한 것은 부적절하며,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23일 틱톡에 게재된 ‘가상으로 꾸며본 윤석열 대통령의 양심고백 영상’이라는 제목의 44초 분량 영상은 윤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이었던 2022년 2월 TV조선 제20대 대선 후보 방송 연설을 가져다 짜깁기한 영상이다. 영상 원본에서 윤 대통령은 “저 윤석열의 사전에 민생은 있어도 정치 보복은 없습니다”라고 말하지만, 짜깁기 영상에서는 “저 윤석열의 사전에 정치 보복은 있어도 민생은 없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온다.

“‘사회혼란 야기’ 이유로 안건 상정하는 것은 부적절”

방심위는 해당 영상이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라며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8조 3항 카목을 적용해 해당 영상 접속 차단을 의결했다. 해당 조항에서는 ‘그 밖에 사회적 혼란을 현저히 야기할 우려가 있는 내용’이 담긴 정보를 유통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규정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고 “해당 조항은 그동안 조문 자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으며, 정부에 비판적인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 활용되면서 수많은 비판을 받아왔다”라고 했다.

당초 경찰은 ‘명예훼손’을 명분으로 접속 차단을 요청했는데, 방심위가 ‘사회 혼란 야기’에 초점을 맞춰 안건을 상정한 것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전자의 경우 피해 당사자 본인 동의가 필요하지만, 후자는 동의가 필요 없어 긴급하게 안건을 상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는 전날 성명에서 “권리침해 대응팀에서 공문을 접수하기로 했다가 류희림 방심위원장 보고 후 ‘딥페이크 정보’로 탈바꿈되더니 ‘사회혼란 야기 정보’ 담당 부서인 정보문화보호팀에서 공문을 접수했다”면서 “예정에 없던 23일 긴급소위가 소집됐다”고 설명했다.

김준희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장은 이날 통화에서 “공인의 경우 명예훼손으로 인한 삭제는 피해 당사자 또는 대리인이 직접 신고해야 안건으로 상정할 수 있지만 사회적 혼란의 경우엔 방심위 자체 상정이 가능하다”라면서 “요청된 취지와 다르게 위원장 지시에 따라 심의가 이뤄졌다”라고 말했다.

‘단순 짜깁기’ vs ‘딥페이크’ 용어 논란

해당 영상이 방심위 주장대로 ‘딥페이크’ 콘텐츠에 해당하는지도 의견이 갈린다. 딥페이크는 ‘딥 러닝(컴퓨터가 스스로 외부 데이터를 조합, 분석하여 학습하는 기술)’과 ‘페이크(거짓)’의 합성어인데, 전문가마다 인공지능(AI) 기술 이용 여부를 두고 그 정의가 제각각이다.

강정수 블루닷 AI 연구센터장은 “딥페이크의 딥은 딥러닝에서 나온 것이라서 인공지능을 이용해야만 딥페이크 영상이라고 볼 수 있고, 페이크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며 “과거 한 언론사에서 나온 영상을 단순히 짜깁기한 것은 딥페이크라고 볼 수 없다”라고 봤다.

반면 이상욱 한양대 교수(철학과·인공지능학과)는 해당 영상에 대해 “딥페이크는 기존에 인간이 불가능했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을 훨씬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라면서 “바뀐 문장 어순도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이 영상은) 딥페이크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딥페이크 용어를 남용해 콘텐츠를 판단할 때도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성명에서 “실제 존재하는 이미지나 영상 등 콘텐츠를 편집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밈’이라는 게 있다”라면서 “그런 밈의 대상은 대중에 널리 알려진 공인이나 유명인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을 풍자한 영상에 단지 ‘정부 비판적인 내용이 담겼다’라는 이유만으로 검열한다면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방심위의 ‘심기경호’”

방심위가 고위공직자를 풍자하는 영상 유통을 차단하는 행위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디어 환경을 모니터링 하는 사단법인 오픈넷은 이날 성명을 내고 “가상으로 꾸민 영상임을 적시하고 있고, 내용상 건전한 사회통념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윤 대통령이 스스로 그런 발언을 하였을 거라고 믿을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며 “풍자적 표현물이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이는 대통령과 정부에 대한 비판적 표현을 담고 있기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욱더 강하게 보장받아야 할 정치적 표현물”이라고 지적했다.

오픈넷은 “이 풍자적 표현물의 문제는 대통령이나 지지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는 것뿐”이라며 “경찰과 방심위는 최초 게재된 지 1년 가까이 지난 동영상에 대해 ‘긴급심의’까지 열어가며 대통령의 심기 보호를 위해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이고 반민주적인 검열을 자행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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