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국정원 민간인 사찰 의혹 주인공 주지은씨 “딸 학원까지 감시···‘나를 엮으면 될 것 같다’고 했다”

오동욱 기자
주지은씨(45)가 일하는 가게에서 바라본 편의점의 모습. 국가정보원 직원 이모씨(46)는 주씨를 미행하다 편의점 안쪽에서 주씨를 촬영했다. 오동욱 기자 사진 크게보기

주지은씨(45)가 일하는 가게에서 바라본 편의점의 모습. 국가정보원 직원 이모씨(46)는 주씨를 미행하다 편의점 안쪽에서 주씨를 촬영했다. 오동욱 기자

지난달 22일 주지은씨(45)는 남편과 함께 일하는 가게에서 진보단체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후배들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다. 후배가 물건을 사러 편의점에 다녀오더니 “언니, 저기(편의점)에서 이상한 아저씨가 가게를 찍고 있어요. 가게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촬영하고 있고, 언니도 찍힌거 같아요”라고 말했다. 도둑 촬영이었다. 가게 사장과 직원인 남편이 뛰어 나갔다.

“민간인이예요.” ‘당신 누구냐’는 주씨의 질문에 이모씨(46)가 답했다. 민간인이라니. 처음 듣는 자기소개였다.

“민간인인 건 알겠는데, 우리 다 민간인이잖아요. 직업이 뭐예요?” 주씨가 물었다. 이번에는 “국방부 소속 헌병대”라고 말했다. ‘헌병이 왜 나를 미행할까’ 주씨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헌병으로 군대를 전역한 신랑이 물었다. “헌병대장 직위가 뭡니까?” 이씨가 횡설수설했다.

주씨는 이씨를 붙잡은 지난달 22일을 이렇게 기억했다. 확인해보니 이씨는 국가정보원 직원이었고, 이씨의 주요 사찰 대상은 주씨였다. 당시 주씨 측은 이씨의 휴대전화에서 주씨 행적을 미행한 사진들을 다수 발견했다. 여기엔 주씨의 지인과 남편, 직장 동료, 심지어 초등학생 자녀도 있었다. 주씨와 지난 3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나 당시 상황과 심정을 들었다. 다음은 주씨와의 일문일답.

-이씨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붙잡아서 경찰에 넘기기 전까진 몰랐어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경찰도 있고 그래서 경찰인가 싶기도 했어요. 지난달 22일 (윤석열 정부의 민간인 사찰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 뉴스가 하나 떴어요. 국정원 직원이 불법 감금당했다는 내용의 연합뉴스 기사였어요. 그때 국정원 직원이라고 처음 확인했어요.”

-국정원 직원 이씨의 휴대전화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까.

“제가 삶이 단조로워요. 아침에 아이 학교 보내고 나서 대부분은 이제 맨발 걷기 하면서 (항암) 치유 생활하고요. 다시 아이 학원 보내고 그 틈을 타서 가끔 후배들 만나서 차 마시고요. 그러다 일주일에 한 번 아르바이트하고 이게 다예요. 이런 일상을 일거수일투족 너무 세세하게 다 적어놨어요. 예를 들면 ‘(집) 3층에 제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아직 안 나온 것 같다’ 이런 거요. 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언제 나오는지 확인했더라고요. 아이 학원이나 학교까지 다 갔고, 학원을 누가 운영하는지도 파악하고 있었어요.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도) 다 파악했어요. 제가 만나는 지인들이라고 해봐야 서너 명인데 지인들도요. 가게 직원들은 다 찍혔고요.”

-미행하고 사진 촬영하고 이를 단체 대화방에서 공유한 사실을 알고 기분이 어땠나요.

“황당했어요. 왜냐하면 치유 생활을 하다 보면 인간관계가 단절되거든요. 저는 (후배들과) 가끔 만나서 차 마신 거밖에 없는데 ‘사상교육’이라고 하니까. 또 9년 전부터 제가 위암 진단을 받아서 치유 활동으로 맨발 걷기를 해요. 맨발로 걷다가 휴대전화 보고 있는데 그걸 ‘지령 수수하고 있다’고 돼 있었어요. 제일 어이 없었어요.”

-대진연 회원들과는 실제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어떤 행동을 했나요.

“애들 만나서는 푸념을 많이 해요. 애들이 ‘활동하기 힘들다’고요. 그럼 저는 ‘열심히 해라. 근데 내가 해줄 게 없다’ 이런 말을 하죠. 걷다가 휴대전화 본 거는 뉴스를 보기도 하고 아침을 먹어야 하기도하고 해서 온라인 쇼핑몰로 (식자재를) 샀어요. 세금이 아까워요. 저 쫓아다니면서 (이씨가) 월급으로 700만원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이씨의 단체 대화방 대화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은 뭐였나요.

“저를 조롱하는 말이 나와요. 토요일엔 딸과도 맨발로 같이 손잡고 걷거든요. 근데 (대화방에선) ‘저 여자 제정신 아니다’라고, ‘딸도 신발 벗고 걷게 한다’고 해요. 정확한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말을 하나 싶어요.”

주지은씨(45)가 4일 대진연 후배들과 자주 가던 카페를 바라보고 있다. 오동욱 기자

주지은씨(45)가 4일 대진연 후배들과 자주 가던 카페를 바라보고 있다. 오동욱 기자

- 왜 국정원 같은 공안기관이 본인을 감시했다고 생각하나요.

“제가 덕성여대에서 2002년도에 총학생회장을 하고 진보적인 활동을 했어요. 그때 ‘쏘셜메이커’라는 전국 연합 사회과학동아리를 만들고 간사로 있었어요. 왕재산 간첩단의 지령문에 다른 진보 단체들과 함께 우리 동아리 이름이 같이 있었어요. 이번 단체 대화방을 보고 저까지 그 사건에 연루돼 있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어요. 그 사람들 대화방에 ‘왕재산 사건에 주지ㅇ 이름이 있었으니 엮으면 될 거 같습니다’라고 대화를 주고받았더라고요. 거기부터 시작된 건가 생각이 들어요.”

-당시 동아리는 어떤 활동을 주로 했나요.

“진보적인 정치·사회·경제 책들을 읽고 토론하는 동아리예요. 장하준 선생 책 중에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이런 책을 읽었어요. 촛불 집회 있으면 나가 보자 하기도 했고요.”

-대학 후배들과 연령대 차이가 크게 나는데, 후배들과 어떻게 그렇게 가까이 지낼 수 있었나요.

“대학 후배들도 있고요. 이 친구들이 활동을 열심히 하니까 그 소식이 언론에 나오기도 하고요. (대진연) 재학생들을 후원해주는 행사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게 연결되다 보니까 이어졌어요.”

-공안기관에서 한 사찰의 목적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휴대전화 내용을 보면 프로젝트 날짜를 4월22일까지 해놨어요. 사건을 터뜨려서 정국을 얼어붙게 만드는 카드를 만들려는 거 아니었나 싶어요. 정권에 비판하는 사람들을 눌러놓기 위한 도구로요. 총선 전이나 후든 터뜨려서 이래저래 야당과 연결돼있다 이런 식으로 여론몰이 하려고 한 거 아닐까요?”

-공안기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한테 문제가 있다면 영장 청구해서 조사하거나 연행하면 되잖아요. 이건 어떻게든 건수 잡으려고 한 거잖아요. 말이 되나 싶어요. 데려가서 고문하는 걸 못하니까 이런 식으로 방법을 바꿔서 짜 맞춰서 구속하는 건지, 그게 어떻게 증거가 되나 싶어요.”

-사찰로 인해 삶이 달라진 점이 있나요.

“주변이 다 의심이 돼요. 제가 양재천 둑길을 자주 걸어요. 누가 제 쪽으로 사진을 찍으면 ‘이리 와보시라. 사진 보여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보고 어머님 혹시 오늘 스포츠 선생님 부르지 않으셨냐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강남 엄마들이 스포츠 선생님을 따로 부르나 봐요. 선생님이 학생들한테 자기 위치를 알려주려고 사진 찍은 거더라고요. 원래 그런 의심이 없었는데…. 사람을 잘 믿었거든요. 이제는 다 의심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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