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루인형 키링’ 보면, 고물가 시대 MZ ‘소비 심리학’ 보인다

이예슬 기자

“유행은 잠깐, 절약은 오래 간다”…‘가성비 대체품’ 인기

3천원 화장품에 만족…거지방·무지출 챌린지 ‘유사 현상’

# 직장인 김희수씨(29)는 요즘 유행하는 ‘키링’(열쇠고리)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가 깜짝 놀랐다. 손바닥보다 작은 키링이 3만~5만원에 판매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뜻 지갑을 열기에 부담스러운 가격에 고심하던 김씨는 1000원짜리 모루(철사에 털실을 감아 만든 끈)로 손수 만든 ‘모루인형’을 가방에 키링으로 달았다.

# 직장인 이모씨(29)는 최근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유행시킨 기초 화장품에 관심이 갔다. 해당 화장품은 50㎖에 3만원대였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저렴이 버전’(저렴한 상품을 이르는 말)은 12㎖에 3000원이었다. 이씨는 “비싸다고 다 효과가 뛰어난 건 아닌데 돈을 들이기 아깝다”고 생각해 ‘저렴이 버전’을 구매했다.

전모씨(29)가 동대문 시장에서 한 줄에 500원 하는 모루(철사에 털실을 감아 만든 끈)를 구매해 직접 만든 ‘모루인형 키링’. 전씨 제공

전모씨(29)가 동대문 시장에서 한 줄에 500원 하는 모루(철사에 털실을 감아 만든 끈)를 구매해 직접 만든 ‘모루인형 키링’. 전씨 제공

고가의 키링 대신 모루를 인형 모양으로 구부리고 눈알과 장식을 달아 키링으로 만드는 ‘모루인형 키링’이 MZ세대들에게 인기다. 고가 화장품과 성분은 비슷하지만, 용량을 줄이거나 저렴한 포장 용기로 단가를 낮춘 ‘저렴이’ 화장품도 인기다. 고물가에 MZ세대의 주머니가 얇아지며 유행도 ‘가성비’를 따지는 모양새다.

MZ세대들 사이에선 ‘고가 유행템’보다 ‘가성비 대체품’이 낫다는 반응이 나온다. 주변에 직접 만든 모루인형 키링을 선물했다는 전모씨(29)는 “동대문 시장에 가면 모루 한 줄에 500~1500원, 인형 눈알은 몇십원”이라며 “4000~5000원이면 맘에 드는 모양과 색으로 만들 수 있어 비싼 기성품보다 낫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모씨(26)는 “요즘은 3000원짜리 화장품도 포장 용기가 좀 부실할 뿐 내용물은 비슷하다”며 “어차피 유행은 금방 바뀌는데 비싼 걸 사는 건 낭비”라고 말했다.

온라인상에서는 가성비로 유행을 즐기는 ‘팁’도 인기다. 유튜브에서는 모루인형 만드는 법을 소개한 ‘4300원으로 인형 키링 만들기’ 영상은 조회수 97만회를 기록했다. X(구 트위터)의 한 이용자는 “3000원짜리 블러셔 2개 섞어 바르면 아이돌이 바른 2만원짜리 블러셔와 똑같은 색”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X(구 트위터)의 이용자들이 “3000원짜리 ‘저렴이 버전’ 색조 화장품이 고가 화장품과 색깔이 비슷하다”면서 ‘저렴이 버전’ 화장품을 추천하는 모습. X 캡처

X(구 트위터)의 이용자들이 “3000원짜리 ‘저렴이 버전’ 색조 화장품이 고가 화장품과 색깔이 비슷하다”면서 ‘저렴이 버전’ 화장품을 추천하는 모습. X 캡처

이들은 ‘가성비 대체품’의 유행이 “높은 물가 때문”이라 입을 모았다. 김씨는 “김밥 한 줄이 5000원 하는 걸 보고 물가를 실감했다”면서 “유행하는 물건을 가지고 싶지만 잠깐의 흥미 때문에 소비를 하기에는 부담이 커 저렴하게 흥미를 충족시킬 대체품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씨는 “물가는 오르고 월급은 그대로인데 달다가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키링을 4만원씩 주고 사는 건 너무 부담스럽다”며 “동대문 시장에 가면 키링 재료를 사러 온 1020세대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 특성에 ‘절약 문화’가 결합한 결과라고 봤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선 개인의 소비·지출 내역을 메신저로 인증하고 평가하는 ‘거지방’, 지출을 줄이며 SNS에 인증하는 ‘무지출 챌린지’ 등 ‘절약 문화’가 유행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물가가 높다 보니 가성비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재미를 추구하는 게 MZ세대”라며 “직접 키링을 만들거나 저렴한 화장품으로 고가 화장품의 효과를 내는 팁을 공유하며 재미를 느끼는 것 역시 인기 요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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