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자에게 알고리즘 공개하라” EU 입법지침···한국은?

조해람 기자

노동권 녹아내리는 ‘플랫폼 노동’ 시대

‘글로벌 스탠더드’ 세운 EU···한국은?

한 배달 노동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달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한 배달 노동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를 달리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유럽연합(EU) 의회가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의 지시·통제를 받으며 일하는 이들을 ‘노동자’로 추정하는 내용의 입법지침을 가결했다. 플랫폼에 알고리즘 공개와 노동자 참여 보장 의무도 부과하겠다고 했다.

플랫폼 노동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오늘날 노동권과 관련된 ‘글로벌 스탠더드’를 세운 셈이다.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알고리즘을 둘러싼 갈등이 계속되는 한국도 EU처럼 노동권을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자 두텁게 보호···“기업, 알고리즘 설명해야”

27일 민주노총법률원 부속 노동자권리연구소의 ‘유럽연합 플랫폼 노동 지침의 의의와 주요 내용’ 이슈페이퍼를 보면, EU 의회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플랫폼 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입법지침’을 가결했다. EU 입법지침은 회원국 각국의 입법에 대해 구속력을 가지는 지침이다. 입법 시 지침을 불성실하게 이행한 국가는 EU 사법재판소에서 막대한 벌금을 부과받을 수 있다.

이번 입법지침은 플랫폼 노동의 급격한 확산으로 노동권을 보호할 법·제도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마련됐다. 현재 EU 플랫폼 노동자는 43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된다. EU는 2021년부터 관련 논의를 시작했는데, 3년 동안 경영계와 노동계가 긴 씨름을 벌인 끝에 최근 지침이 가결됐다.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서서 종이에 무언가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한 배달 노동자가 잠시 멈춰 서서 종이에 무언가 쓰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침 주요 내용은 ‘플랫폼 노동자성 추정’ 조항과 ‘알고리즘 접근·참여권’ 조항이다. 노동자성 추정 조항은 플랫폼 노동자가 개인사업자로 잘못 분류되는 것을 막는 내용이다. 플랫폼 노무제공자가 노동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는 플랫폼의 지시·통제 등 ‘실제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실’을 기준으로 봐야 한다고 지침은 규정했다. 각국은 입법에 이 같은 사항을 ‘노동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반영해야 한다.

지침은 이 기준을 충족하는 노무제공자를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에 대한 반박 입증책임은 사용자가 지도록 했다. 지시·통제를 받는 노동자는 자동적으로 노동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플랫폼 노무제공자는 자신이 ‘개인사업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직접 법원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사용자가 ‘해당 노무제공자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지침은 플랫폼의 배차·일감배정 등 알고리즘에 대한 접근·참여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플랫폼은 현재 알고리즘 사용이나 도입 진행 여부, 알고리즘 결정의 종류, 알고리즘 수집의 정보·변수, 계정 제한·해지 사유, 보수 지불 거부 사유 등을 노동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노동자의 사적 대화나 노동3권·기본권 관련 개인정보 수집을 금한다는 내용도 있다.

노동자는 알고리즘으로 생성된 개인정보를 플랫폼에 요구할 수도 있다. 플랫폼은 노동조합 등 노동자대표가 최소 2년마다 알고리즘 평가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이들이 요구하면 언제든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노동자대표가 알고리즘 재검토·개선을 요구하면 플랫폼은 2주 안에 조치를 해야 하고, 조치가 불가능하면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 알고리즘 관련 조항들은 노동자성 추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노무제공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글로벌 스탠더드’와 완전히 반대인 한국?

EU의 입법지침은 플랫폼 노동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한국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노동자성 추정 법·제도가 없다. 노동자성 입증 책임도 노동자에게 있다. 플랫폼 노동자가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먼저 직접 법원에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플랫폼 노동자들은 부당한 계약 종료, 교섭 거부, 최저임금 미지급 등 다양한 피해에 시달린다.

알고리즘 관련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 탓에 플랫폼 노동자들은 자신이 받는 보수나 불이익 조치의 근거조차 알지 못한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 때문에 노동자들은 플랫폼이 시키는 대로 무작정 일을 많이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과로와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슈페이퍼를 집필한 윤애림 노동자권리연구소 소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한국 정부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호하겠다고 말하지만 미사여구일 뿐, 정작 실효성 있는 보호 대책은 전혀 마련하고 있지 않다”며 “EU의 이번 지침은 플랫폼 노동에 관해 글로벌 스탠더드라고 볼 수 있는 최초의 입법으로, 고용관계(노동자성)와 관계없이 플랫폼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호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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