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서 사라지는 ‘학생 인권 보호’ 근거…상담·구제 길 막힌다

배시은 기자

충남·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집단 진정 등 행정 절차 차질
인권옹호관 대신 ‘갈등관리위’
두발·복장 규제 부활 우려도
학생들 “침해 땐 대응 어떻게”

수도권 초등학교에 다니는 이규언 학생(12)은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 경기도에서도 다음달 학생인권조례 대신 교직원·보호자 등의 권리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학교 내에서 인권이라는 단어를 아예 없애는 것 같다”며 “인권조례가 사라진 후에는 인권 침해를 받았을 때 뭘 근거로 반박해야 할까”라고 말했다.

지난달 충남과 서울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잇따라 폐지되면서 교육 현장에서는 인권조례 부재가 불러올 혼란에 관한 우려가 나온다.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근거하는 학생인권 전문기관들의 운영이 어려워지고, 학생인권 침해 사안에서 구제 절차를 요구하는 법적 근거가 미비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조례 폐지에 따라 ‘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운영이 불투명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먼저 나온다. 학생인권옹호관은 학생인권 침해 사안에 대한 조사와 시정 및 조치 권고, 학생 상담 등을 담당하는 계약직 공무원이다.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옹호관을 장으로 두고 조사와 교육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서울시교육청 학생인권교육센터는 지난해 학생인권 상담 391건과 권리구제 접수 167건을 다뤘다.

국민의힘 서울시의원들은 지난달 26일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는 대신 ‘학교구성원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 조례는 학교구성원 간 갈등을 예방하고 중재하는 ‘교육갈등관리위원회’를 둘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학생인권옹호관과 학생인권교육센터에 상응하는 기구다.

공현 청소년시민전국행동 활동가는 “학생인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구인 학생인권옹호관 대신 갈등관리위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라며 “(갈등관리위 운영은) 학생인권 침해 사항에 대해 인권 문제가 아닌 학내 갈등이나 분쟁 문제로 보는 접근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조례가 사라지면서 인권 침해 사례에 진정을 넣는 등 행정 절차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의 정민석 이사장은 “2021년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학교에서 겪었던 차별 사례를 모아 서울시교육청에 집단 진정을 넣은 적이 있다”며 “인권 침해 사례에 관해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조례가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띵동은 2021년 청소년 성소수자 106명의 요구사항을 민원으로 내고 학생인권옹호관과 면담하는 등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청소년 인권활동가들은 두발규제·상벌점제 등을 정한 ‘학칙’의 반인권적 요소를 제재할 제도적 근거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복장·두발을 규제하는 등 생활지도와 관련한 엄격한 학칙이 부활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학생인권조례에는 복장·두발 규제를 금지하는 내용이 있다. 이외에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학칙을 제정하는 절차와 권리를 명시하는 등 학칙과 관련해 학교가 지켜야 할 의무 등이 함께 담겨 있다.

처벌조항이 없는 등 강제성이 약하다는 한계가 있지만 조례가 인권 침해 요소가 있는 학칙에 대응할 수단이 되어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의 난다 활동가는 “조례가 강제성이 강한 것은 아니지만 교육청에서 조례를 근거로 시정을 권고했을 때 학교에서 무시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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