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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역 학교들, ‘유해도서’ 압박에 성교육 도서 2500권 폐기

김나연 기자
도서관에 책들이 놓여 있다. pixabay

도서관에 책들이 놓여 있다. pixabay

일부 시민단체가 ‘동성애를 조장한다’ 등의 이유를 들어 유해도서로 지적한 성교육 도서들을 경기지역 학교들이 최근 1년간 2500권 넘게 폐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청이 “해당 도서들을 처리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두 차례 보내자, 일선 학교들이 압박을 느끼고 폐기한 것으로 보인다.

7일 강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받은 ‘학교도서관 성교육 도서 폐기 현황’을 보면, 경기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지난해 3월부터 지난 2월29일까지 1년간 성교육 도서 총 2528권이 폐기됐다. 폐기 도서 대부분은 지난해 시민단체가 유해도서로 지정한 141권에 포함된 도서들이었다.

일부 보수단체의 ‘성교육 도서 검열’이 교육계까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보건학문&인권연구소’ 등 일부 시민단체는 “동성애 유발” “적나라한 성기 표현” 등을 이유로 성교육 도서 141권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서 목록에는 <성교육 상식사전> <스파이더맨 가방을 멘 아이> <나의 첫 젠더 수업> <생각이 크는 인문학 시리즈>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에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11월 관내 초등학교에 “부적절한 논란 내용이 포함된 도서에 대해 교육목적에 적합하도록 조치하라”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지난 2월에는 ‘성교육 도서들의 처리 결과’를 제출하라고 전달했다.

시민단체가 지난해 10월 경기지역 초등학교에 보낸 청소년 유해도서 분리제거 재협조요청 문서. 이덕주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회장 제공

시민단체가 지난해 10월 경기지역 초등학교에 보낸 청소년 유해도서 분리제거 재협조요청 문서. 이덕주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 회장 제공

전문가들은 시민단체가 지적한 성교육 도서들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간행물윤리위원회(간윤위)는 시민단체들이 유해도서 심의를 청구한 68권 중 67권이 유해 도서에 해당하지 않다고 의결했다. 간윤위 관계자는 “청소년 연령에 따라서 보호자의 지도가 필요한 부분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봤을 때 청소년 유해 도서가 될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김미리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위원장이 사서교사, 학부모, 성교육 전문가 등 14명과 진행한 ‘학교도서관 내 도서 선정 기준 및 내용 관련 정담회’에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한다” “모두의 평등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하는 좋은 도서” 등 긍정적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한국학교도서관협의회의 ‘성교육 도서 연구활동 보고’에도 청소년이 도서의 일부 내용에 매몰되거나 편향된 의견만 접하지 않도록 교육적인 지도가 필요하다는 제언 정도가 담겼다.

학교 현장에서는 사실상의 ‘도서 검열’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기 지역 초등교사인 신웅식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고양유초등지회 지회장은 “도서들을 폐기한 학교들은 여러 고민을 했다기보다 교육청에서 공문이 오고, 시민단체들로부터 받을 민원이 두려워서 폐기한 경우도 많다”며 “일부 단체들이 도서들에 사상 검열하듯 접근한 결과”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생각했던 것보다 폐기된 도서 양이 많아서 그점을 안 좋게 생각하고 있긴 한데, 학교에서 자체 판단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간윤위에서 한 권에 대해서만 유해 도서라고 판단했지만 시민단체에서 계속 이의 제기하는 상황이라 추가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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