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백기완’이 필요한 세상…‘마당집’이 새날 여는 광야가 되길”

이명희 논설위원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백기완마당집’에서 마당집 개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신 이사장이 들고 있는 책은 그가 표지를 그린 백기완 소장의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신학철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백기완마당집’에서 마당집 개관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신 이사장이 들고 있는 책은 그가 표지를 그린 백기완 소장의 책 <부심이의 엄마생각>이다. 서성일 선임기자

민중미술 작가이다. 홍익대 서양학과를 졸업했다. 1960년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에서 활동했다. 서울 남강고 등에서 미술교사로도 재직했다. 1982년 서울미술관에서 ‘한국근대사’로 첫 개인전을 연 뒤부터 민중미술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연작 ‘한국현대사-갑순이와 갑돌이’가 유명하다. 1989년 작품 ‘모내기’가 이적표현물로 규정돼 옥고를 치르면서 한국미술사에서 표현의 자유와 검열에 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991년 제1회 민족미술상을 수상했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이사장을 지냈다. 국립현대미술관·서울시립미술관·삼성리움에 작품이 다수 소장돼 있다.

시민 후원에 강사료 보태고 백범 글씨까지 팔아 만든 통일문제연구소
지난 1일 ‘불쌈꾼’ 떠난 지 3년3개월 만에 ‘백기완마당집’으로 재탄생
선생이 꿈꿨던 상상력, 제도권이 아닌 이곳에서 불러일으켜야죠

‘맨 첫발, 딱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는 말 평생 지키고 사신 분
미출간 원고와 사진 등 정리 중…5주기엔 평전 내고, 다큐도 만들 것

“맨 첫발/ 딱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모태가 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1933~2021)의 장편 시 ‘묏비나리’ 시작 구절이다.

성성한 백발을 흩날리며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름 없는 약자들에게 ‘한 발 떼기’를 호령했던 어른, 백기완을 기억하는가. 평생 권력자에 불순하였던 그는 다 함께 배부른 사회를 꿈꿨다. ‘노나메기’ 벗나래(세상)이다. ‘너도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잘살고 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살자’는 의미다.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 맨 앞을 지킨 그가 생전 병상에서 힘을 쥐어짜 쓴 글은 “노동해방” 네 글자였다. 죽음이 눈앞이었을 때 마지막으로 적은 글귀 역시 중대재해법 제정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의 복직을 응원하는 “김미숙(김용균씨) 어머니·김진숙 힘내라”였다고 한다.

‘그 세상’은 오고 있는가. 노나메기의 새날을 열어내고자 했던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이 모여 또 한 번의 한 발 떼기를 했다. 그가 쓰던 서울 대학로 통일연구소를 손봐 ‘백기완마당집’으로 이름 붙여 노동절인 지난 1일 문을 열었다. 불쌈꾼(혁명가)이 세상을 떠난 지 3년3개월 만이다. 개인 6831명과 여러 단체가 십시일반 힘을 보탰다. 백 소장의 뜻을 기리고자 창립된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이 이 일을 주도하고 있다. 신학철 화백이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지난달 30일 개관 즈음에 맞춰 열린 기자간담회 후 그를 만났다. 재단의 채원희 사무처장·양규헌 운영위원장이 함께했다. 신 이사장은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은 선생님 얘기에 관심 없다”면서 “마당집이 노동자·청년들이 찾아와서 자신의 문제를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사랑방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지향했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한 게 아니냐.” 신 이사장은 “결국은 백기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면서 “선생 묘소 표지판에 새긴 글이 ‘기죽지 마라’이다. 이곳이 선생이 꿈꿨던 상상을 이어가는 광야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앞서서 나간’ 백 소장이 깃발을 세운 노나메기 세상은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서울 종로구 ‘백기완마당집’ 전시관에 지난 6일 백기완 소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성동훈 기자

서울 종로구 ‘백기완마당집’ 전시관에 지난 6일 백기완 소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성동훈 기자

- ‘백기완마당집’이 문을 열었습니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원래 선생님은 더 큰 마당집을 만들려고 하셨지만 못 마련하고 돌아가셨죠. 살아 계실 때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문을 열게 돼 기쁩니다.”

- 이곳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민중운동의 거점이기도 했는데요.

“애초 이 집은 미술인들의 기금 마련전과 시민들의 후원 등으로 마련한 겁니다. 선생의 강사료를 보태고 1948년 백범 김구 선생께 받은 붓글씨 2점도 팔아 사무실도 아닌 살림집에 연구소를 열었습니다. 이곳은 1991년 수서비리 진상규명을 요구하던 농성장이었고, 문익환·계훈제 등 재야인사들이 시국선언도 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그러니까 민주화·민중운동의 상징적인 거점이었죠. 그런데 선생님이 돌아가셨잖아요. 이 공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는데, 선생님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끝내선 안 된다 한 것이죠. 그래서 기념관이라는 이름 대신 마당집으로 이름 지었어요.”

- 마당집을 세우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정성과 의지가 들어갔다고 하던데요.

“선생의 삶과 뜻을 잇자는 취지로 2022년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을 세웠습니다. 재단의 첫번째 사업으로 백기완이 없는 통일문제연구소 건물을 고쳐서 기념관을 세우기로 했는데 1967년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물이다 보니 너무 낡아서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1990년 연구소 문을 연 후 집을 중간에(2003년) 딱 한 번 고쳤거든요. 개그맨 김미화씨 등이 보일러가 고장 나 냉골에서 지내는 선생님께 ‘보일러를 놓아드리자’며 모금 운동을 펼쳐 일부 수리를 했죠. 그때 1층만 고치고 2층은 너무 낡아서 사용을 아예 못하고 있었거든요. 정부나 지자체 또는 기업 지원을 받지 않기로 원칙을 정한 터라, 모금 활동을 했습니다. 고문단 및 자문위원단, 이사진 등을 중심으로 3년 동안 땀을 흘린 끝에 세운 마당집입니다.”

- 공간 구성에 고민이 있었을텐데요.

“우리가 ‘뭘 보여줄 거냐’ 이 고민을 가장 먼저 했고요. 그래서 1층은 상설 전시로 선생님이 주제이고, 2층은 다목적 공간으로 정했어요. 1층에서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쓰시던 방은 그대로 재현했고요. 2층은 민중운동사가 녹여져 있어요. 우리나라 기념관에 민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해 놓은 곳은 없을 거예요. 손호철 교수가 기술했어요. 2층은 전시회 안 할 때는 특강이나 회의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어요.”

- 백 소장과의 인연을 소개해주신다면요.

“직접 만난 건 1989년 그림 ‘모내기’로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됐다가 보석으로 나왔을 때입니다. 그때 보양식을 사 주겠다고 경기 송추 계곡으로 데려가셨어요. 그때부터 선생님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어느날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선생님과 제가 같은 전시회를 다녀왔더라고요.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멕시코 문명전’(1979년)이에요. 멕시코 벽화 운동의 거장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은 따로 배운 적이 없는데도 예술적 안목이 뛰어났어요. 사물을 보면 그 알맹이를 단박에 알아내는 능력이 있다고 할까요. 선생은 냉면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나를 포함해 학림다방 이충열 대표, 이수호 전태일기념관 초대관장, 원희씨까지 5명이 한 달에 한 번 냉면 모임도 했었죠.”

- 백 소장이 추진하던 ‘노나메기 문화관’ 짓는 종잣돈으로 그림 30점을 내놓으셨다던데요.

“백 선생의 어릴적 이야기를 담은 수필집 <부심이의 엄마생각> 책 표지 그림을 그렸어요. 집사람 병구완 하느라 밖을 잘 못 나올 땐데요, 책을 읽고 뭉클한 마음에 3년 동안 책 속 이야기를 화폭에 그렸지요. 그렇게 그린 그림이 30점이 돼요. 그 그림으로 개인전(2008년)도 했는데 그림을 팔지 않고 몽땅 선생님께 드렸어요. 어느날 선생님이 고맙다며 술 한잔 산다고 집 근처로 오셨어요. 그때 술 먹고 헛소리를 또 했지 뭡니까. (2012년) 경향신문에 연재하기로 한 소설 ‘하얀 종이배’에 들어갈 삽화를 그리겠다고 내 발등을 내가 찍었어요. 다른 그림도 있는데 ‘갑돌이’ 시리즈인 ‘엿장수’ 그림을 좋아하셔서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팔지 말라’고 하셨답니다.”

“전 세계 어떤 화가가 한 사람한테 그림 30점을 그려줄 수 있느냐. 우리 신학철이 유일하다”(백기완)고 곁에서 얘기를 듣던 채 사무처장이 거들었다. 엿장수 그림은 마당집 1층 백 소장이 원고를 쓰고 사람들을 만나던 방을 재현한 ‘옛살라비’ 벽면에 걸려 있다.

- 백 소장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배고픔에 대해 그분만큼 잘 알고 표현한 작가·예술가는 없는 것 같아요. 배고픔을 출발점으로 노동자나 빈민, 약자들 쪽으로 오신 게 아닌가 싶고요. ‘묏비나리’에 “맨 첫발, 딱 한 발 떼기에 목숨을 걸어라”는 구절이 나오잖아요. 일생을 그 말을 지키면서 살지 않았나 해요. ‘불쌈꾼’(혁명가)으로 불렸잖아요. 실체를 금방 파악하는 분이니까, 정부나 집권자 등 잘못된 권력을 그냥 볼 수 없었던 겁니다. 예술가이자 사상가고, 잘못을 그냥 보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서 저항까지 한 분이지 않았나 합니다. 마지막으로 낸 책이 <버선발 이야기>인데요. ‘노나메기’ 사상을 책에 녹여냈는데, 앞으로 화두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런 담력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선생의 고향 황해도 민담 ‘장산곶매’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요. 장산곶매는 사냥을 떠나기 전날 밤새 부리질을 하여 자기 둥지를 부순다고 해요. 근데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죽을 각오로 실천한 겁니다. 또 ‘이심이 이야기’도 있어요. 작은 물고기 이심이가 지기 싫어서 큰 물고기하고 계속 부딪쳐요. 그러다보면 몸에 쇠비늘이 하나씩 나는 거예요. 마침내 온몸이 쇠비늘로 덮인 갑옷이 생기고, 나중에는 함부로 못하는 힘이 생긴다는 겁니다. 선생님이 해 주신 그 얘기는 본인 얘기예요.”

- 백 소장은 청년들에게 ‘자기의 울타리를 만들지 마라, 기득권의 울타리를 끊임없이 깨쳐라’고 하셨는데요. 지금 계셨다면 어떤 말씀하셨을까요.

“지금 청년들이 힘든데, ‘개인적인 입장에서만 보지 마라’ 그러실 것 같아요. 공적인 입장에서 봐야 싸움이 되지, 개인적으로 고민만 하면 쭈그러들잖아요. 공적 입장에서 보면 옆에 사람도 보이고, 친구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 마당집 개관도 노동절에 맞춰졌는데요. 노동자에게 백기완은 어떤 의미인가요.

“그분은 노동자가 있는 곳이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녔고, 오라는 데는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어요. 가장 힘없는 노동자들이 내몰리는 현실에 가슴 아파했고, 당신의 몸이 허락하는 한 노구를 끌고 거리로 나섰어요. 제도권으로 간 정치인들은 다 선생님 곁을 떠났지만 마지막까지 곁에 있었던 것도 노동자들뿐이에요.”

- 마당집이 보여주려는 백기완은 어떤 모습인가요.

“선생님을 위인으로 대상화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선생도 원하지 않으셨을 테고요. 노동자·민중의 투쟁가로 기억되길 바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노동자 민중의 역사와 맞닿게 되기 때문에 그것을 느끼게 하자는 겁니다. 노무현재단도 있고, 김대중기념관도 있잖아요. 마찬가지로 이런 공간이 없다면 백기완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곳이 사라지잖아요. 이젠 미래 세대들에게 백기완의 뜻을 어떻게 이어지게 할 것인가가 고민해야 될 부분들이에요.”

- 왜 지금 백기완과 마당집에 주목해야 하는지요.

“선생님의 삶은 권력·자본과 끊임없이 불화했어요.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았거든요. 정권은 계속 바뀌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바뀌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선생님이 지향했던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현실 속에서 직장·결혼 문제 등으로 고민해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꿈들이 다 죽었다는 얘기예요. 예술가들이 꿈꾸고, 타협하지 않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런 상상력들을 제도권이 아니라 이런 광야에서 불러일으켜야 하지 않을까요. 마석모란공원 선생님 묘소 가는 길 표지판 문구가 ‘기죽지 마라’예요. 배부르고 등 따신 사람들은 선생님 얘기에 관심 없어요. 결국은 백기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기꺼이 그들에게 다가서는 것, 남은 이들이 해야 될 역할입니다.”

- 앞으로 계획은요.

“선생님의 저작과 미출간 원고, 사진, 인터뷰 등 자료를 모아서 분류하고 정리하는 과제가 남았어요. 지금 2년 동안 목록화 작업은 끝냈습니다. 5주기 때는 평전을 내고, 그다음에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자 하고 있어요.”

이명희 논설위원

이명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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