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평등 뒤로 가나”…유엔도 우려 쏟아냈다

김나연 기자

여성차별철폐위, 한국 보고서 심의

<b>유엔 “한국 여성인권 현주소 보니…”</b>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14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사무소에서 한국 여성 인권에 관한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심의 현장에서 김기남 여성가족부 기획조정실장이 한국 정부 대표단의 단장으로서 발언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유엔 “한국 여성인권 현주소 보니…”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가 14일(현지시간) 유엔 제네바사무소에서 한국 여성 인권에 관한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왼쪽 사진). 이날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심의 현장에서 김기남 여성가족부 기획조정실장이 한국 정부 대표단의 단장으로서 발언하고 있다(오른쪽 사진). 연합뉴스

여가부 폐지·차별금지법 등 질의
윤석열 정부 정책 퇴행 지적에도
정부 “문제없다” “검토” 원론 답변

“여성가족부가 폐지되면 실질적인 성평등 정책을 추진하고 여성 권리를 강화하는 데 많은 제약이 따를 것이다. 여가부 폐지 계획을 철회할 의향이 있나?”

“대통령이 한국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고 선언한 점이 우려된다. 차별금지법은 왜 입법되지 않았나?”

지난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의 ‘제9차 한국 국가보고서 심의’에서 위원들은 한국 정부에 이같이 질문했다. 위원회는 ‘국제여성헌법’으로 불리는 여성차별철폐협약이 원활하게 이행되도록 감독하는 기구다.

이날 심의에서는 여가부 폐지와 차별금지법 입법, 비동의 강간죄 도입 등 한국 여성인권 실태에 다양한 우려가 나왔다. 정부는 “여가부 폐지는 성평등 기능을 축소하지 않는다”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1984년 12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4년마다 관련 분야의 정책 성과를 국가보고서 형태로 유엔에 제출해오고 있다. 올해는 2018년 8차 심의에 이어 6년 만에 심의가 진행됐다. 정부는 여가부와 법무부·보건복지부 등 여성 관련 정책을 다루는 부처들로 대표단을 꾸렸으며, 김기남 여가부 기획조정실장이 수석대표를 맡았다.

이날 심의에서는 현 정부 들어 성평등 정책이 퇴행하고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위원들은 지난 2년간 성평등 정책이 줄어들고 관련 예산이 삭감되면서 “성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가부를 폐지하면 여성인권을 강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정부는 여가부 소관 양성평등위원회를 통해 여성과 성평등 관련 주요 정책을 심의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양성평등위원회는 지난해 단 두 차례 서면으로만 개최됐고, 올해는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6년 전 제8차 심의에서 정부는 위원회로부터 양성평등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할 것을 권고받았지만, 이행하지 않았다.

심의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입법되지 않은 점에 대한 질문도 나왔다. 정부는 “사회적 공감대와 토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2007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권고했다. 현재 국회에는 차별금지법 법안 4개가 발의돼 있다. 이달 말 21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 이 법안들은 자동 폐기된다.

위원회는 ‘비동의 강간죄’ 입법에 대해서도 정부의 의견을 물었다. 한국 형법은 폭행이나 협박에 의한 성관계만 ‘강간’으로 본다. 위원회는 ‘피해자의 자발적인 동의 여부’를 강간죄의 구성 요건으로 둬야 한다고 봤다.

비동의 강간죄 입법 여부
낙태죄 관련 제도적 조치
저조한 여성 정치 참여 등
정부 후속 대응 미흡 지적

여성계 “정부 노력 전무”
여가부 “향후 계획 논의”

실제로 ‘2022년 성폭력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강간은 ‘가해자의 강요’(41.1%)가 가장 많았고 이어 ‘가해자의 속임’(34.3%)이었다. ‘협박’(30.1%)과 ‘폭행’(23.0%)이 동반된 강간은 그보다 적었다. 정부는 “도입에 앞서 성폭력 범죄 대응 체계 전반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여성 정치 대표성’ 문제도 검증대에 올랐다. 현행 공직선거법 제47조 제4항은 “정당이 임기만료에 따른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 및 지역구 지방의회 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각각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0분의 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권고조항일 뿐이어서 주요 정당들은 해당 조항을 지키지 않고 있다. 22대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자(699명) 중 여성은 99명으로, 14.16%에 불과했다. 이는 21대 총선(19.0%)보다도 줄어든 수치다. 6년 전 제8차 심의에서 위원회는 벌금 부과 등 강제이행조치를 수반한 여성할당제를 도입하라고 권고했으나, 정부는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후 임신중지에 대한 구체적인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위원들은 임신중지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거나 유산유도제를 승인하는 등 후속 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이유를 질문했다. 정부는 “모자보건법 14조를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모자보건법은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개정 입법 시한을 지나 법적 효력이 없는 상태다. 유산유도제에 대해 정부는 “승인 신청에 대한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고 답했으나 해당 절차는 약 4년 동안 진전이 없는 상태다.

이 밖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배상 문제에 대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또 한국에서 가정폭력이 실질적으로 처벌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심의에서 나온 성소수자의 권리 보장에 대한 질문에도 정부는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만 계속 언급했다.

여성단체들은 “정부가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의 우려에 대해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15일 한국여성의전화 등 12개 여성시민단체는 논평을 내고 “정부는 여가부 폐지 정책 기조를 폐기하고, 국가 성평등 기구가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도록 부처의 예산, 조직, 권한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차별금지법 등에 대한 정부 답변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한다”며 “그간 정부의 기여와 노력은 전무했다”고 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한 달 이후 유엔 위원회에서 최종 권고사항이 나오면 향후 조치계획 등에 담기 위해 관계 부처와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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