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문경 식품 제조 공장 화재
김수광 소방교·박수훈 소방사
도착 당시 전원 대피로 알았지만
여성 1명 발견에 구조 투입 ‘참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아쉽죠.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면 안 됩니다.”
지난 6일 경북 문경시 신기동의 한 공장 앞에서 이지운 경남소방본부 조사위원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이 공장 화재 현장에 출동했던 구조대원 2명이 순직한 이후 소방청 합동조사단의 원인 조사에 참여했다.
그는 “소방관이 ‘영웅’이 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애초 공장 내부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의 말이다. 공장 외부에서 화염이 분출되는 등 위험징후가 보였는데도 빠르게 철수 명령이 내려지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돈가스 등 냉동식품을 제조하는 공장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은 지난 1월31일 오후 7시47분이다.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소속 김수광 소방교(27·순직 후 소방장으로 특진)와 박수훈 소방사(35·순직 후 소방교로 특진)가 포함된 구조대는 신고 10분 만인 오후 7시57분 현장에 도착했다.
불길 속으로 뛰어든 구조대원 4명 중 2명은 임용 5년도 안 된 청년 소방관이었다. 2019년 7월 소방관이 된 김 소방교는 “누군가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을 뛰어드는 119구조대원이 ‘소방의 꽃’”이라고 말해왔다고 한다. 특전사 중사 출신인 박 소방사는 “사람을 구하는 일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군 전역 후 2022년 2월 소방 구조대원이 됐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 공장 사장은 처음 소방당국에 “내부에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공장에 거주하는 가족 등 5명이 모두 대피했다는 것이다. 공장은 이날 오후 4시50분쯤 돈가스 튀김 작업을 끝내고 일과를 마쳤다. 불이 난 줄도 모르고 1층에 모여 함께 저녁을 먹던 이들은 소방차가 출동하자 밖으로 나갔다.
화재 조사관이 오후 8시3분쯤 1층에서 여성 한 명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사장의 배우자인 이 여성은 불이 난 곳을 확인하기 위해 공장 3층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던 길이었다.
다른 4명이 공장 밖으로 대피하는 장면이 폐쇄회로(CC)TV에 찍혔지만 이를 확인하지 못한 지휘부는 구조대상자가 더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지휘팀장은 오후 8시6분 구조대와 진압대에 각각 인명검색과 불이 난 지점 확인을 위한 내부진입을 지시했다.
이들은 공장 불길에서 나오지 못했다. 구조대는 옥내소화전 등을 이용해 물을 뿌리며 공장 3층까지 진입해 인명검색을 이어갔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공장 안에서 활동하던 구조대는 오후 8시17분 긴급한 무전을 밖으로 여러 차례 보냈다.
경향신문이 확인한 당시 무전 녹취록에는 급박했던 상황이 그대로 드러난다. 구조대가 보낸 무전은 ‘○○고립. ○○해주기 바람’ ‘빨리! 빨리!’ ‘빨리! 빨리! 빨리!’ 였다. 탈출을 시도한 구조대 중 2명은 간신히 밖으로 나왔지만 김 소방교와 박 소방사는 고립됐다.
이들은 불길이 잡혀가던 이튿날 오전 0시21분과 오전 3시54분 서로 8.8m 떨어진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구조대원들이 건물에서 사투를 벌일 당시 현장 지휘부는 내부에 구조할 사람이 없으며 불길이 위험한 수준으로 번지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소방청 문경 순직사고 조사단의 조사·분석 보고서를 보면 경북소방본부 상황실은 오후 8시8분 현장에 “인명 대피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무전을 보냈다. 지휘팀은 1분 뒤 “구조대 수색한바, 실내 인명 대피 완료함”이라고 보고했다.
현장 지휘팀은 오후 8시12분 내부에 있던 구조대에 “외부에서 보니까 (3층에)불이 돌고 있다. 퇴로 확보하고 안전에 유의하기 바란다”는 무전도 보냈다.
현장 소방관들은 “외부에서 불길이 보인다는 것은 화재가 가장 큰 상태인 ‘최전성기’에 도달했다는 뜻”이라고 했다. 구조대가 내부에 있었던 만큼 이런 상황에서는 ‘즉시 철수’ 명령이 내려졌어야 한다는 게 소방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길중 전국소방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부위원장은 “건물 안 불이 최성기에 달하면 산소가 많은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한다”며 “이때 창문 밖으로 불기둥이 보이게 되는데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설명했다.
영상장치를 통해 화재 현장을 지켜보던 경북소방본부 상황실도 오후 8시15분 “화세가 센 것으로 보이는데 현장 확인 바람”이라는 무전을 보냈다. 지휘팀은 “화재 최성기 추정. 전 층 연소 확대”라고 답하고 구조대에 “탈출하기 바람”이라고 무전을 보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반면 구조대와 함께 내부로 진압해 불을 끄던 진압대는 천장 내부에서 불이 돌고 있는 것을 목격한 후 탈출을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별다른 무전 보고는 없었다. 이 사실을 모르던 구조대원들은 탈출 시기를 놓쳤다.
보고서는 화재진압 전술도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현장에 투입된 대원들의 교육·훈련상태가 전반적으로 부족했다는 뜻이다. 소방노조는 “소방관 순직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김 부위원장은 “2022년 경기 평택 물류창고와 2021년 울산 상가건물 화재 소방관 순직사고도 사람이 없는 곳에 성급하게 구조대원을 투입한 판단 실수”라며 “구조할 사람이 없는 상황에 구조대원을 건물에 밀어 넣는 관행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청 보고서는 현장 지휘관의 지휘능력도 지적한다. 당시에는 화재조사관인 A소방위가 지휘팀장을 임시로 맡았다. A소방위는 2019년 1월 승진했지만 지휘 역량을 높일 수 있는 집합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소방청이 강조하는 ‘절대불변 4대 기본원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원칙에는 인명검색을 위해 화재 현장 내부에 진입할 때에는 반드시 곧바로 물을 쏠 수 있는 소방호스를 휴대하도록 하고 있다.
고립됐을 경우 물을 뿌려 자신을 보호하고 연기 등으로 앞이 안 보이면 끌고 온 호스를 따라 출구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보호장비 착용 여부는 지휘관과 현장안전점검관이 확인해야 한다. 소방청 보고서는 “비상상황을 대비한 자기 방호 불가 상태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소방청은 식용유가 담긴 튀김기에서 시작된 불이 982ℓ 용량의 식용유 저장탱크로 옮겨붙어 건물 전체로 급격히 확산한 것으로 결론 냈다. 사고 당시 현장에선 공장 내부 저장탱크에 튀김용 식용유가 가득했다는 정보도 알지 못했다. 이 정보는 경북예방정보시스템에 있었지만, 경북소방본부 상황실은 민원정보시스템상 위험물 취급내용만 확인한 뒤 ‘위험물이 없다’는 잘못된 판단을 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던 현장 진압대는 내부로 진입해 있는 구조대의 반대편에서 3분간 물을 뿌렸다. 이 물이 천장으로 유입돼 식용유 탱크 위로 떨어져 급격히 화재가 확산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이 위원은 “식용유 등 위험물 여부도 구조대에 전달되지 않았고 반드시 휴대해야 할 소방호스도 소지하지 않는 등 미흡한 부분이 많았다”라면서 “만약 소방 업무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됐다면 이번 사고는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