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부모모임 필요 없는 세상 됐으면”

배시은 기자

10주년 맞은 ‘부모모임’ 대표 하늘·지인씨

‘나와 비슷한 사람 있을까’
자녀 커밍아웃 함께 고민
“이 모임이 없어진다는 건
성소수자 안전하다는 뜻”

성소수자 가족들이 모인 ‘성소수자부모모임’의 대표이자 창립자인 하늘씨(활동명)는 15년 전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때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기도하며 신을 찾았다. 엄마가 자신이 게이임을 알게 됐다는 충격에 입을 닫아버린 아들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 편지를 썼다. “엄마는 지구가 뒤집혀도 네 편이야. 너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사랑한다.” 아들이 ‘엄마는 네 편’이라는 말을 놓칠까봐 빨간색 볼펜으로 밑줄도 쳤다.

하늘씨는 문득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그의 고민은 부모모임의 단초가 됐다. 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BIT)’이다. 경향신문은 올해 10주년을 맞이한 부모모임의 대표 하늘씨와, 함께 모임을 만든 지인씨를 지난 14일 만났다.

하늘씨와 지인씨는 서로가 같은 걱정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부모모임을 꾸렸다고 한다. 아들이 커밍아웃한 뒤 방황했던 하늘씨는 “앞으로 얘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 주변에는 성소수자가 없는데 어떻게 하면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이 생겨 성소수자 부모들을 직접 찾게 됐다”고 말했다. 지인씨는 아들이 청소년 시절 커밍아웃한 후 “우리 아이보다 나이 많은 성인인 당사자들이 잘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수소문하다 하늘씨와 만났고 모임을 만들게 됐다”고 했다.

현재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가족 간의 네트워킹을 돕는 월례 정기모임, 당사자의 커밍아웃 과정을 함께 준비하는 ‘커밍아웃 워크숍’ 등을 진행하고 있다. 매달 둘째 주 토요일에 열리는 정기모임에는 50명이 넘게 모인다.

두 사람은 부모모임이 ‘안전한 대피소’라고 말했다. 매번 얼굴이 낯선 당사자와 부모들이 찾아오는데 처음 보는 사이임에도 커밍아웃에 관한 고민, 가족과의 갈등 등 마음속 깊숙한 곳에 감춰뒀던 이야기를 꺼내고 울고 웃는다. 하늘씨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비난하지 않고 경청해주는 가장 안전한 장소라는 걸 서로 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모임은 성소수자 자녀가 있는 부모들에게 “공부하라”고 당부한다. 지인씨는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정체성에 대해 가르쳐주는 교육이 있었다면 혐오하고 차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시민들의 의식은 전진했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모습에선 퇴행이 느껴진다고 했다. 차별금지법이 21대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아직 통과되지 못했고, 정치권에서 성소수자 혐오 발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인씨는 “최근 학생인권조례도 폐지됐고, 서울 퀴어퍼레이드도 광장에서 열지 못하게 하는 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에게 ‘더 넓은 세계를 만나는 통로’가 됐던 부모모임이 없어지는 게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지인씨는 아들의 커밍아웃 직후를 회상하며 “왜 불행할 거라고만 생각하고 슬퍼했었나 싶다”면서 “행복하게 사는 당사자도 많고 사회도 충분히 많이 바뀐 것을 보면 이제 슬픔이 아닌 희망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늘씨는 “모임이 없어진다는 건 우리 없이도 성소수자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됐다는 뜻”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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