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살인’ 아버지의 뼈저린 참회…과연 그만의 죄일까

이효상 기자
2022년 5월 장애인 가정에서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반복되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를 마련했다. 한 시민이 참사 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2022년 5월 장애인 가정에서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살해하는 사건이 반복되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를 마련했다. 한 시민이 참사 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반성하고 참회합니다.”

카키색 수의를 입은 초로의 남성은 지난 5월 3일 대구지방법원 11호 법정에서 최후 진술을 했다. ‘반성과 참회’를 되풀이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커졌다. 마지막은 울음이 섞인 절규에 가까웠다.

A씨(63)는 지난해 10월 대구의 자택에서 서른아홉 살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사건 현장에는 아들의 시신과 함께 손발에 자상을 입고 쓰러진 A씨가 있었다. 함께 발견된 유서에는 A씨가 생전의 일을 정리해 달라고 당부하는 내용이 담겼다. 아들과 함께 “천사가 있는 하늘로 가자(A씨 법정 진술)”는 계획과 달리 A씨는 그날 죽지 못했다.

근 40년, A씨와 아들은 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아들은 1984년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거동에 불편함은 없었지만 다섯 살이 넘어서도 다섯 살 수준 이상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아들은 몸이 약했다. 간질과 저혈압으로 종종 쓰러졌고, 목 넘김이 좋지 않아 먹는 걸 싫어했다.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했다. 아내는 학교 급식실 조리사로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졌고, A씨가 아들을 돌봤다.

아들이 자라면서 돌봄의 난도는 갈수록 높아졌다. 아들의 덩치는 커졌지만 A씨가 돌봐야 할 시간은 줄지 않았다. 아들은 초등학교만 특수학교로 다녔을 뿐,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다니지 않았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던 아들의 남는 시간은 오롯이 A씨가 책임져야 했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해, A씨는 그간의 돌봄 부담에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아들을 시설에 맡기기로 했고, 아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시설에 머물렀다. A씨는 화물차 운전을 시작했다. 주말에는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돌봤다. 시설 생활 10년째 되던 해, 아들은 뇌출혈로 쓰러져 두 달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간신히 의식을 회복한 아들은 뇌병변 1급 진단을 받았다. 아들은 이제 혼자서는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이후의 돌봄도 A씨의 몫이었다. 아내는 이 무렵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을 시작해 평일에는 직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주말에만 집에 돌아왔다. 아내는 장기간 고된 노동으로 양 무릎이 퇴행성관절염 4기 진단을 받아 키가 큰 아들을 돌보기 어려웠다. A씨는 아들을 재활병원에 입원시키고 재활에 몰두했다. 일을 그만두고 24시간 병원에 머물면서 A씨의 심신도 많이 상했다. 병실의 보호자 간이침대에 머물다 보니 허리가 아팠다. 바깥출입이 줄다 보니 우울증도 생겼다. 이때 생긴 우울증은 이후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누워서만 생활하던 아들은 욕창이 생겨 울기도 많이 울었다. 거듭된 재활 끝에 아들은 왼손과 왼발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입원 생활 6년 만에 A씨와 아들은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 5월 3일 A씨의 결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아내 B씨(63)는 “(아들은) 평소 생활을 모두 남편과 함께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가고, 교회도 같이 가고, 버스도 같이 태워주고, 재활병원도 같이 가고, 온종일 남편이 데리고 다녔습니다. 의사소통은 ‘맞나, 안 맞나’ 물어보면 대답만 하는 정도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빠하고는 소통이 됐습니다”라고 했다.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이 가족을 뒤흔든 것은 2021년 3월 A씨의 교통사고였다. 이 사고로 A씨는 발가락이 절단됐고 근육파열과 신경손상을 입었다. 신경이 손상된 A씨는 작은 자극에도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희소병인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CRPS)’ 진단을 받았다. 진통제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치료를 받아야 했다. 아들의 돌봄 공백은 불가피했다. 지인이 위기에 처한 가족에게 장애인의 일상을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이 있다고 귀띔했다. 활동지원을 신청했고, 아들은 집으로 찾아오는 활동지원사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다만 지원을 받는 시간은 월 90시간, 하루 3~5시간에 불과했다. A씨는 활동지원사가 오는 시간에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그 외의 시간엔 아들을 돌봤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왼팔을 들어 올릴 수 없었지만, 키 179㎝·몸무게 50㎏의 아들을 “눕히는 일, 일으키는 일, 대변 받는 일을 다 했다(B씨의 법정 증언).”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부자 사이는 돈독했다고 한다. 아들의 활동지원사로 일했던 C씨는 기자와 통화에서 “두 분 사이가 엄청 좋았다. 이 정도로까지 챙겨주는 아버님은 못 봤다. 아버님이 병원 갈 때 외에는 늘 붙어 있었고, 병원 가서도 아드님이 어떻게 있나 확인하고 그랬다”고 했다. 그는 “○○형(A씨 아들)은 아버님하고 어머님하고 같이 있으면 좋아했다. 밖에 산책하는 것도 좋아했고, 예쁜 벽화 보는 것, 지나가는 사람 구경하는 것, 칭찬해주는 걸 좋아했다. 좋아하는 걸 하면 웃었다. 티가 났다”고 했다. 아내인 B씨도 통화에서 “(남편이) 힘든 내색을 안 했다. 수시로 뽀뽀하고 아를 억수로 좋아했다”고 했다.

상황은 오래지 않아 최악으로 치달았다. 교통사고 치료비를 지원하던 보험사는 지난해 8월 A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는 더는 A씨의 치료비를 부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해 10월 법원에서 조정 기일이 잡혔는데, 보험사 측은 ‘대형 보험사와 소송해봐야 못 이긴다’고 했다 한다. A씨는 어쩔 수 없이 조정을 받아들였다. 보험사가 제시한 합의금은 50만원이었다. 이후 보험사는 이미 지급한 치료비와 약제비 1300만원을 반환하라는 소송까지 추가로 제기했다. 우울증이 있던 A씨는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B씨는 법정에서 “(조정을 받아들이고) 집에 와서 줄담배를 계속 피웠습니다. 힘들어했습니다”라고 했다.

비극은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벌어졌다. 자동차를 팔고 조용히 신변을 정리한 A씨는 유서를 썼다. 아들이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10년간 아들을 돌봐준 복지관에 재산 일부를 기부해 달라는 내용 등이 담겼다. 사건 당일 오후 7시쯤 집에 돌아온 B씨는 이미 숨을 거둔 아들과 쓰러져 있는 남편을 발견했다. 유족인 동시에 가해자의 아내인 B씨는 법정에서 “이 사람(A씨) 정말로 우리 아 키우면서 애 많이 먹었습니다.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재활치료를 계속 맡겨서 미안한 마음입니다. 너무 정말로, 너무너무 힘들게 아를 키웠습니다. 저는 아파가지고 아를 돌볼 수 없었습니다. 자기 죽으면 이 아를 키울 수 없다는 그런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불쌍하게 살았던 사람입니다”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A씨는 피고인석 책상 위에 올린 두 팔에 고개를 파묻었다.

검사는 법정에서 “피고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40년간 아들을 돌봤다. 희생과 노력이 안타깝다. 그러나 생명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사회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다”며 A씨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이 사건 선고는 오는 5월 31일 내려진다.

돌봄에 매몰된 부모들

지난해 9월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한 주택에서 50대 부부와 장애를 앓고 있는 20대 아들 3명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사건 현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전남 영암군 영암읍 한 주택에서 50대 부부와 장애를 앓고 있는 20대 아들 3명 등 일가족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이 사건 현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통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호자가 장애가 있는 가족을 오랜 시간 돌보다 살해하는 참극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A씨의 사건 한 달 전인 지난해 9월에는 전남 영암에서 장애를 가진 20대 아들 3명과 50대 부부가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해 11월에는 서울 은평구에서 30대 어머니가 장애가 있는 여덟 살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려다 실패했다. 올해 2월에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40대 아버지가 장애가 있는 초등학생 딸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고, 지난 5월 7일에는 충북 청주에서 모두 지적장애가 있던 50대 어머니와 40대 남매가 숨진 채 발견됐다. 숨 막히게 반복되는 사건은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2022년 9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는 한국 정부의 장애인권리협약 2·3차 국가보고서를 심의한 뒤 우리 정부에 전달한 최종견해에서 “장애인의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례 등을 매우 우려한다”고 했다.

잔혹한 범죄다. 그러나 사례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범죄자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일면도 존재한다. 가해자들은 공통으로 장기간 돌봄을 전담해왔다. 시간이 지나도 돌봄 부담은 줄지 않았고, 그 끝도 가늠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24시간 돌봄에 매진하면서 사회적으로 단절되고, 우울증을 경험했다.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놓인 보호자들은 자살을 결심하게 하는 어떤 사건을 겪고 범행을 저지르는 양상을 보였다. 자녀의 죽음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죽기 위해서는 자녀의 죽음이 선행돼야 한다고 믿는 셈이다. 범행을 저지른 보호자들은 ‘내가 죽으면 돌볼 사람이 없다’는 판단을 했다. 다른 가족뿐 아니라 사회적인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장애인 단체가 반복되는 비극적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실제 2019년 8월 울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비슷한 경로를 그린다. 30대 어머니가 자폐성 발달장애를 가진 아홉 살 딸을 전업으로 돌보다 살해했다. 자신도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 어머니는 사건 2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았다. 2019년 초 시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충격을 받은 남편이 공황장애로 입원했고, 아내의 돌봄 부담·생활고가 가중됐다. 그리고 몇 달 만에 범행을 저질렀다. 그는 범행 후 병원에서 “나 혼자 가면 안 되니까…. 같이 데려가려고…. 케어할 사람이 없으니까…”라고 했다.

2022년 5월 인천에서는 60대 어머니가 서른여덟 살 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머니는 날 때부터 뇌전증과 지적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이 어렵고 대소변 처리를 못 하는 딸을 40년 가까이 돌봤다. 그해 1월 딸은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았고, 항암치료로 고통스러워하는 딸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심각한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는 형사재판에서 “버틸 힘이 없었고, 내가 죽으면 딸은 누가 돌볼까 걱정돼 여기서 끝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재판부는 “딸의 생명을 처분하거나 결정할 권리는 없다”면서도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은 국가나 사회 지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오롯이 책임을 지고 있고, 이번 사건도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 어렵다”고 했다.

가족 돌봄 강제하는 제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4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 인근에서 제23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기념식을 열고 있다. 연단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띠가 걸려 있다. 정효진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이 지난 4월 18일 서울 영등포구 63컨벤션센터 인근에서 제23회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기념식을 열고 있다. 연단에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촉구하는 띠가 걸려 있다. 정효진 기자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공적 지원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4월 30일 발표한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일상생활을 혼자 할 수 없어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장애인은 35.3%로 조사됐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업, 노인 장기요양보험 등 정부가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서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16%에 그쳤다. 복지서비스의 전달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고 있거나, 지원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 장애인의 주된 지원자는 가족 구성인 경우가 82.1%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공적 서비스 제공자가 주된 지원자인 경우는 13.8%에 그쳤다. 공적 지원자 중에서는 장애가 있는 고령의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가 9.7%로 많았고, 장애인의 일상을 돕는 활동지원사는 3.4%에 그쳤다.

연구자들은 장애인 가족의 돌봄 전담이 사회 구조적으로 사실상 강제됐다고 본다. 이민경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장애인정책연구센터장은 “한국에서 장애인을 주로 가족이 돌보는 경향성을 유교문화권의 가족주의와 연관 지어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문화권이 다른 그리스나 남유럽에서도 가족 안에서 장애인 돌봄이 이뤄지는 현상이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공적 지원이 부족하거나 공적 지원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우리 사회의 가족 돌봄 경향도 문화나 내재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라 공적 지원의 부족이나 지원체계에 대한 신뢰도 부족을 주된 원인으로 봐야 한다. 돕는 제도가 있어도 장애인을 믿고 맡길 수 없으면 결과적으로 가족이 안고 가는 경향이 있다. 제도를 이용해봐도 안 되니까 ‘내가 돌볼 수밖에 없구나’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장애인 복지 관련 예산은 지난해보다 5000억원가량 증액된 5조원 정도다. 이중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이 2조2800억원으로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이 사업 예산은 지난해보다 3000억원가량 증액돼 처음으로 2조원대를 넘어섰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이 사업을 통해 지원받는 사람이 지난해보다 8700명 늘어난 12만37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은 장애인을 일대일로 지원하는 활동지원사의 최저임금 상승분이 반영돼 예산이 늘었을 뿐, 대상자와 지원 시간은 크게 늘지 않으리라고 본다. 게다가 올해 9월부터는 상이국가유공자들도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장애인 복지 명목으로 예산을 증액했지만, 실제 증가분은 보훈사업에 사용될 가능성도 크다.

지원을 받는 대상자의 숫자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2023년 장애인 실태조사에서 ‘일상생활 대부분에, 또는 거의 모든 일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12.3%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하면 등록장애인 260만명 중 30만명가량은 타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중증 장애인이라는 얘기다.

장애인 가족에게는 제도 이용 신청부터 대상자 심사, 바우처를 지급받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쉽지 않다. 대부분이 예산의 부족으로 빚어지는 문제다. 당사자의 신청이 있을 때만 제도 이용이 가능한 ‘신청주의’로 운영되는 탓에 제도 자체를 모르는 장애인 가족도 적지 않다. 경기도가 지난 1월 30일 발표한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19.1%는 공적 돌봄서비스가 있는지를 몰라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장 A씨 가족 역시 지인의 소개로 2021년 5월에야 장애인 활동지원사업을 신청할 수 있었다. 제도 시행 10년 만에 처음으로 제도를 알게 된 것이다.

충분치 못한 예산은 심사 과정도 까다롭게 만들었다. 이용자가 신청하면 국민연금공단에서 장애인과 보호자를 대상으로 면담조사를 진행한다. 가구원 구성과 가족의 사회생활 여부를 조사하고, 목욕·배변·음식물 넘기기·대중교통 이용 등 21개 항목에 대해 어느 정도 지원이 필요한지를 조사한다. 독거가구나 취약가구일 경우, 가구원들이 모두 사회생활을 하는 경우 가점이 주어진다. 그러나 가구원 중 한 명이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돌봄에 전담하는 경우는 가점이 없어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장기간 돌봄으로 심신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인 보호자들, 잠깐의 휴식이 필요한 이들이 지원 후순위로 밀리게 된다는 얘기다.

예컨대 A씨 아들은 지적장애와 뇌병변 장애가 결합한 최중증 중복 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월 90시간의 지원만 받을 수 있었다. 활동지원사업은 월 480시간을 지원받을 수 있는 1구간부터 월 60시간이 지원되는 15구간까지 15단계가 존재한다. A씨 아들은 끝에서 두 번째인 14구간에 해당했다. A씨 가족은 장애 정도보다 적은 시간이 지원된 이유도 뚜렷이 알지 못했다. 아내 B씨는 “우리도 (시간을) 더 달라고 했는데 안 줬다. 알 만한 사람한테도 물어봤는데 ‘원래 잘 안 준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했다.

장애인 부모들은 입을 모아 지원 시간 부족을 지적한다.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과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2022년 발달장애인 가족 보호자 433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하루 12시간 이상의 돌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53%에 달한 반면 실제 ‘하루 12시간 이상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는 응답은 1%에 그쳤다.

부족한 돈, 부끄러운 인식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제도 운용상의 문제도 있다. 이 사업은 장애 당사자를 돌보겠다는 활동지원사가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런데 장애 정도가 중증이면 지원자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일반 장애인보다 상대적으로 노동강도가 높아 지원자들이 기피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보호자가 직접 사람을 구해 활동지원사로 등록시키는 때도 있다.

50대 김모씨는 대구에서 뇌병변 1급 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열여덟 살 아들을 전담해서 돌본다. 현재는 월 250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지만, 처음 이 제도를 이용할 때만 해도 사람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김씨는 “신생아처럼 위루관(입으로 음식 섭취가 어려운 환자의 영양공급을 위해 위장에 직접 연결한 관)으로 먹이고, 기저귀를 수시로 갈아주는 일도 하루 이틀이 쉽지 그걸 계속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처음에 한 분을 구했는데 일주일 하시더니 허리 아파서 안 되겠다고 그만두셨고, 그다음 분은 한 달 하시더니 손목이랑 무릎이 상했다고 그만두셨다”고 했다.

활동지원을 받는 시간에 김씨는 운동을 한다. 안아주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더 잘 돌보기 위해서다. 그는 “밖에 나와서도 활동지원 선생님한테 전화 오면 뛰어갈 준비를 항상 하고 있다. 집 밖으로만 나오면 발걸음이 빨라지고 직업병 아닌 직업병처럼 시계를 계속 쳐다본다. ‘이 시간엔 아들한테 뭐 해줘야 하는데’ 하면서. 아들이 경련을 많이 해서 하룻밤에도 4~5번씩 깬다. 늘 몽롱하다. 활동지원 시간이 좀더 길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인력난이 심각한 지역에서는 활동지원사를 구하기가 더 어렵다. 예컨대 충북 음성군의 등록장애인은 지난 4월 기준 7251명인데, 활동지원사업을 신청해 등급을 받은 사람은 183명이다. 이중 활동지원사업에 본인부담금을 내 실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고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은 127명이다. 신청자도 적고 서비스 이용자는 더 적다.

김신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중복장애특별위원장은 경북 울진군에서 스물일곱 살 딸과 함께 산다. 딸은 뇌병변 장애와 난치성 뇌전증이 있다. 하루에도 수차례 경련을 일으킨다. 김 위원장이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딸은 월 340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 딸을 돕는 활동지원사 2명은 모두 75세의 고령이다. 도시의 경우 70세 이하로 활동지원사의 연령제한을 두고 있지만, 지역은 인력난으로 인해 연령제한을 상향했다. 김 위원장은 오랜 시간 딸을 돌봐온 활동지원사들의 은퇴 이후를 걱정하고 있다.

그는 “두 분이 오랫동안 딸을 봐주시면서 이제는 경련이나 돌발상황이 일어났을 때도 능숙하게 대처를 하신다. 이분들이 일을 못 하게 되면 문제가 생길 것 같다. 울진군에 대체할 사람이 없다. 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겪으려면 몇 년이 걸린다. 이분들이 계실 때 대체인력을 구해서 같이 일하게 해야 하지만 사람이 없으니까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도 퇴근 후 딸아이의 침상을 지키는 등 돌봄에 매진하고 있다.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하면 돌봄 부담은 더 가중될 수밖에 없다.

활동지원사가 좋은 일자리가 된다면 해결할 수 있지만 결국은 또 돈이 문제가 된다. 장애 유형에 따라 간병과 돌봄의 방식이 다른 탓에 활동지원사에게는 일정 수준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40시간의 교육만 이수하면 누구나 활동지원사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 자녀의 사례에서 보듯, 장기근속을 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전문성이 쌓이는 특성이 있지만 바우처 사업인 탓에 호봉은 인정되지 않는다.

열악한 제도만 탓할 문제일까. 정치는 결국 사회적인 가치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과정이다. 열악한 정책적 지원은 장애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2018년에 스웨덴에 가서 충격을 받았다. 장애인에게 주거를 지원하는데 뇌병변 장애인에게는 다른 장애보다 넓은 집을 제공한다.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니까. 간호인력도, 활동지원인력도 제공되고, 필수로 몇 시간은 햇볕을 쬐어야 하니 너른 마당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장애인도 상상할 수 없는 집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장애인과 같이 살기 위해 세금을 더 내는 걸 감수한 것이다. 내가 내 돈 내고 지하철을 타는데 장애인 단체가 이동권 보장 시위를 해서 열차가 지연되면 민원을 넣는 비장애인 중심사회와는 다르다. 시골에 사는 평범한 엄마였다가 20년 전부터 딸을 데리고 장애인 권리 보장을 위한 투쟁을 했다. 슬픈 건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는 점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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