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10살 아들이 말했다. “엄마, 우리는 어차피 지구에서 모두 사라질 거야.”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적 재앙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 7년 남았다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한 말이었다. 10년 후를 상상했을 때, 장래 희망 대신 ‘소멸’을 떠올리는 아들을 보고 엄마는 거리에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아기기후소송 당사자인 박서율(10)과 엄마 김정덕 활동가는 21일 오후 12시30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 서서 “이제는 위기가 아닌 판결의 시간”이라고 외쳤다. 이날 헌재에선 한국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이 헌법에 합치하는지를 묻는 ‘기후소송’의 두 번째 변론기일이 열렸다. 이들 옆에는 황인철 시민기후소송 청구인과 김서경 청소년 기후소송 청구인,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들이 함께 섰다.
김 활동가는 “제가 아기를 낳은 것은 그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어서였고, 태어난 아이가 자라 다른 누군가와 행복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는데 아들의 말에 낯이 뜨거워지고 커다란 죄책감이 들었다”면서 “가장 약한 존재들부터 시작해 결국 우리에게 닥칠 재난을 정부가 알아차리고 막을 수 있도록 헌재가 신속하고 정의로운 결단을 내려주시길 간곡히 바란다”고 울먹였다.
이들은 현재 기후위기는 존재하지 않으며, 앞으로의 위기에도 잘 대응하고 있다는 정부 측 논리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공동대리인단 이치선 변호사는 “변호인석에서 정부 측의 변론을 들으며 내내 서글픈 감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파리협정의 원칙, 즉 ‘차별화된 책임의 원칙’을 자의적으로 곡해하고 있다”면서 “이 원칙은 원래 지구 온난화에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더 강화된 감축 책임을 져야 한다는 취지인데, 정부는 이를 각국이 사정에 따라 알아서 감축하면 될 뿐이고 어떤 감축목표도 강제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2차 변론에서 최종 진술자로 나선 김서경, 황인철, 한제아 세 명의 청구인들은 손수 접은 메리골드 종이꽃을 들고 “개인의 역량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위기 앞에서 안전한 삶을 바라며 헌재 앞에 섰다”고 말했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행복은 오고야 만다’이다.
이들은 “정부는 지난 공개변론을 통해 기후 대응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면서 “평범한 사람의 삶, 일상이 유지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부분은 배제되어 있고, 어떻게 하면 산업계의 감축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의 논의만 반복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보여준 모습은 재난 앞에서 우리가 각자 알아서 버텨야 한다는 것만을 깨닫게 할 뿐”이라며 “대체 국가의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송은 단순히 국가가 기후대응을 얼마나 못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게 아니라 정부가 배제한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함”이라면서 “이 판결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을 사회를 기대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