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뽕계 회장님 명성도 덧없이…‘마지막 뽕 기술자’의 허망한 말로

전현진 기자

‘마약왕’으로 불리던 거물…뽕 다시 만들려 몸부림치다 쓸쓸한 죽음

“이 기술 배운 게 행운이자 불행 시작”…마약왕들 말년 상징적 대변

피해자 없는 범죄(Victimless crime). 마약이 대표적이다. 신고할 피해자가 없는 범죄 마약은 조용히 사회 곳곳에 퍼져갔다.

남녀노소·사농공상 가리지 않고 마약 투약자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저연령화’가 두드러진다. 가장 보편적인 마약류가 메스암페타민, 즉 히로뽕이다. 온갖 종류의 마약이 우후죽순 퍼져나간 데는 히로뽕이 60여 년 전부터 한국 땅에 중독의 토양을 만들어 놓은 영향이 컸다. 히로뽕 유통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만연한 마약 유통의 문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는 이유다.

주간경향에서 히로뽕의 역사와 현재 즉 대한민국 ‘뽕의 계보’를 5회에 걸쳐 되짚는다. 직업물 웹소설 및 실화 기획사 팩트스토리와 공동기획했다. <편집자 주>


[주간경향] 지난해 12월 13일 K가 87세를 일기로 숨졌다. 사인은 간암이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히로뽕 세계의 거물이면서 국내에 남은 마지막 히로뽕 제조 기술자였던 K는 이렇게 사라졌다.

K는 숨지기 며칠 전 병원에 입원했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자는 의사의 제안에 ‘집에서 죽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고 퇴원했다. 경기 여주의 지인 장모씨의 2층짜리 주택의 1층 작은 방이 그의 마지막 안식처였다. K의 사망 일주일 뒤 장씨의 집을 찾았을 때 작은 마당엔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강아지들이 뛰놀았다. 장씨는 “K가 죽기 전 함께 놀며 시간을 보내던 녀석들이다”라고 말했다.

K가 숨진 걸 처음 발견한 것도 장씨였다. 장씨는 1990년대에 교도소를 오가며 K와 알게 됐다. 당시 K는 히로뽕 세계에서 손꼽히는 거물이었다.

“히로뽕 세계에서는 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지. 최고의 기술자, 제대로 된 약(히로뽕)을 만드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고.” K의 마지막은 말 그대로 ‘마약왕의 죽음’이었다.

최후의 히로뽕 기술자

국내 마지막 남은 히로뽕 제조 기술자이자 거물급 유통업자로 꼽혔던 K. 그가 사망하기 1년여 전에 촬영된 사진이다. K는 한때 젊고 건강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전현진 기자

국내 마지막 남은 히로뽕 제조 기술자이자 거물급 유통업자로 꼽혔던 K. 그가 사망하기 1년여 전에 촬영된 사진이다. K는 한때 젊고 건강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쉬워했다. 전현진 기자

K는 원래 히로뽕 제조 전문가였다. 1990년대 밀조 공장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고 원료 수급이 어려워지자 밀조에서 밀매로 ‘업종’을 바꿨다. 그와 재혼한 아내 Y도 1980년대, 30대 시절부터 히로뽕을 제조해 팔던 ‘히로뽕계의 대모’였다. Y가 이 세계에서 유명해진 것은 다 K의 연락책으로 대신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히로뽕 유통업자들은 말했다.

1999년 한 언론에 나온 보도를 보면 국내 마약 밀매 1세대인 K와 Y는 1980년대 말 ‘범죄와의 전쟁’ 당시 붙잡혔다가 만기 출소한 뒤 다시 붙잡혔다. 이들 부부는 1996년 풀려난 뒤 히로뽕 제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중국산 히로뽕 2.75㎏을 밀수해 팔아온 혐의를 받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 중에 K를 기억하는 이가 많았다. 시리즈 첫 회에 거론한 M은 K의 밑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2회에 소개한 J도 K를 잘 알았는데, 그가 오래전 일본을 오가며 제조 기술을 배웠다고 했다. K를 “거물 중의 거물”, “회장님”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K는 국내에 하나 남은 최후의 히로뽕 기술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은 쓸쓸하기만 했다. K는 무연고 사망자로 장례가 치러졌다. 장씨는 K에게 남은 가족이나 친지가 없다고 했다. K보다 열세 살 어린 아내 Y는 오래전 먼저 숨졌고, 그의 자녀들이 K의 재산까지 챙겨 떠났다고 한다. K가 교도소에 갇히면서 맡겨둔 고급 시계까지 다 빼앗겼다고 장씨는 말했다. 그는 빈털터리로 교도소를 오가다 2019년 간암 판정을 받았다.

항암 투병을 하다 숨진 그가 발견된 것은 화장실 앞 바닥이었다. 장씨가 처음 발견했을 K는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고 쓰러져 있었다. 새벽에 쓰러졌다가 그대로 숨진 것으로 추정됐다.

“돌아가셨다는 생각도 못 하고 깨워봤는데, 안 일어나더라고. 몸이 그사이에 뻣뻣하고 차가워져서 흔들어봐도 가만히 있는 거야.”

죽기 전날까지도 K는 평소처럼 행동했다. 늘 같은 소파 한쪽 끝에 앉아 TV를 보다 잠자리에 들었다. 말기 간암으로 황달이 심해져 온몸이 노랗게 변했고, 음식도 잘 먹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26일 찾은 K가 살던 장씨의 집. 장씨는 옛 인연으로 K를 돌보며 함께 지내왔다. K는 사진 중앙에 보이는 소파 끝에 앉아 TV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전현진 기자

지난해 12월 26일 찾은 K가 살던 장씨의 집. 장씨는 옛 인연으로 K를 돌보며 함께 지내왔다. K는 사진 중앙에 보이는 소파 끝에 앉아 TV를 보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전현진 기자

쓸쓸한 말년

K는 죽기 전까지 쓸쓸한 말년을 보냈다. 빈털터리가 된 뒤에도 여러 사건에 연루돼 몇 차례 징역을 살았는데 그때 판결문에 남은 직업명은 폐지수집, 주차관리 등이었다. 한때 마약왕이라 불렸던 것과는 차이가 컸다.

그에겐 친구도 없는 듯했다.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지인은 장씨가 유일해 보였다. 그나마 교도소에 수감 중인 몇 사람과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듯했다. 하지만 그 역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가 쓰던 방에는 과거 징역을 살면서 쓴 공책이나 지인에게 쓸 편지의 초고 등이 남아 있었다. 공책에는 히로뽕의 세계에서 알게 된 이들의 연락처도 여럿 적혀 있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더는 쓸모없는 것이었다. 현실 세계에서 그는 연락할 사람도 없었다. 그가 남긴 전화기에 저장된 전화번호는 10개가 채 되지 않았다. 마지막 통화 기록은 사망 이틀 전의 정부미 배송 안내 전화였다.

K를 찾는 이들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하급 품질의 히로뽕인 ‘멍’(혹은 똥술)의 순도를 높여 달라며 찾아오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순도를 높이는 작업도 쉽지만은 않고, 이 역시 제조에 해당한다. 생각보다 신통치 않은 K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이들도 있었다. 장씨는 자신이 나서 이런 이들이 K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K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살려 히로뽕을 다시 만들어보겠다고 늘 생각했다. 하지만 원료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는 10여 년 전에도 히로뽕을 만들어보겠다며 일본제 비염 치료제를 구입하기도 했는데,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게다가 해외에서 값싸게 히로뽕을 들여올 수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더 무거운 처벌을 감내하고 K에게 히로뽕 제조를 의뢰할 사람들은 없었다.

히로뽕, 불행의 시작

K가 남긴 물품 중 상당수는 쓸모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고 장씨가 버리기 위해 모아뒀다. 전현진 기자

K가 남긴 물품 중 상당수는 쓸모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고 장씨가 버리기 위해 모아뒀다. 전현진 기자

“신세를 진 사람들한테 마지막으로 만들어줘야 할 텐데….”

K는 숨지기 전까지 이런 말을 곧잘 했다고 한다. 그가 만든다는 것은 히로뽕이었다. 죽기 전에 한 번 특기를 살려 신세 진 이들에게 갚아 볼 요령이었다. 그런데 정작 오랫동안 그 기술을 써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K는 실제로 죽기 전에 이런저런 화학 기구를 사 히로뽕 제조를 시도했지만, 원료를 구하지 못해 실패했다고 한다.

병들고 나이 들어 힘도 없는 그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히로뽕 제조였다. 제조법을 알려달라는 이들에게는 조금 알려주는 듯하다가도 정작 중요한 내용은 입을 닫았다. 자신의 비법이었기 때문인지, 자신이 안고 가버리려던 것인지는 알 수 없게 됐다.

K는 유일한 장기마저 오랫동안 써먹지 못하고 비루해져 가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했다. 장씨는 K가 과거에는 키 170㎝를 훌쩍 넘는 건장한 체격을 자랑했다고 한다. 2019년의 수용자 건강진단을 보면 그의 키는 167㎝, 체중은 73㎏이었다.

최근 쓰다가 만 편지의 초고로 보이는 글에 K는 자신의 몸무게가 60㎏이 채 안 되게 살이 빠져 뼈만 남았다고 썼다. 이 세계 최고 대부라 여겨졌던 그도 결국은 돈 없고 히로뽕이 없으니 병든 노인이기만 했다. K는 이런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다. 편지의 내용은 이랬다.

“얼굴이나 몸이 옛날하고는 천지차이지요. 아우님하고 만날 때는 그래도 어디에 가도 다시 쳐다봐주는 그런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지금은 내가 나를 봐도 너무너무 형편이 없는 찌그러진 맥주캔처럼 슬픈 내가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지요.”

K는 자신의 불행이 결국 히로뽕 제조 기술을 배워 이 세계에 입문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그가 교도소 수감 중 쓴 것으로 보이는 작은 메모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내가 이런 기술을 배우게 된 것이 나에겐 행운이자 불행의 시작이었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던 마약왕의 마지막은 이처럼 쓸쓸하고 허망한 것이었다. 그는 죽기 전에도 몇 차례나 히로뽕을 투약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욕망은 남았지만 노쇠해진 자신의 불행을 안타까워했다. 그가 남긴 것 중에는 눈에 띄는 유품도, 기억할 만한 업적도 없었다. 마약왕이었던 그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은 많았지만, 그를 추모하는 이는 없었다.

K가 사망하기 몇 해 전 장씨가 운전하던 차에 탔다 교통사고가 났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몇 안 되는 사진이다. 전현진 기자

K가 사망하기 몇 해 전 장씨가 운전하던 차에 탔다 교통사고가 났다. 두 사람이 함께 찍은 몇 안 되는 사진이다. 전현진 기자

‘뽕의 계보’의 결말

지난 4회까지는 주로 히로뽕 유통의 역사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주요한 인물들의 경험담으로 전했다. 히로뽕 유통업자들의 경험담과 환경의 변화를 주로 다루고 있기에 히로뽕 유통 방식을 세밀하게 묘사했고, 유통업자의 입장에 선 듯한 표현을 썼다.

주로 히로뽕 유통업계의 거물들을 취재했고, 그 역사적 과정을 소개하는 것이기에 히로뽕의 세계에 잠시 발을 담근 이들이나 중독으로 고통받는 투약자, 재활에 힘쓰는 중독자들에 대해선 다루지 못했다. 지금 진행 중인 새로운 변화에 대해선 짧게 거론하는 선에서 그친 것도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의 마약왕이었던 K의 죽음은 뽕의 계보가 어떻게 끝을 맺을지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처럼 보였다. 취재하면서 K를 비롯해 한국의 마약왕이라 할 만한 이들을 여럿 만났다. 하지만 해외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호화로운 마약왕의 모습은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이들은 히로뽕에 중독돼 삶이 망가지는 것을 경험했고, 가족과 헤어지고,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당하는 일을 겪어야 했다. 이 히로뽕 세계의 대부들은 마약사범이 무슨 이야기를 하든 절대 믿지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히로뽕 중독에 익숙해진 투약자들은 히로뽕을 사고팔기 시작한다. 그렇게 손에 쥔 돈에 다시 한번 중독됐다. 히로뽕을 전파하며 번 돈은 허무하게 써버리거나 어딘가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뽕의 계보에 이름을 올린 이들은 늘 수사기관의 추적에 긴장하며 살아갔고, 재판 일정이 다가올 때는 잠을 설치기도 한다. 자살 충동과 불면증을 동반한 우울증 진단을 받기도 한다.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해 우울감을 느끼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수없이 받아도 수사와 재판은 늘 긴장되고 조마조마하다. 반복되는 징역살이에 자신을 ‘사회 부적응자’라 칭하기도 한다. 인생의 상당 부분을 교도소에서 보낸다. 자유 박탈은 익숙해지지 않고, 밖으로 나오면 자유에 굶주린 듯 남용하다 곧 그 자유를 잃는다.

출소할 때마다 새롭게 변한 세상에 익숙해지지 않는다. 히로뽕 거물들은 대면 거래를 선호하는데, 이는 직접 얼굴을 보고 쌓는 신뢰가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비대면거래를 위한 간단한 스마트폰 사용법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반복된다. 지난해 대검찰청이 낸 <2022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마약류 사범의 전체 재범률은 2018년 36.6%, 2022년 35.0%로 비슷했다. 10년 전인 2004년(30.2%)보다 조금 높은 상태로 유지되고 있다. 특히 향정(향정신성의약품)사범의 재범률이 2018년 41.0%, 2022년 38.2%로 마약·대마 사범보다 높았다. 2004년(36.7%)에도 마찬가지였다. 일회성 단순 호기심에 투약한 이들을 빼면 매우 높은 수치다.

사회와 교도소를 오가는 것이 히로뽕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들이 대부분 겪게 되는 삶의 여정이다. 앞날이 예상되는데도 불길로 날아드는 불나방처럼 히로뽕을 비롯한 마약 판매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돈이다.

지난 회에 소개한 L은 “마약왕이 되겠다고 이 바닥에 뛰어드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 큰돈을 벌어보겠다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마약을 팔아 잠깐은 돈을 벌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 붙잡힐지 몰라 유흥비로 탕진하거나, 변호사비로 써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수감 생활을 하고 나오면 빈손이 돼 다시 돈을 벌겠다며 이 일에 뛰어드는 게 반복된다.

히로뽕 유통은 이렇게 생업이 된다. 앞서 언급한 재범률은 투약에 중독되는 것뿐 아니라 판매에도 중독된다는 걸 보여주는 건 아닐까. 먹고살 길이 막막한 히로뽕 중독자는 결국 히로뽕을 파는 것 외에는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히로뽕을 팔아 큰돈을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예가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반짝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이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취재 중 직접 만난 이들은 ‘짧게 호화로운 생활을 보낸 적은 있지만, 영구적인 큰 부를 이루지는 못했다’라고 했다.

다수의 마약 사건을 경험한 한 변호사는 “히로뽕 장사로 큰돈을 벌어 잘 유지하고 사는 이는 거의 없다”라고 지적한다.

K의 쓸쓸한 죽음이 한탕 벌어보려는 이들에게 전해주는 교훈은 어쩌면 명확하다.

“지금은 내가 나를 봐도 너무너무 형편이 없는 찌그러진 맥주캔처럼 슬픈 내가 되고 말았으니, 참으로 슬픈 일이지요.”

K가 지인에게 보내기 위해 쓴 편지의 초안. 그는 소수의 지인과만 연락하고 지냈고, 마르고 왜소해진 자신의 모습을 종종 한탄했다. 전현진 기자

K가 지인에게 보내기 위해 쓴 편지의 초안. 그는 소수의 지인과만 연락하고 지냈고, 마르고 왜소해진 자신의 모습을 종종 한탄했다. 전현진 기자

※이번 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전현진 기자 / 공동기획 팩트스토리

히로뽕계 회장님 명성도 덧없이…‘마지막 뽕 기술자’의 허망한 말로
인생과 직업은 스토리로 가득하다. 팩트스토리는 직업 소재 및 범죄스릴러 웹소설 웹툰, 실화 논픽션 기획사입니다. 드라마 원작 논픽션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의 원작사이며, 웹소설과 논픽션 등 16개 스토리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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