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 낙인의 대물림(1)

‘문신’ 있다고 삼청교육대···‘파혼’ 당한 딸은 세상 등졌다

전지현 기자
삼청교육대 피해자 A씨(66)가 2019년쯤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차린 제사상. A씨 제공 사진 크게보기

삼청교육대 피해자 A씨(66)가 2019년쯤 세상을 떠난 딸을 위해 차린 제사상. A씨 제공

A씨(66)는 큰딸이 죽은 연도를 명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5년 전인가? 아니 6년 전이던가?” 그는 시간의 흐름을 놓치곤 한다. 기일에 제사 지내고 유해를 뿌린 부산 기장 앞바다를 매년 찾을 뿐이다.

1984년생이다. 어릴 적 관광가이드를 꿈꾸던 딸은 2017년 결혼을 앞뒀다. 약혼이 깨지고 말았다. A씨의 예비 사돈이 “삼청교육대 출신 집안에 아들을 결혼시킬 수 없다”며 반대했다.

A씨는 22살이던 1980년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 강제 연행돼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37년이 지난 뒤 딸에게 ‘죄인’이 됐다. 딸은 파혼 이후 망가졌다. 2~3년간 매일같이 술을 마셨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아버지가 나쁜 데를 다녀와서 내 신세를 망쳤다”는 말은 지금까지도 마음에 대못으로 박혀있다.

A씨는 이 일로 아내와도 다퉜다. 도피하듯 가족과 함께 살던 부산을 떠나 홀로 제주에 정착했다. 2019년쯤 딸이 신변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는 부고를 들었다.

“내가 그때 안 끌려갔으면, 딸내미가 애 낳고 잘 사는 모습을 봤을 텐데···.” A씨는 28일 기자와 통화하며 말끝을 흐렸다.

44년이 흘러도 여전한 ‘낙인’

삼청교육대는 전두환 신군부가 1980년 “불량배를 일제 검거하겠다”며 7개월 간 전국 군부대에 3만9742명을 영장 없이 강제 입소시켜 집체·순화 교육을 한 인권 탄압 사건이다. 피해자들은 강제노역·가혹행위 등 국가 폭력을 당했다. 출소 뒤에도 ‘불량배’ 혹은 ‘부랑자’일 것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짊어지며 살아왔다. 그 낙인은 현재 진행형이다.

A씨는 “딸을 생각하다 보면 삼청교육대에서의 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기억난다”며 “어떻게 굶주렸는지, 어디를 폭행당했는지가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몸에 문신을 새겼다는 등의 이유로 군부대로 영장 없이 끌려와 훈련을 받고 있는 삼청교육대 수련생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진 크게보기

몸에 문신을 새겼다는 등의 이유로 군부대로 영장 없이 끌려와 훈련을 받고 있는 삼청교육대 수련생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부산의 한 보육원 출신인 A씨는 몸에 새긴 문신이 문제가 돼 1980년 부산 중부경찰서에 연행됐다. 그는 “고아다 보니까, 남한테 약해 보이기 싫어서 어린 마음에 양쪽 팔뚝에 문신을 새겼다”며 “저는 몸에 그림이 있다는 이유로 끌고 갔다. 동네 가게에 외상을 그은 사람들도 잡아갔다”고 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보고서를 보면 그는 2년4개월 간 군부대·보호감호소 등에서 순화교육·근로봉사·보호감호 처분을 받았다. 폭력으로 얼룩진 세월이었다. “(군인들이) 군홧발로 차고, 몽둥이로 때리고, 할당 작업량을 못 채우면 포복 얼차려를 시켰다”고 A씨는 회상했다.

1982년 12월 A씨는 느닷없이 ‘출소’를 당했다. 사회에 내던져졌지만 ‘삼청교육대 출신’이라는 낙인은 평생 그의 발목을 잡았다. 그는 “조그마한 공장에 취업하려 해도 퇴짜를 맞아 막노동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20~30대 내내 ‘불량배’라는 사회적 시선이 A씨를 따라왔다. 그 와중에 만난 아내와 가정을 꾸려 딸·아들을 키울 때가 A씨에겐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 그는 “공사판을 다니면서 애들을 키우려고 열심히 살았다”고 했다.

겨우 떨쳐낸 그림자는 딸의 죽음으로 다시 짙어졌다. A씨가 처음에 2기 진실화해위에 피해사례를 접수하길 주저했던 건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는 “딸이 나 때문에 세상을 떠났으니 솔직히 국가배상은 생각에도 없었다”고 말했다.

국가의 사과·배상을 받는다면 ‘나쁜 짓을 하다가 끌려간 게 아니다’라는 떳떳함이 생길까 하는 마음과 남은 아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그를 움직였다. A씨는 지난해 7월 진실화해위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이는 권고일 뿐이라, 국가를 상대로 한 개별 소송은 개인이 알아서 진행해야 했다.

지난달 26일 제주지법은 국가가 A씨에게 2억6000여만원을 위자료로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내놨다. “이제 끝났구나”라는 생각은 잠시였다. 국가는 지난 14일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A씨 측 변호인은 “아직 항소이유서를 받아보지 못했지만 위자료 금액 산정이나 소멸시효의 문제 등이 이유일 수 있다”며 “통상 1심에서 끝나지 않는다더라”고 했다.

A씨는 법정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변호사에게서 ‘대한민국이 항소한다더라’는 문자를 받았다”면서 “어린 나이에 고생하고, 가족들이 본 피해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푸나 했는데, 아직 멀었나 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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