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상은 모든 여성의 이야기”···재독 시민단체가 독일 베를린 소녀상 지키는 이유

배시은 기자
한정화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2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베를린 소녀상’과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사진 크게보기

한정화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 대표가 2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베를린 소녀상’과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독일 베를린시 미테구의 공공부지에는 ‘아리’라는 이름의 ‘평화의 소녀상’이 2020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동상 앞을 지나가는 누구나 아리를 쓰다듬을 수 있고 그 옆 빈 의자에 앉아 쉬어갈 수도 있다. 여기에 소녀상을 세우는 데 앞장선 한정화 재독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코협) 대표는 2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소녀상 앞에서 낙엽을 쓸다 보면 시민들이 소녀상을 만나게 해줘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기도 한다”며 웃었다.

일본이 철거를 위해 압력과 로비를 벌여온 소녀상은 최근 베를린 시장의 발언으로 존치 여부가 위태로워졌다. 일본을 방문한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이 지난 16일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을 만나 소녀상 철거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베를린시는 ‘일방적인 표현’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보편적인 전시 성폭력’에 관한 상징물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주재 일본 대사를 소녀상 존치 논의에 참여시킨다는 것이 베를린시의 입장이다. 코리아협의회는 곧바로 “베를린시가 일본 정부의 압력에 굴복하고 있다”며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한 대표는 베를린시의 발표에 “기가 막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7일 한국에 방문해 한국정부의 소녀상 무대응을 규탄하는 기자회견과 수요집회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 코협이 미테구에 소녀상을 설치한 뒤 이를 철거하기 위한 외교적 압박을 계속하고 있다. 소녀상 설치 2주 만에 미테구청은 일본 정부의 항의로 소녀상 철거명령을 내렸다. 코협이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 철거 명령이 보류되고 미테구의회가 소녀상 존치 결의안을 채택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독일 카셀주립대학에 2022년 세워진 소녀상 ‘누진’도 일본 정부의 압박 끝에 지난해 3월 기습적으로 철거됐다.

독일 시민들이 2020년 10월 베를린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동상을 살펴보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사진 크게보기

독일 시민들이 2020년 10월 베를린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동상을 살펴보고 있다. 베를린|연합뉴스

한 대표는 “이런 갈등을 만드는 게 누구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베를린 시민들은 이미 소녀상을 받아들이고 합의를 이루었음에도 각국 정치권이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취지의 말이다. 베를린 시장의 철거 시사 발언 이후 유럽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베를린 시민 등이 베를린시청 앞에서 소녀상 존치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카셀대 학생들도 소녀상 철거 뒤 소녀상 가면을 쓰고 시위에 나섰다.

코협은 소녀상 근처에 ‘위안부 박물관’을 열고 이곳을 찾는 학생을 대상으로 일본군 위안부를 포함한 세계의 전시 성폭력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 대표는 “철거 위협이 있을 때마다 시민들이 연대하고, 교육 프로그램 참여 예약도 이어지는 등 소녀상에 대한 현지의 관심이 뜨겁다”며 “이제는 소녀상이 독일 역사의 일부분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왜 해외에 소녀상을 꼭 설치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한 대표는 “소녀상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넘어 ‘여성 보편의 문제’를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전쟁에서 특히 성폭력이 많이 이뤄지지만, 일상에도 강간이 있고 교제폭력·살인이 일어나는 등 여성의 몸에 대한 폭력은 어디에나 있다”며 “소녀상은 가부장제라는 권력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해결되지 않았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소녀상 문제를 포함해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한국 정부도 비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과거사가 걸림돌이 될 수는 있지만 인내할 것은 인내해 가면서 가야 할 방향을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베를린 시장의 소녀상 관련 발언에 관해 “민간 차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에 한일 정부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피해국인 한국이 적극적인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 해결을 막고 있다”며 “일본 정부와 원활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오히려 과거 청산이 우선이지 않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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