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재심 무죄 선고에도 형사보상 지급 지연, 피해자는 이중 고통

유선희 기자    김나연 기자

고 김달수씨 유족 측 “국가 대상 손해배상 청구”

강원 속초·고성·양양지역에서 발생한 간첩사건을 다룬 1969년 2월 25일자 경향신문 보도. 사진 크게보기

강원 속초·고성·양양지역에서 발생한 간첩사건을 다룬 1969년 2월 25일자 경향신문 보도.

과거사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 받아도 피해자 유족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법원이 형사보상 결정을 미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김해자씨(67)의 아버지 고 김달수씨는 1968년과 1972년 동해상에서 배를 타고 조업을 하던 중 두 차례 납북됐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 중학교 2학년이었던 김씨는 여전히 그날의 일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일을 하러 나간 아버지가 한동안 집에 오지 않다가 온몸이 만신창이가 돼 돌아온 모습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5일 기자와 통화에서 “아버지가 한차례 고문을 당한 이후 오빠가 배를 탔는데, 오빠가 군대에 가게 돼 생계를 위해 아버지가 어쩔 수 없이 배를 탔다”며 “또 똑같이 간첩 누명으로 끌려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출소 후 집에 돌아오셔도 얼마나 모진 고문을 당했으면 제가 부르면 ‘예, 예’ 이렇게 대답을 하고, 제대로 앉지를 못하셨다”고 기억했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아버지의 감옥살이가 얼마나 가혹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그저 울었다.

어선 피랍은 남북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65년 이후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고조에 달한 때는 1967년과 1968년였다. 김씨 아버지도 명태잡이 배를 탔는데 납북됐다가 돌아왔고 간첩 혐의(반공법 위반 등)를 받았다. 1968년에는 집행유예 처분을 받았지만 1972년엔 1년6개월 징역을 살았다.

뒤늦게 납북귀한 어부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김씨는 2022년 3월과 6월 아버지 사건에 대한 재심을 각각 청구했다. 법원은 지난해 1월과 11월 모두 ‘무죄’로 선고했다.

1년 넘도록 형사보상 못 받아…‘산 넘어 산’

김씨 측은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지자 법원에 형사보상을 청구했다. 국가는 형사재판 절차에서 억울하게 구금 또는 형 집행을 당한 이에게 손해를 보상할 의무가 있다. 형사보상법 제14조3항은 ‘보상 청구를 받은 법원은 6개월 이내에 보상 결정을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김씨는 먼저 무죄 선고가 나온 1972년 간첩누명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4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에 형사보상청구서를 냈다. 그러나 법원은 1년이 넘도록 이행하지 않고 있다. 김씨는 “모진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 청구했는데 이렇게 시간이 미뤄지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형사보상제도는 법률로 규정하고 있지만 강행규정이 없다. 기한을 지키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가 없는 것이다. 결국 김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김씨 측은 이날 서울중앙지법에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지연손해금 300만원을 지급하라”고 소장을 제출했다.

유족을 대리하는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재심 청구부터 선고까지 10개월 정도 걸렸는데, 정작 형사보상 청구는 1년 넘게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명백히 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은 각급 법원의 형사보상 담당 재판부가 법이 정한 처리기한을 준수하는지 모니터링하고 적절한 사법행정지도를 해줘야 한다”며 “과거사 재심 사건은 국가의 불법성이 인정돼 진행된다는 특성이 있는 만큼 피해자와 유족들의 신속한 권리구제를 우선에 둬 재판하고, 피해회복을 위한 형사보상 또한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관계자는 “해당 사건 이외에 다른 과거사 재심 무죄에 따른 형사보상 청구가 접수돼 있어 함께 처리하려고 시일이 지연됐다”며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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