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는 가해자의 범행동기가 가중처벌의 이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경남 진주의 한 편의점에서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폭행당한 피해자 A씨가 20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창원지법 형사1부(이주영 부장판사)는 A씨와 그를 도운 50대 남성을 폭행한 20대 남성 B씨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사건 당시 B씨가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었다”며 “혐오범죄인 점에 비춰 1심 양형이 너무 적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B씨는 A씨의 짧은 머리를 보고 “짧은 머리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한다”는 말을 하면서 수차례 A씨를 폭행했다. B씨는 이를 말리던 50대 C씨도 폭행했고, 특수폭행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B씨가 2022년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으로 입원 치료를 받은 사실과 법무부 국립법무병원의 정신감정 회신,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임상 심리평가 결과 등을 근거로 심신미약의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A씨는 가해자가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사건 당시 가해자는 변별력이 충분한 상태였다. B씨가 여성혐오주의자가 아니었다면 내가 피해자가 될 일도 없었을 것”이라며 “이번 사건이 혐오범죄라는 점을 재판부가 명확히 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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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건 후유증으로 청력이 손실돼 보청기를 착용한다. 이명 증세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말을 알아듣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A씨는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고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재판부가 나서서 감형해준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앞서 B씨는 재판부에 반성문을 7차례 제출했는데, 정작 A씨는 법원의 불허로 이 기록을 열람하지 못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피해자가 소송 기록을 열람·등사할 수 있는지를 재판장 재량에 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A씨는 “그동안 피고인은 나를 도와주셨던 조력자 선생님과 나에게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재판 전 합의를 시도하다가, 잘 이뤄지지 않자 400만원을 주겠다며 연락이 왔을 뿐”이라며 “제가 정말 보고싶은 건 반성문이 아니라 가해자에 대한 강한 처벌이 담긴 올바른 판결”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판이 끝난 후 경남여성단체연합도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폭행당했다”며 “이번 사건은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인만큼 2심 재판부는 그에 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A씨 등을 지원하고 있는 정재흔 여성의당 경남도당 위원장은 “대법원 양형기준위원회에 따르면 양형 가중요소 중 ‘비난할 만한 동기’가 있다”며 “명백하게 여성혐오에 의한 범죄이기 때문에 이를 가중 처벌의 근거로 삼는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B씨에 대한 다음 공판은 다음달 18일 오전 11시 20분 열린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