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젊은 공무원의 죽음(2)

서른살 공무원 떠난 빈 책상에 남은 책은 ‘무너지지만 말아’였다

강한들 기자    전현진 기자
지난 2월26일 숨진 채 발견된 경남 양산시 보건직 공무원 김수진씨(가명)가 지난 2월 어머니 송명옥과 ‘눈을 보러 가고 싶다’며 떠났던 덕유산 여행에서 남은 사진. 송명옥씨 제공 사진 크게보기

지난 2월26일 숨진 채 발견된 경남 양산시 보건직 공무원 김수진씨(가명)가 지난 2월 어머니 송명옥과 ‘눈을 보러 가고 싶다’며 떠났던 덕유산 여행에서 남은 사진. 송명옥씨 제공

올해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반직 공무원은 언론 보도 등으로 알려진 인원만 8명이다. 과도한 업무 부담과 직장 내 괴롭힘, 악성민원 등 다양한 이유로 사망했다. 특히 임용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은 이들도 많았다. ‘철밥통’이라 불리던 공무원 사회는 어쩌다 젊은 공무원의 무덤이 됐을까. 숨진 청년 공무원 두 명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봤다. 20~30대 공무원들이 이야기하는 공무원 생활의 어려움도 들었다. 3회에 걸쳐 연재한다.

경남 양산의 보건직 공무원이었던 김수진씨(30·가명)는 지난 2월2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책상 위엔 그가 쓰던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하루 한 끼 건강한 음식 먹기’ ‘수영 배우기’ 그리고 브로콜리·바나나·저지방 우유가 들어간 건강식 제조법을 적은 것이다. 브로콜리 옆에는 작은 글씨로 ‘노화방지·면역체계 강화·피로회복’을 썼다. 한창이었던 젊음을 더 건강하게, 더 단단하게 보내려는 의욕이 다이어리 곳곳에 남았다.

책장 한편에는 수진씨가 공시생 시절 의지했던 책 <무너지지만 말아>가 있었다. 수진씨의 친구 허진영씨(30·가명)는 그 책을 보고, 4년 전 수진씨가 자신에게 선물했던 책을 떠올렸다. <독하게 합격하는 방법>. 2020년 진영씨가 잠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수진씨가 건넨 책이었다.

심지가 굳은 친구였다. 3년 내내 같은 반에서 보낸 고등학교 시절, 진영씨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수진씨는 ‘너마저 흔들려선 안 된다’며 토닥였다. 그랬던 친구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진영씨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김수진씨(가명)의 유품인 <무너지지만 말아>라는 제목의 책. 수진씨는 이 책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힘들 때 읽었다. 강한들 기자

김수진씨(가명)의 유품인 <무너지지만 말아>라는 제목의 책. 수진씨는 이 책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힘들 때 읽었다. 강한들 기자

누구보다 ‘잘 살고’ 싶었던 수진씨

수진씨는 공무원을 꿈꾸지 않았다. 오히려 원치 않았다. “엄마처럼 많이 일하는 공무원은 하고 싶지 않아.” 그의 모친 송명옥씨(57·가명)에게 했던 말이다.

간호학과를 택한 것도 수진씨의 의지는 아니었다. 고교 시절, 수진씨의 아버지는 친척의 보증을 잘못 섰다 빚더미에 앉았다. 집도, 차도 경매에 넘어가며 가세가 기울었다. 수진씨는 취직이 잘되는 학과를 찾아야 했다. 2013년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그 이후에도 ‘안정적인 삶’에 대한 갈증은 그의 진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진영씨는 수진씨가 “다른 직장과 달리 육아휴직 등 공무원으로서 가능한 혜택도 누리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고 했다. 수진씨는 공직에 도전했고 보건직 공무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수진씨(가명)가 썼던 다이어리. 각종 건강식 레시피가 적혀 있다. 강한들 기자

김수진씨(가명)가 썼던 다이어리. 각종 건강식 레시피가 적혀 있다. 강한들 기자

그는 왜 떠나야 했나

2021년 1월 양산시 보건직 공무원으로 임용된 수진씨는 2년 반 동안 사회복지 직무를 맡았다. 자신에게 부여된 보건 직무와는 다른 일이었다. 진영씨는 처음으로 수진씨의 입에서 ‘욕설’을 들었다. 재산 기준이 넘는 민원인이 ‘왜 나는 수급을 받지 못하냐’며 괴롭힌다는 얘기였다. 평소 입이 무거워 자기 얘기를 하지 않는 수진씨였기에 이 장면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았다.

수진씨는 지난해 7월 본 직무인 보건소 민원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는 진영씨에게 “전보다는 수월하다. 살 만하다”고 했다.

수진씨의 ‘살 만한’ 순간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발령 6개월 만인 올해 1월 다시 인사가 나 보건소 의약팀으로 옮겼다. 의사·약사를 주로 대하는 부서였다. 처음 맡는 업무는 낯설었을 뿐만 아니라 오래 걸렸다. 1월 한 달 동안 수진씨의 추가 근무는 66시간30분이었다. 오후 9시를 넘긴 퇴근이 일쑤였고 일요일 4번 중 3번을 출근했다.

수진씨의 이모는 그 당시 조카의 절박함을 기억하고 있다. 지난 1월23일 전화해 ‘2019년 폐업한 약국이 기록상 마약류 향정신성 의약품이 60정 남은 것으로 돼 있는데, 이를 확인할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폐업 당시 마약류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약국의 탓인지, 해당 기록을 제대로 남겨놓지 않은 보건소의 잘못인지 다툼이 있는 사안이었다. 이모가 약사라 이모에게 물었던 것이다. 수진씨의 동료들은 “법을 다루는 업무가 많고 민원 제기가 많아 연차가 쌓이지 않고 책임감은 강하지만 마음이 여린 분에게는 부담이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수진씨의 입사 동기는 “상사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 업무가 고발하는 일이라 민원에 시달리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며 “저연차 공무원에게 큰 책임이 몰리고, 악성 민원의 타격도 쌓인 게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2월 26일 세상을 떠난 채 발견된 경남 양산시 보건직 공무원 김숙진이 일했던 양산시 보건소 의약팀 앞에 지난 4월 16일 ‘악성 민원은 살인’이라는 추모 패널이 놓여 있다. 강한들 기자

지난 2월 26일 세상을 떠난 채 발견된 경남 양산시 보건직 공무원 김숙진이 일했던 양산시 보건소 의약팀 앞에 지난 4월 16일 ‘악성 민원은 살인’이라는 추모 패널이 놓여 있다. 강한들 기자

“차라리 공장 가서 일하면 안될까” “민폐만 끼치는 것 같아”

수진씨는 2월에도 초과근무가 잦았다. 2월16일엔 코로나19에 걸렸다. 직후인 2월20일 양산 부산대병원 전공의 163명 중 95%인 155명이 사직서를 내는 등 전공의 집단행동이 시작됐다. 그는 전공의 집단행동 시작일부터 나흘간 약 13시간 초과근무를 했다. 정부가 보건의료 재난위기경보를 ‘심각’으로 격상하면서 그가 속한 팀은 대책본부가 됐다.

전공의 집단행동 이후 대책본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수진씨는 결혼을 앞둔 친구 김미연씨(30·가명)에게 전화했다. 수진씨는 “결혼식에 못 갈 것 같다. 주말에도 출근을 해야 할 거 같다”면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 민폐인 것 같다. 일을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미연씨가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물었지만 ‘아니다’라고 답했다. 마지막 인사였다. 진영씨는 “업무가 과중해서 힘든 점과 소화하지 못해서 주변 사람에게 민폐라고 했던 거 같다”고 말했다.

여행을 좋아하던 수진씨는 ‘눈을 보러 가고 싶다’며 덕유산에 엄마 송명옥씨와 지난 2월 초 여행을 갔었다. 수진씨는 명옥씨에게 “교육행정직 하면 안 될까” “사서직 하면 안 될까”라는 말을 꺼냈다. 2월 중순쯤에 수진씨는 명옥씨에게 다시 전화해 “간호사 자격증 있는 사람을 공무직으로 뽑네. 공무직 하면 안 될까”라고 물었다. 2월23일에도 또다시 전화해 “엄마, 그냥 나 공장 가서 일하면 안 될까”라고 물었다. 마지막 통화였다. 정기 감사로 지쳐 있던 명옥씨는 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전화를 끊을 때 “잘 살아래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이 말도 못했다. 명옥씨는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잘 살아래이’ 했으면 잘 살았을지도 모를 낀데. 아직도 여행 가 있는 거 같아서….” 수진씨가 수영과 영어를 배웠던 이유도 ‘여행 가서 써먹으려던 거’였다.

진영씨는 “차라리 못됐다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으니 힘들다고 소리라도 쳤으면 어땠을까”라며 “누군가 묵묵히 열심히 한다고 해서 피해를 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무원노조 양산시지부는 지난 5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수진씨 죽음의 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결과 발표는 7월쯤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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