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창원 “한국 사법체계, 부끄러운 줄 알아야”

김찬호 기자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 인터뷰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이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이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주간경향] 법치를 근간으로 하는 국가는 ‘사적 제재’를 허용하지 않는다. 사적 제재는 존재 자체로 공권력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된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사적 제재를 설명할 때면 이성적 판단과 별개로 형용사 하나가 더 붙을 때가 많다. ‘오죽하면’. “오죽하면 사적 제재를 하겠나”라는 심정적 동조다. 2004년 발생한 밀양 성폭력 사건은 ‘오죽하면’의 대표 사례다. “정의는 죽었다”는 표현으로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밀양 사건에서 공권력은 무력했다. 대중의 공분을 만든 이 사건은 결국 20년 만에 사적 제재를 불렀다. 다만 심정적 동조를 보낼 행위의 주체가 조금 다르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밀양 사건의 사적 제재는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제3자에 의한 것’이었다.

사건이 재점화된 초기 ‘피해자의 사적 제재’와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는 구분되지 않았다. “미뤄진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점에서 동일한 것으로 봤다. 법적 처벌 가능성 측면에서 엄연히 다른 범주에 속했지만 두 사례 모두 ‘오죽하면’의 대상이 됐다. 피해자 동의를 받았는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가능성은 없는지 등은 고려대상에서 밀렸다. 실제로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문제가 확인됐다. 그럼에도 “가해자 처벌만 하면 되지 않느냐”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다. 이 논란 속에 피해자가 받을 고통은 고려되지 않았다.

지난 6월 13일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이 현상에 관해 물었다. 표 소장은 사적 제재를 옹호하지 않았다. 다만 “사적 제재를 비판하기 전에 수사, 기소, 재판을 담당하는 한국 사법체계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에서 이번 사태의 시작점이 보였다.

-‘사적 제재’가 정확히 무엇인가.

“세 가지 복합 개념을 혼용해 사용되고 있다. 우선, 사적 형벌이다. 국가는 정해진 형사 절차를 거쳐 유죄가 확정된 자에게 형벌을 부과한다. 이 과정을 생략하고 개인이 폭행, 감금, 살해 등의 형벌을 내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회사나 특정 조직이 징계 규정 등 집단 내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위반해서 소속원에게 유·무형의 불이익을 주는 경우다. 마지막으로 최근 급증하는 것이 온라인 등에서 이뤄지고 있는 신상 공개, 조리돌림 등이다. 신체에 대한 가해행위가 반드시 동반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형벌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적 제재를 나눠서 봐야 하는 것은 각각의 행위가 불법을 구성하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적 형벌이나 집단이 가하는 폭행 등의 린치(Lynch)는 범죄다. 반면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 ‘집단 따돌림’, ‘조리돌림’ 같은 경우는 법적으로 처벌 가능한지 아닌지가 모호한 측면이 있다. 개념으로만 보면 공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괴롭힘 등의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동일하지만, 책임 등 처벌의 영역에서 보면 각각의 행위가 구분된다.”

단순히 폭로에만 그치면 해결되는 것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정의감을 보다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적 제재 주체에 따라서는 어떻게 구분하나.

“우선,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에게 제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법적으로는 ‘자력구제’, ‘정당방위’ 여부를 따질 수 있는 경우다. 그런데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공적 시스템을 생략하고 제재를 가하는 경우도 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경우는 없다. 비질란테(Vigilante·자경단)로 대표되는데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는 윤리적·법적 정당성 측면에서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

-밀양 사건으로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가 논란이 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제3자에 의한 사적 제재는 반드시 ‘자의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범죄자 상당수도 자기 범죄의 정당화 근거로 ‘자의적 판단’을 언급한다. 극단적 예를 들면 연쇄살인범 유영철도 본인은 ‘사적 제재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밀양 성폭력 사건처럼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식의 사적 제재가 용인되면 누군가의 극단적 망상을 사적 제재로 합리화할 가능성도 있다.”

-밀양 사건처럼 특별한 상황에만 사적 제재를 하는 것은 ‘문제없다’는 주장도 있다.

“지금이야 형사 사법제도가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상황이 분명해 보이고, 이런 경우에만 사적 제재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극히 일부라도 허용되기 시작하면 적용 영역은 조금씩 확장될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자신의 행위는 특별한 상황이라고 주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쁘다’라는 가치판단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 문제다. 정치적·인종적·성적 소수자에 대한 가치판단이 대표적 사례다. 무슨 기준으로 어떤 때는 나쁘니까 사적 제재가 되고, 어떤 때는 안 된다고 판단할 수 있나. 간통죄는 과거에는 범죄로 인정됐지만 이제 폐지됐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간통죄 폐지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상간남, 상간녀를 자신의 기준에 맞게 처벌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여 사적 제재를 시작하면 이것은 정당한가, 아닌가. ‘누가’ 판단할 것이냐는 더욱더 문제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유튜버에 의한 가해자 폭로 방식은 지목된 사람이 실제 사건의 가해자가 맞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자신이 미워하고 괴롭히고 싶은 사람을 성범죄자로 낙인찍어 버리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떤 형태의 사적 제재든 ‘범죄’가 되나.

“범죄 판별에서는 누구에게나 같은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 다만 법을 어겼다고 모두 범죄로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아동학대에 시달린 피해자가 가해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경우, 이 살인을 어떻게 처벌할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 가벌성에 관한 것은 동기와 상황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호주의 경우,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피해자가 오랜 기간 학대를 당하다 가해자를 공격한 경우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했다. 다시 말해 피해 당사자가 공권력에 호소했음에도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해 발생한 사적 제재는 처벌을 면하거나 감경하는 등의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제3자가 사적 제재를 하는 경우는 어떤 국가든 선처나 감경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혐오 범죄로 가중처벌 될 가능성이 있다.”

-많은 사람이 일부 유튜버의 가해자 폭로를 선의로 해석한다. 진의를 구분할 방법이 있나.

“첫째는 사익 추구냐, 아니냐를 따져봐야 한다. 사적 제재를 하는 이들이 표방하는 것만 보면 전부 순수하게 공익을 위한 것처럼 보인다. 즉 이들의 말, 행동으로는 구분이 안 된다는 의미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활동의 결과다. 사적 제재를 통해 이들이 사익을 얻고 있느냐의 문제다. 배드파더스는 공익활동을 하며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 사비로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양육비를 미지급한 무책임한 아버지들 명단을 공개했다. 그 결과, 소송을 당하고 소송비용까지 내게 됐다. 밀양 사건을 다루는 유튜버들이 이러한 공익을 목표로 하는지, 대중의 분노에 편승해 돈벌이를 하고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둘째는 피해 당사자 의사가 존중되느냐다. 배드파더스는 피해자 요청에 따라 그들의 절박한 상황을 공개했다. 피해자를 통해 자료를 확보해 객관성도 확보했다. 그런데 밀양 사건에서 유튜버의 폭로는 피해자가 배제됐다. 폭로로 인한 책임 문제와도 거리가 멀다. 사법 체계에 대한 불신, 불만을 이용해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이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장이 지난 6월 13일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인터뷰 시작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서성일 선임기자

-‘범죄에 관대한 법’ 때문에 사적 제재가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도 있다.

“성립하기 어려운 논리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된다. 그럼 법이 강한 나라에서는 사적 제재가 없나. 사형이 가능한 미국이 사적 제재가 더 많다. 범죄를 처벌하는 법을 강화해서 모든 범죄에 대해 사형판결을 내린다고 해보자. 이러면 사적 제재가 없어질까. 수사나 기소가 100% 완벽할 순 없다. 모든 범죄의 형량이 사형이라고 해도 억울한 사람은 나올 수밖에 없고, 사적 제재가 나타날 수 있다. 강력한 법과 사적 제재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을지 몰라도 인과관계는 없다는 의미다. 다만 법 자체가 완전히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특별법이 난무하고 법 사이에 모순과 충돌이 발견된다. 당장 사적 제재의 주요 원인이 되는 권력형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자고 해도 입법이 안 된다.”

-그렇다면 ‘법’을 적용하는 사법기관(경찰·검찰·법원)의 문제란 지적에는 동의하나.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적 제재가 나타난 대표적 사례들이 거의 예외 없이 수사기관, 기소기관, 재판기관의 잘못에서 비롯됐다. 아무리 강력한 법이 있어도 이를 적용하는 기관이 정의롭지 못하면 사적 제재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은 있다. 지금까지 경찰, 검찰, 판사 등에 대한 사적 제재가 심각하다고 들어본 적 있나. 잘못된 수사, 기소, 판결을 했다면 이들 역시 충분히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한 사적 제재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사적 제재가 기회주의적이고 선택적이지는 않은지 고민해 봐야 한다. 좀더 확장하면 이런 사건들이 단순히 가해자를 사적 제재해서 해결되는 문제냐는 질문도 가능하다. 유튜버가 가해자를 사적 제재하는 것과 별개로 공권력의 부실 수사, 기소, 판결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해외에서도 사적 제재가 문제가 되나.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

“세분화해서 볼 수 있다. 우선, 사건과 관계없는 제3자가 가해자를 응징하는 행위는 예외 없이 처벌한다. 다수의 동조를 받든, 혼자만의 망상이든 관계없다. 법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특히 상대의 인종, 성별,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한 사적 제재라면 혐오범죄가 된다. 반면 피해당사자의 사적 제재는 경우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공권력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오랜 기간 폭력에 시달린 피해자가 가해자를 공격해 상해를 입히거나 살인을 저지르면 정당방위, 자력구제를 폭넓게 인정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처럼 선진적인 사법 시스템을 갖춘 나라와 한국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입법·사법 과정에 참여를 보장받느냐는 점이다. 일정 수 이상의 사람이 동의하면 입법을 보장받을 수 있고, 국민참여재판을 통한 의견 제시가 법적 구속력을 갖는 사회에선 굳이 사적 제재에 나설 필요가 없다. 우리 재판과정이 안타까운 것은, 국민은 심판의 대상일 뿐 심판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전문가라는 법조인들은 국민을 무시하고 배제한 상태에서 판결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잘못된 판결이 나오면 더욱 큰 사회적 분노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 사법체계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필요가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하는 ‘사적 제재’를 두고 일부 전문가란 사람들이 사적 제재를 무식한 것으로 비난만 한다. 그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이런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 정치인, 법조인 등의 사회 기득권층이다. 한국의 사법절차가 공평하고, 공정했다면 사적 제재가 대체 왜 나온단 말인가.”

-사적 제재를 어떻게 봐야 하나.

“온라인상 가해자 신상 공개가 모두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의 은폐된 비리를 폭로하거나 공익을 목적으로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지고 문제를 알리는 행위까지 나쁘다고 할 순 없다. 대표적으로 배드파더스는 ‘양육비 미지급’,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시스템에 경종을 울렸다. 설사 이들을 법적으론 처벌할 수 있을진 몰라도 도덕적으로 비난할 순 없다. 현재 대표적인 사적 제재로 언급되는 사례들 역시 공권력이 사법 질서에 따라 제대로 심판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들이라는 점에서 고민거리를 남겼다. 다만 단순히 폭로에만 그치면 해결되는 것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정의감을 보다 건강하게 표출할 수 있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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