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악몽”…‘14개월 공항 노숙’ 난민신청자 한국 국가 상대 손배소 패소

유선희 기자

1심 재판부 “담당공무원 과실 또는 고의 없어”

난민신청자 측 “과실 분명해…항소해 다투겠다”

리카씨(50·가명)가 10평 남짓한 곳에서 머무는 집 내부 사진으로, 아직 짐을 다 풀지 못한 여행용 가방도 그대로 있다. 리카씨 제공

리카씨(50·가명)가 10평 남짓한 곳에서 머무는 집 내부 사진으로, 아직 짐을 다 풀지 못한 여행용 가방도 그대로 있다. 리카씨 제공

“아직도 공항 환승구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악몽을 자주 꿔요. 저에겐 그 당시 일들이 트라우마로 남았어요. 저를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아프리카 출신 난민신청자 리카씨(50·가명)가 23일 경향신문과의 서면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내 ‘최장기 공항난민’으로 알려진 리카씨는 인천국제공항 환승구역에서 무려 14개월(423일) 동안 ‘노숙생활’을 하다 2021년 한국 땅을 밟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는데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리카씨의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공항 환승구역에서 1년 넘게 지내며 제대로 자거나 먹지 못해 몸이 많이 상한 탓이다. 특히 허리 통증이 심하다고 했다.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진통제에 의존하고 있다. 리카씨는 “허리 진통제를 먹으면 그나마 잠이라도 잘 수 있는데, 그러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리카씨는 2020년 2월 고국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난민신청을 하려고 했지만 법무부는 그를 환승객으로 보고 신청서 접수 자체를 거부했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리카씨는 공항 제1터미널 43번 게이트 앞 환승구역에 발이 묶여 423일 동안 지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사회 단체에서 지원에 나섰고, 2021년 4월 법원이 수용을 임시 해제해 입국할 수 있었다. 후유증을 겪던 리카씨는 지난해 “근거 없이 난민신청을 거부하고 불법으로 수용이 이뤄졌다”며 한국 국가를 상대로 8400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러나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민사89단독 김회근 판사는 리카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앞선 행정소송 판결에서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장이 난민법에서 정한 난민인정 신청에 대한 절차를 개시하지 않은 위법성은 확인된다”면서도 “담당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판결문이 인용한 앞선 행정소송은 2건이 있었다. 인천지법 항소심 재판부는 2021년 8월 리카씨의 수용에 대해 “법무부는 난민인정 신청 절차를 개시하지 않은 채 리카씨의 입국을 불허했고 그 뒤 환승구역 출국장에 장기간 머무르도록 강제했다”며 “법률상 근거 없이 인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으로 위법한 수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보다 앞선 2021년 5월 서울고법은 리카씨의 난민신청 접수 자체를 거부한 법무부 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두 판결 모두 법무부가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확정됐다.

그럼에도 1심 재판부는 “담당공무원은 우리나라의 여건 및 사회적 합의수준에 따라 제정된 국내법인 난민법에 따라 난민인정 신청접수 업무처리를 하는 것이지, 난민협약에 따라 처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며 “난민인정 신청접수 업무처리를 하는 담당공무원에게 난민법을 넘어 난민협약에서 규정한 (강제송환금지 등) 원칙까지 고려하거나 참작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리카씨는 “인권을 존중하지 않은 결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리카씨 사건을 대리한 이한재 변호사(공익법단체 두루)는 “재판부의 논지에 따른다면 국가의 조치로 인해 누군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될 상황이 명백하더라도 규정상 의문점이 완벽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사람을 마음대로 구금하고 방치해 둬도 과실이 없다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조건부 입국 조처를 할 수 있었던 점 등을 볼 때 첫 접수 거부 처분 이후 1년2개월간 과실을 부정할 수 없어 항소해 다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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