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인구 넘어 ‘팬슈머’로 극복하는 지방소멸···인제 냇강마을 가보니

주영재 기자
지난달 26일 강원도 인제군 냇강마을에서 냇강두레농업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블루베리 묘목을 심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패스파인더 제공

지난달 26일 강원도 인제군 냇강마을에서 냇강두레농업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블루베리 묘목을 심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패스파인더 제공

“지금 해놓은 거 나중에 손주들이 따 먹는다 생각하면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요.”

냇강마을 주민 김효성씨(66)가 블루베리 묘목을 심고 있는 조합원들을 독려한다. 지난달 26일 더위를 피해 오전 일찍 나무 심기가 시작됐다. ‘냇강두레농업 협동조합’에 가입한 서울·수도권 조합원 22명이 협동조합의 블루베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순간이다.

강원도 인제군 남면 냇강마을은 소양강 상류의 대암산자락과 맞닿은 곳에 있는 산촌마을이다. 이곳에도 어김없이 농촌소멸 위기가 찾아왔고, 주민들은 2014년 협동조합을 세워 대응했다. 조합 설립을 주도한 이는 박수홍 냇강두레농업 협동조합 대표이다.

“노동력이 부족하다보니 작은 일이라도 같이 하면 낫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13명이 20만원 출자금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주민 50명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령화가 되다보니 새로운 활로가 필요하던 차에 생활인구라는 말을 듣게 된 거죠.”

한국수자원공사와 인제군, 인제로컬투어사업단과 패스파인더가 함께 하는 ‘인제·서울 지역상생을 위한 생활(관계)인구 창출 사업’에 선정됐다. 인생2막을 준비하는 수도권 주민들이 2022년 8월 ‘인제 하루’ 프로그램으로 처음 냇강마을을 찾았다.

조합은 블루베리 농사를 주력으로 한다. 판매와 체험 프로그램 등으로 논농사의 5배~10배 수익을 낼 수 있어서다. 마을 펜션과 사과 따기, 모내기, 똇목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조합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마을 주민과 교류하면서 조합에 가입해 더 끈끈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이들이 생겼다.

그렇게 지난해 8명의 수도권 조합원이 생겼고, 지금은 22명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12월 서울 조합원이 인제 조합원을 초대해 서울 투어를 하고, 올해 1월엔 인제 조합원이 서울 조합을 초대해 교류했다.

수도권 조합원들은 마을의 조력자가 됐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기부했다. 냇강마을 홍보물을 제작하고, 마을 브랜딩 전략을 짜고, 블루베리를 비롯해 마을 농산물을 주변에 알리고 판매했다.

지난달 26일 강원도 인제군 냇강마을에서 냇강두레농업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블루베리 묘목을 심고 있다. 주영재 기자

지난달 26일 강원도 인제군 냇강마을에서 냇강두레농업 협동조합 조합원들이 블루베리 묘목을 심고 있다. 주영재 기자

조합원 조현지씨(57)는 “여기선 조합원 가격으로 500g 한 팩이 6000원이어서 이제는 시중에서 못 사 먹는다”라며 “지난해 지인들에게 나눠줬더니 올해 주문을 엄청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테리어 일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이곳 조합에서 공유하고 있다. 이번에 220그루의 블루베리를 심으며 생산에도 직접 참여했다.

이들은 ‘생활인구’라는 개념을 넘어 ‘팬슈머’(‘팬’과 소비자를 뜻하는 ‘컨슈머’를 결합한 것으로, 브랜드를 키워내는 소비자를 의미)로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생활인구는 행정안전부 정의에 따르면 통근·통학·관광 등의 목적으로 주민등록지 이외의 지역을 방문해 하루 3시간 이상 머무는 횟수가 월 1회 이상인 사람 등을 포함한다. 지방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지자체의 여러 사업도 생활인구를 늘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하지만 월 1회 3시간 이상이라는 정의로는 관광객과 구별하기 어렵고, 양보다 관계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사업을 기획·운영한 패스파인더의 김만희 대표는 지역을 배우고 소비할 뿐 아니라 지역 상품을 키워내는 ‘마을 팬슈머’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문제 해결이나 가치 창출을 함께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결국 인연을 맺어야 하고, 자주 가고 만나야겠죠.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이유도, 작지만 자기 돈이 들어가면 애정을 더 갖게 되고, 또 찾을 명분이 있어서에요.”

마을 입장에서는 조합원이 늘면서 귀한 일손을 확보할 수 있고, 판매·유통처를 확보해 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할 동력을 얻게 된다. 조합 참여는 귀농귀촌이 부담스러운 이들에게 느슨하게 지역과 농촌을 경험할 수 있는 대안이기도 한다.

수도권에서 온 정윤재씨(61)는 “시골에서 살겠다고 하면 이곳을 일순위로 생각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또다른 조합원 박옥기씨(60)는 “정착은 못해도 3도 4촌(3일은 도시에서, 4일은 시골에서 머무는 것) 하면서 살 수 있겠다 싶다”라며 “손주들에게 방학이면 할머니 집에 가서 물가에서 놀고, 옥수수 삶아 먹는 그런 기회를 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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