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휘와 함께했으나 가려진 이름···항일운동가 ‘김동수·김남수’ 진실 규명

전지현 기자
니와켄타로(二羽堅太?)의 <복명서(復命書)>에 적힌 김동수 형제의 이름. 1907년 7월24일 연무당 집회에 관해 “같은달 24일 이동휘는 같은 기독교도인 김동수, 김광천, 김팽암 등과 계획하여 선동연설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좌) 같은해 7월30일 전등사 집회에 대해선 “김동수, 허성경 등과 함께 기독교도 총 400명을 모아서 합성 친목회 라고 이름 붙이고 앞에서와 같은 선동적 연설을 했다”는 내용이 적혔다(우). 진실화해위 제공

니와켄타로(二羽堅太?)의 <복명서(復命書)>에 적힌 김동수 형제의 이름. 1907년 7월24일 연무당 집회에 관해 “같은달 24일 이동휘는 같은 기독교도인 김동수, 김광천, 김팽암 등과 계획하여 선동연설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있다(좌) 같은해 7월30일 전등사 집회에 대해선 “김동수, 허성경 등과 함께 기독교도 총 400명을 모아서 합성 친목회 라고 이름 붙이고 앞에서와 같은 선동적 연설을 했다”는 내용이 적혔다(우). 진실화해위 제공

김동수·김남수 형제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과 인천 강화에서 항일운동을 한 사실이 인정됐다.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9일 ‘제82차 위원회’를 열고 두 사람의 항일운동 사실에 대한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에 명예회복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은 “이동휘라는 거물 독립운동가에 가려져 활동 내용이 드러나지 않았던 김동수·김남수의 항일운동이 진실규명되어 하나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밝혀낸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고 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김씨 형제는 1907년 7월 강화에서 이동휘와 함께 대규모 반일 집회를 여러 차례 계획·개최했다.

특히 김동수는 기독교를 매개로 이동휘와 친분을 쌓았다. 1905년에는 이동휘가 강화에 설립한 육영학교에 기부금을 출연하고, 육영학교의 소식을 황성신문에 기고하는 등 교육활동을 통한 애국계몽운동을 함께 전개했다.

두 형제는 1907년 7월 고종황제 퇴위 및 군대해산을 골자로 하는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자 이 선생과 함께 강화읍 연무당에서 같은달 24일 대규모 군중 집회를 열었다. ‘일제에 결사 항전하자’는 내용의 집회였다.

이어서 1907년 7월30일에는 강화 읍내에서 3리쯤 떨어진 정족산성 전등사에서 ‘합성친목회’라는 이름의 대규모 집회를 세 차례에 걸쳐 열었다. 이 집회는 친일단체로 알려진 일진회 회원의 출입을 금지했다. 기독교인 400여명과 이전에 병정(의병)이었던 사람들만이 입회할 수 있었다.

진실화해위는 “이같은 집회 기록이 일제의 경찰보조원이었던 니와켄타로(二羽堅太郎)의 <복명서(復命書)>에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강화는 ‘정미의병’으로 알려진 의병활동이 일어난 지역 중 하나다. 두 형제는 1907년 8월9일 강화에서 발생한 봉기 이후 일진회원으로부터 “야소교인(기독교인)이 인민을 선동했다”는 모함을 받아 체포됐다. 그리고 같은해 8월21일 호송 도중 총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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