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에 입대해 전쟁 끝나니 20대···한국전쟁 소년병 등 ‘진실규명’

전지현 기자
이승만 대통령과 밴 플리트 장군이 국군 9보병사단 검열 중 주한미군사고문단(KMAG) 훈련학교에서 국군 병사(소년병)의 소총을 관찰하는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전자 사료관 사진 크게보기

이승만 대통령과 밴 플리트 장군이 국군 9보병사단 검열 중 주한미군사고문단(KMAG) 훈련학교에서 국군 병사(소년병)의 소총을 관찰하는 모습. 국사편찬위원회 전자 사료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 18세 미만 ‘소년병’으로 참전한 이들에 대해 국가 차원의 예우 조치가 필요하다는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판단이 나왔다.

진실화해위는 지난 9일 제82차 위원회에서 ‘한국전쟁 중 소년병 참전 사건’에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며 이같이 권고했다. 이는 과거사정리법 제2조 중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진실규명을 신청한 6명을 포함해 약 3만명으로 추정되는 한국전쟁 참전 소년병을 아우르는 판단이다.

진실화해위는 ‘소년병’을 1950년 6월25일부터 1953년 7월27일 사이에 정규군(현역병)으로 참전하고 제대한 사람 중 병역의 의무가 없는 ‘18세 미만 아동’으로 정의했다.

장모씨(90) 등 신청인 6명은 한국전쟁기에 15~17세 나이로 강제징집되거나 자원입대해 3~4년을 복무했다. 이들은 모두 1950년과 1951년 사이에 군번과 계급을 받아 현역병으로 전쟁에 동원된 사실이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장씨 등과 같은 소년병이 병역 의무가 없었는데도 전황이 불리한 시기에 부족한 군사력을 보충해 국가의 안전에 공헌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이들은 무력 충돌의 희생자로서 생명권 침해 등 육체적·정신적 피해와 학습권 등 사회적 피해를 받았다.

당시 국난 극복을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 있었고, 소년병 제도에 대한 인권침해 문제가 본격적으로 다뤄진 것은 20세기 후반의 일이라는 것을 참작해 위법성을 소급 적용하긴 어렵다는 판단도 있었다. 다만 소년병으로서 전쟁의 트라우마와 교육 기회 상실, 자립 기반 마련 어려움 등 피해를 겪은 게 인정된다는 점에서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

진실화해위는 “국가가 그 공헌과 헌신에 상응하는 지원 및 예우를 하지 않고 있다”며 “소년병의 실질적인 명예 회복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제2남진호’ 납북어부 19명도 진실규명

1981년 5월20일 제2남진호 귀환어부 합동기자회견 사진. 경향DB

1981년 5월20일 제2남진호 귀환어부 합동기자회견 사진. 경향DB

1980년 9월 동해상에서 조업 중 납북된 제2남진호 선원 19명 전원에 대한 인권침해 사실도 인정됐다. 이들은 1981년 5월 북한에서 남한으로 귀환한 직후 수사기관으로부터 약 1개월간 불법구금돼 수사 및 특별순화교육을 받았다. 이후 이들은 ‘간첩 지령을 받고 귀환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으며 장기간 사찰을 당했다.

이번 진실화해위 조사에서는 선원뿐 아닌 선원의 가족도 감시 대상이었던 것이 드러났다. 이들이 취업과 거주이전 등 일상생활에 제한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이외에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 피해자 74명도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이로써 이 사건 진실규명 결정자는 362명으로 늘었다. 해당 사건은 전두환 등 권위주의 정권이 학생·사회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병역의 의무를 악용, 강제징집하거나 녹화공작을 자행한 인권침해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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