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가 전입신고 거부, 거주 자유 침해” 판결 받아낸 쪽방민

김나연 기자

서울역 쪽방촌 이사 후 주거급여 위해 전입신고 갔지만

주민센터 “건물주 요청” 이유로 거부…취소소송 승소

30년 넘게 쪽방살이 중인 김시환씨(62)는 쪽방을 운영하는 A씨를 “엄마”라고 부른다. A씨가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 중이던 김씨에게 끓여준 라면 한 봉지가 연이 됐다. 다른 쪽방으로 이사를 간 적도 있지만, 김씨는 매번 A씨네 쪽방으로 되돌아왔다. 양동 쪽방촌부터 현재 머물고 있는 동자동 쪽방촌까지, 김씨는 늘 A씨와 함께였다.

2년간 건강 문제로 잠시 요양원에 머물던 김씨는 지난해 A씨가 건물 일부를 빌려 운영하는 쪽방으로 다시 이사왔다. 김씨는 곧바로 주거급여를 받기 위해 전입신고를 하러 갔는데 주민센터는 반려했다. “건물주가 해당 건물 전입신고를 받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민센터는 ‘임대차 계약으로 거주하는 경우, 건물 소유주 및 임대인의 재산권 행사 보장을 위해 동일 주소지 내 세대 분가에 대한 소유주 및 임대인의 동의·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행정안전부 지침을 근거로 제시했다.

김씨와 A씨는 이 같은 처분이 위법하다면서 관할 행정청장인 남영동장을 상대로 한 주민등록 전입신고 수리거부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재판장 송각엽)는 지난달 13일 김씨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쪽방민의 전입신고를 건물주 동의 여부를 토대로 거부하는 것이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쪽방민에 대한 전입신고 거부가 위법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행정청이 전입신고 수리를 거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런 행위는 자칫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전입신고 수리 여부에 대한 심사는 주민등록법의 입법 목적의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2021년 정부가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을 발표한 이후 동자동 쪽방촌에서는 민간개발을 요구하는 건물주들이 쪽방민의 전입신고를 막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동자동 공공주택사업’은 정부가 쪽방촌 주민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125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그러나 일부 동자동 건물주들은 이익이 더 크게 돌아오는 민간개발을 요구하며 반대한다.

건물주들은 전입신고를 거부해 쪽방민을 내쫓으면 ‘쪽방민의 주거권을 보장한다’는 공공주택사업의 취지가 옅어져 사업을 저지할 수 있다고 본다. 미전입 쪽방민은 임대차보호법이 적용되지 않아 퇴거 조치도 비교적 수월하다. 쪽방민들이 전입신고를 못하면 동자동이 민간개발되더라도 이들에게 지급해야 하는 주거이전비 등의 보상금도 줄어든다.

쪽방민들에게 전입신고는 생계와 직결된 문제다. 생계급여와 주거급여 등 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수령하려면 실거주지를 기반으로 전입신고를 하는 것이 먼저다. 전입신고를 하지 않으면 주거급여는 기준액의 60%만 지급된다. 미전입 상태가 장기간 유지될 경우 주민등록이 말소돼 거주불명자로 등록되는 위험도 따른다.

김씨와 A씨의 소송을 담당한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수급자들에게 전입신고는 “너무나 엄격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왕 아는 사람이 있는 집에 있고 싶은 게 당연한 마음이고, 이것이 주거 선택에 있어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는데 이것을 침해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영동장 측은 지난 1일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남영동 관계자는 항소 취지를 묻는 질문에 “변호사와 논의를 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진행 중인 사안이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항소 이유를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A씨네 쪽방에 사는 다른 주민 2명도 건물주의 거부로 전입신고를 하지 못했다. 김씨가 이들을 대표해 소송에 나섰는데, 상급심에서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기속력이 생기지 않아 아무도 전입신고를 하지 못한다. 김씨와 A씨 측 대리인 김윤진 변호사(재단법인 동천)는 “같은 건물에 전입신고를 거부당한 주민들이 더 있는데, 여러 가지 부담 때문에 소송당사자로 나서는 것이 쉽지 않다”며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계속 지위가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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