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하청 불법파견 논란 계속···대법 “근로관계 실질 따져야” 재확인

유선희 기자

불법파견 민·형사 사건 2건, 해고노동자 승소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사측 손 들어주면서도

“지배·개입 주체로서 사용자 아니라는 판단 아냐”

2015년 집단 해고로 분쟁을 겪었던 차헌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노조지회장과 조합원들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 판결 기자회견 중 연대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태형 기자

2015년 집단 해고로 분쟁을 겪었던 차헌호 아사히글라스비정규직노조지회장과 조합원들이 1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승소 판결 기자회견 중 연대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태형 기자

대법원은 11일 아사히글라스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에 대한 근로자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확정하면서 ‘근로관계의 실질’을 따져야 한다고 재차 확인했다. 원청회사가 직접 고용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하청회사 노동자들을 실질적으로 사용·지배·개입한 회사가 원청회사라면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이 법원에 제기한 불법파견 민·형사 사건 2건에 대해 모두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사내하청업체 GTS 소속이었던 해고 노동자들은 원청회사인 아사히글라스와 ‘불법파견’ 관계에서 실제 업무 지휘·명령을 받았다는 점을 근거로 아사히글라스를 실질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냈다. 이어 불법파견을 처벌해달라는 ‘파견법 위반’ 형사소송도 제기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아사히글라스가 노조 활동에 지배·개입한 부분도 문제 삼으면서 사측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구제 재심판정 취소’ 행정소송도 냈다. 대법원은 이 소송에선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원청회사의 사용자성까지 부정하진 않았다.

대법원은 원청·하청 관계에서 원청회사의 ‘업무지시 구속력’이 불법파견 등 근로관계의 실질을 따지는 근거가 된다고 봤다.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에서 하청회사가 원청회사가 요구하는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에 지나지 않고 실제 업무 지시가 원청회사로부터 이뤄졌다면 ‘실질적인 개입’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015년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근로관계 실질을 따져야 한다”고 세운 판례를 인용했다. 당시 대법원은 “원청회사가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업무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하는지, 사내하청 근로자가 원청회사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돼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원청회사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볼 수 있는지 등 요소를 봐야한다”며 현대차의 불법파견을 인정했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이날 “GTS 현장관리자들의 역할과 권한은 아사히글라스 관리자들의 업무상 지시를 GTS 근로자들에게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고, 이 근로자들은 아사히글라스 관리자들의 업무상 지시에 구속돼 그대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판단했다.

아사히글라스 측은 사업장 내 공장 층수가 달라서 하청 노동자들의 업무가 분리됐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원심과 같이 층수·공정별 구분 없이 모두 파견관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근거해 원청·하청회사에 대한 파견법 위반을 무죄로 선고한 원심은 다시 심리해야 한다며 파기환송했다.

사측의 부당노동행위 행정소송은 1·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대법원은 “아사히글라스가 GTS 소속 근로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부당노동행위 주체로서의 사용자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아사히글라스의 사내하청은 불법파견 근로에 해당해 원청회사가 직접고용할 의무가 있다고 보면서도, 부당노동행위 자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은 사내하청의 불법파견에 대해 “도급으로 위장하더라도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불법파견이다”라고 판단해 온 것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9년 동안 생계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투쟁해온 아사히글라스 해고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이 만연한 현실을 바꾸려면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탁선호 금속노조 변호사는 “파견법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더 싸고 위험한 일을 하도록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원청 사업주는 책임을 회피할 기회만 준다”며 “파견법을 폐지하고 제대로 된 노조법 2조(간접고용 노동자 교섭권 보장)를 개정해 사용자성 개념을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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