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점선면 7월23일자(https://stib.ee/MnSD)입니다. 경향신문 대표 뉴스레터 점선면은 단 하나의 이슈와 기사를 엄선해 입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점선면을 구독해 더 많은 뉴스레터를 메일함으로 받아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를 클릭해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
오늘의 점선면Deep 주제를 미리 예고하자 한 독자님께서 이렇게 시작하는 의견을 보내셨습니다. 제가 아는 한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에 찬성하는 환경단체는 없고, 케이블카에 반대하는 환경운동가 중에는 해당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다만, ‘지방에 외주화’란 표현에는 고개를 잠시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케이블카는 관광산업에 기대 생존을 도모하는 지방의 숙원이기도 하니까요. 케이블카 논란은 환경뿐만 아니라 쇠퇴하는 지방 역시 생각하게 합니다. 오늘 점선면에서는 환경 문제로 선을, 지방 문제로 면을 그려봅니다.
산·산·산마다 케이블카
· 2023년 11월 20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착공식이 열렸습니다. 설악산엔 현재 1972년 설치한 ‘권금성케이블카’가 운행 중인데, 새 케이블카 설치가 공론화된 지 40여년 만에 시공 절차가 시작된 거예요.
·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던 설악산 케이블카 추가 설치가 현실이 되자 전국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강원도는 치악산 등 6개 케이블카 추가 설치를 추진한다고 밝혔어요.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계획도 점점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산은 줄줄이 케이블카 설치 대상에 이름을 올렸어요. 무등산, 신불산, 보문산, 속리산, 소백산, 팔공산, 그리고 북한산까지.
· 이렇게 앞다퉈 케이블카를 원하는데, 사실 여론조사는 케이블카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아요. 2022년 산림청 조사 결과, 설악산·지리산 같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에 70% 이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했어요.
‘1982년 체제’를 뒤집다
1982년은 설악산에 무척 중요한 해였습니다. 강원도는 그해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설치하려다 설악산이 천연기념물 171호(1965년 지정)란 이유로 처음 퇴짜를 맞았고, 마침 같은 해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UN) 산하 교육·과학문화 관련 교류를 담당하는 전문기구)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설악산을 생물권보전지역에 등재했어요. 설악산은 명실공히 한반도 안팎에서 모두 인정받는 자연유산입니다.
설악산은 1970년엔 국립공원 지위를 얻었습니다. 국립공원공단은 국립공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국립공원은 국내 기록 생물종의 40.9%가 서식·분포하며, 국내 멸종위기종에 한정해 보면 68%가 국립공원 내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설악산엔 국립생태원이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분류한 산양이 서식 중인데, 오색케이블카 경로 주변으로도 산양 서식 흔적이 속속 확인되고 있습니다.
1965년 천연기념물 지정부터 198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등재까지, 이렇게 설악산은 생태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정의되며 40년 넘게 케이블카가 발 들이지 못한 영역이었습니다.
그 ‘1982년 체제’를 마침내 윤석열 정부가 깼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대선에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개통을 약속했고, 이 공약은 관철됐습니다. 한국환경연구원·국립환경과학원 등 여러 국책·전문기관이 환경에 미칠 영향을 들어 추가 케이블카 설치에 반대 혹은 부정적 의견을 제시했는데도요.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해 환경부는 박근혜 정부 때 승인, 문재인 정부 때는 반대, 윤석열 정부 때는 다시 승인하는 식으로 오락가락했습니다.
오색케이블카 허가 이후 전국 국립공원의 빗장이 풀릴 조짐이 보입니다. ‘1호 국립공원’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두고는 경남 산청군과 함양군이 서로 경쟁했는데, 최근 경남도가 산청군으로 ‘단일화’하면서 진전될 가능성이 커졌어요. 현재 케이블카 설치 장소로 거론되는 지리산, 치악산, 무등산, 속리산, 소백산, 팔공산, 북한산 등도 모두 국립공원입니다. 오색케이블카는 더 많은 국립공원 케이블카의 시작입니다.
미국 옐로스톤과 스위스
윤석열 대통령은 설악산 등 산림을 ‘유산’이 아닌 ‘자원’이란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더 많은 케이블카와 관광열차 허용 의사를 밝히며 “산림자원이 관광자원으로 더 활성화하도록 규제를 대폭 풀겠다”고 밝혔어요. 그러면서 ‘조화’를 말합니다. “절대적인 보존만이 환경이라 생각하면 인류가 발전할 수 없다. (…) 환경과 이용을 첨단기술로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설악산의 현재 상태를 ‘절대적인 보존’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미국 옐로스톤국립공원(Yellowstone National Park)엔 지난해 약 450만명이 다녀갔습니다. 지난해 설악산 탐방객은 약 224만명으로 그 절반밖에 안 됩니다.
단, 밀도를 고려하면 사정이 좀 다릅니다. 옐로스톤은 약 9000㎢로 설악산 400㎢의 22배가 넘거든요. 방문객 밀도를 따지면 설악산이 옐로스톤의 11배가 넘습니다. 그럼에도 미국 당국은 이미 10여년 전 옐로스톤 연간 입장객 400만명 돌파를 앞두고 입장료를 20% 인상해 방문객 증가를 억제하려 했습니다. 옐로스톤은 현재 입장료로 20~35$(약 2만8000원~4만8000원)을 받고 있어요.
정부와 강원도는 이런 옐로스톤이 아닌 스위스를 곧잘 거론합니다. “스위스의 경우 2360개의 케이블카와 리프트가 있다”(김진태 강원지사)는 겁니다. 하지만 조우 상지대 조경산림학과 교수,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등 산림 전문가들은 “스위스도 최소한 국립공원엔 케이블카를 건설하지 않는다”고 반박합니다.
윤 대통령만 ‘조화’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유네스코도 설악산 같은 생물권보전지역에서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것을 추구하면서, 이용 가능한 수준에 따라 핵심구역·완충구역·협력구역을 설정하고 있어요.* 오색케이블카 건설 지역은 이 중에서도 핵심구역에 속합니다.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완충구역이나 협력구역에서 생태관광 등을 통해 지역 발전을 추진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다. 하지만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여 생물다양성을 보전해야 하는 핵심구역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설악산 국립공원을 직선으로 3.3㎞ 가로지르는 오색케이블카. 과연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지낼 수 있는 선을 설정하는 것일까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현지의 요구와 조건에 따라 핵심구역(생물 다양성을 엄격히 보전), 완충구역(환경교육 혹은 생태관광, 연구 등 활동에 이용), 협력구역(농업·주거 등 용도로 이용)으로 나뉜다.
합니다, 여러분 돈으로
1996년, 강원도 일부 주민이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원정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들은 유네스코 본부를 찾아 설악산을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했어요. 세계유산이 되면 케이블카 설치 등 개발 행위에 대한 규제가 더 강화될까 걱정했던 겁니다. 그랬던 사람들에게 오색케이블카 착공은 참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겠죠. 케이블카엔 관광객 증가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서려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오색케이블카의 사업 계획은 좀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전체 사업비 1172억원 중 80% 이상인 972억원을 양양군이 부담하도록 짜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약속한 사업이지만, 비용 부담은 중앙정부가 아닌 지방정부가 전적으로 지게 됐습니다.
물론, 케이블카가 흥행해 지역사회에 돈을 돌게 한다면야 이런 비용쯤은 치를 수도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가) 2026년 본격 운영되면 1300억원 이상의 경제효과를 지역경제에 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김기범 기자는 이를 “전국 41개의 관광용 케이블카 가운데 대부분이 적자에 허덕이고 있고, 그나마 흑자인 곳도 탑승객이 급감하고 있다는 점은 도외시한 전망”이라고 비판합니다. 실제로 2000년대 초 문을 닫은 대전 보문산 케이블카처럼 이름난 장소에 있으면서도 이용자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산을 어떻게 경험할까
오색케이블카가 진퇴를 거듭한 40년 동안 ‘케이블카를 짓는 것’에서 비롯되는 환경과 경제성 문제에 관해 많은 주장과 반박이 오갔습니다. 조우 상지대 교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케이블카를 타는 것’ 자체를 비판적으로 진단합니다. 사람들이 산을 경험하는 방식이 변하고 있고, 이것이 케이블카 운영에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산림청 산하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가 2021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등산’ 인구는 2018년 56.4%에서 2021년 47.9%로 줄었고, ‘걷기(트레킹)’ 인구는 같은 기간 59.4%에서 68.7%로 늘었어요. 코로나19 유행 이전인 2019년 4월 산악전문잡지 <월간 산>이 조사한 결과에서 이미 트레킹 인구(51%)는 등산 인구(48%)를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변화를 보면, 설악산 케이블카에 대한 찬성 여론이 적은 이유가 단지 환경 파괴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만은 아니란 점을 짐작할 수 있어요. 조우 교수는 이런 변화를 두고 “문제는 고도(Altitude)가 아니라 태도(Attitude)”란 한 등반가의 말을 들며 “정상을 정복해야만 아름다운 산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산을 어떻게 경험할 것인가’란 관점은 케이블카로 살리고자 하는 ‘지역경제’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색케이블카 허가 이후 유행타듯 전국으로 케이블카 바람이 퍼져간 장면은 어떤 기시감을 일으킵니다.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역시 유행타듯 앞다퉈 갈구했던 출렁다리, 스카이워크, 대관람차, 모노레일 같은 ‘관광용 랜드마크’를 떠올리게 하거든요.
출렁다리는 2024년 7월 기준 전국 254곳에 있습니다. 광역·기초자치단체를 합한 243개보다 많으니,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출렁다리를 적어도 한 개씩 보유한 꼴입니다. 이렇게 전국 254곳의 산, 강, 해변 등에서 관광객들이 출렁출렁 다리를 건너는 똑같은 경험을 합니다. 케이블카도 마찬가지예요. 설악산이든 보문산이든 무등산이든 아래에서 후다닥 정상만 찍고 돌아오는 식으로, 다 다른 산을 다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자고 합니다.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는 지방도시의 활기를 찾는 길에 관한 책입니다. 이 책을 쓴 주혜진 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서울의 익선동 카페거리와 같은 하나의 모델을 너도나도 쫓는 지방도시의 방향성으로는 ‘노잼’, 즉 재미없는 도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그 도시의 고유성을 경험하게 만드는 게 재미의 원천이 된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도시’가 아닌 ‘산’에서도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날이 올지 모릅니다. 모든 지역이 케이블카든 출렁다리든 똑같은 랜드마크로 경험 방식을 획일화하다 보면요.
우리에게 필요한 케이블카
“갓바위를 찾는 노약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2022년 8월 대구 팔공산 케이블카 추가 건설에 대해 한 말입니다. 케이블카를 원하는 행정가나 주민들은 장애인이나 어린이도 케이블카로 높은 산을 향유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케이블카 설치가 교통약자를 우선시한 정책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논리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면도 있습니다. 지금 교통약자들에게 긴요한 이동성 개선 과제가 설악산 케이블카라고 말하는 것만 같기 때문이에요.
케이블카가 약자의 이동성을 획기적으로 높여 불평등 완화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사례는 있습니다. 콜롬비아 도시 메데인에서 산기슭 빈민가와 10㎞ 넘게 떨어진 도심을 연결하는 케이블카, 메트로케이블(Metrocable)입니다. 하루 2~3시간씩 소요됐던 산동네 노동자들의 출퇴근길을 개선해 삶의 질을 크게 높인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케이블카 찬성론자들이 말하는 ‘교통약자를 배려한 케이블카’는 얼핏 타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장애인 단체의 이동권 시위에서 보듯, 약자의 이동성을 생각해야 할 곳은 우리 도시에 여전히 많습니다.
이동 수단 설치에 쓸 수 있는 자원이 한정적일 때, 장애인·노약자에게 더 나은 교통 환경을 만들고 싶다면 그 자원을 우선 투입할 곳이 과연 산악 케이블카일까요? 어쩌면 지금 이 사회에 존재하는 교통약자들에게 훨씬 더 절실한 건 국립공원 케이블카가 아닌 ‘메데인의 케이블카’인지도 모릅니다.
◆ 정부가 설악산에 새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이후 지리산 등 전국에서 케이블카 건설 계획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 정부는 ‘환경과 이용의 조화’를 말하지만, 설악산은 이미 방문객 밀도가 높아 이용도가 결코 낮지 않습니다. 많은 관광용 케이블카가 적자를 보고 있어 수익성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 케이블카는 아래에서 후다닥 정상만 찍고 돌아오는 식으로 다 다른 산에서 다 같은 경험을 하게 만듭니다. 트레킹 중심의 탐방 트렌드와도 맞지 않습니다. 교통약자의 이동성을 개선한다면, 과연 산악 케이블카가 우선 과제가 돼야 할까요?
※글에 첨부한 링크와 추천 기사를 모두 보시려면 뉴스레터 점선면 원본(https://stib.ee/MnSD)을 확인해 주세요. 매주 월·수·금요일과 격주 화요일 오전 7시 메일함에서 점선면을 보시려면 여기(https://url.kr/7vzi4n)에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