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농산물 저관세로 수입 확대에 항의…농기계 시위하다 구금
“농정 실패에 대한 규탄 억누르려 하나”…농민들 반발 심상찮아
[주간경향] 지난 7월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한 청년 농민이 이날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이 청년은 경남 진주에서부터 1t 트럭에 빈 농약살포기계를 싣고 왔다. “농산물 가격 폭락으로 더는 농사지을 수 없으니 농기계를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경찰이 그의 트럭을 에워싸면서 충돌이 빚어졌고,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지난 7월 19일 재판에 넘겨졌다. 농기계 반납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한국에서 농사짓는 고통을 얘기하려던 청년 농민 김재영씨(37·전국농민총연맹 부산경남도연맹 사무국장)는 이렇게 구금됐다.
이른바 ‘청년 농민’은 스마트팜과 같은 혁신 농법으로 농업의 미래를 이끌 일꾼으로 여겨졌다. 전국의 ‘40세 미만’ 청년 농민은 약 1만2000명(2020년 기준). 정부는 앞으로 5년 이내에 청년 농민을 3만명까지 늘리겠다면서 융자 확대, 농지지원, 스마트팜 임대 등을 약속하기도 했다.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청년 농민이 왜 농기계 상경투쟁에 나섰을까.
농민운동의 전통을 이어온 동시에 농촌의 피폐화를 대에 걸쳐 목격한 김재영씨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버지도 ‘무분별 수입 반대’ 외쳤건만
김재영씨는 한국에선 보기 드물게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 청년이다. “대학 다닐 때도 주말이면 밀린 하우스 일을 돕던 착한 아들”(김씨 어머니 주성희씨·65)이었던 김씨는 “청년들이 농사짓지 않으면 농촌은 미래가 없다”(김씨 아버지 김군섭씨·66)는 아버지 뜻에 따라 군말 없이 농부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매실, 고추 등의 밭작물을 키우며 내내 지역 농민회에서 일했다.
농민운동은 김씨의 집안에선 삶 자체였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김군섭씨와 주성희씨는 가족을 이룬 후 지역 농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가톨릭농민회(전국농민회총연맹의 전신 중 하나) 활동을 한 해도 거르지 않았는데 “아들이 자연스럽게 보고 자란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이 사는 경남 진주 관방마을은 1980년대부터 농민운동이 태동한 곳으로, 김군섭씨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 경남도연맹 의장을 맡기도 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개방 이후 여러 나라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잖아요. 문제는 우리나라 농사를 지키면서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잖아요, 그 결과 지금 곡물 자급률이 20%가 안 됩니다. (지금 농촌 현실은) 제가 젊을 때 농민운동하며 걱정했던 것보다 더 암울해요. 동네에 아기 울음소리도 안 나고 젊은이도 없죠. 농촌 소멸을 얘기하고 있잖아요.” 김군섭씨는 청·장년 시기 숱하게 ‘아스팔트 농사’에 나섰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2005년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당시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에서 쌀개방을 10년 더 유예하는 대신 의무수입량을 늘리기로 해 농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그해 11월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 두 명이 과잉진압으로 사망했다. 김씨도 뇌출혈 부상을 당했다.
김군섭씨는 그 후 농사일을 하면서도 잦은 부상에 시달렸고, 아들 김재영씨가 농사일에 뛰어드는 계기가 됐다. 아버지의 일을 이어받는다는 건 밥벌이로서 농사의 어려움과 분노를 이어받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김재영씨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청년 농민운동 활동가로서 농가의 현실을 언급했는데, 그의 이야기는 일관성을 띤다. 생산비용은 올랐고, 농가소득은 줄었는데 대책이 없다는 얘기였다. 지난해 경남지역 농가의 평균 농업소득은 한 해 646만원이었고, 농업 외 소득은 2097만원이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농업소득만으로 살기 힘드니 다른 일을 같이하는 농민들이 더 늘어난 것(지난 5월 28일 경남신문)”이라고 했다. 지난해 경남지역에서는 농가의 핵심자산인 농지를 담보로 한 대출이 2759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김씨는 “농산물 가격 책정과 생산비 폭등 문제가 있다. 농민들도 좋은 작물을 키우기 위한 소독시설과 영양제 공급 등에 신경을 쓴다. 생산 과정에서 비용이 많이 들고 있다”(지난해 10월 9일 경남도민일보)라고 했다.
■기후변화 대책도 수입?
수년 전부터 본격화된 기후위기로 농작물 생산비는 오르고 생산량은 떨어졌다. 그러나 정부는 ‘수입 확대’에만 골몰해 농심에 불을 질렀다. 김군섭씨는 이렇게 말했다. “2~3년 전부터 기후위기가 심하게 나타났어요. 과수나 밭작물 농민들이 특히 어렵습니다. 우리 가족은 고추농사를 짓는데 햇볕이 예전보다 적게 나고 비도 많고 해서 수확량이 줄었어요. 얼마 전에도 비가 물폭탄처럼 왔잖아요. 기후위기 시대 농민의 어려움을 호소하기 위해 (농기계를) 가져간 건데 그것 때문에….” 아들 김재영씨가 지난 7월 4일 1t 트럭에 싣고 갔던 농약살포기계는 주로 과수원에서 쓰는 농기계다.
강순중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말한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무관세, 저관세 농산물 수입을 부문별하게 늘리고 있어요. 당장 가격을 낮추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농가는 생산기반이 무너져요. 농민이 살 수는 있게 해줘야 하는데, 무조건 희생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그렇다고 농민들이 소비자들에게 ‘비싼 가격’을 감당하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도시 서민들의 삶도 어렵잖아요. 우리 과일 먹으려 해도 너무 비싸니까 수입 과일에 손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러면 정부에서 제대로 정책을 펼쳐 서민들도 우리 과일 먹을 수 있게 해야죠. 그게 국가 역할 아닌가요.”(김군섭씨)
대다수 언론이 깊게 다루지 않는 농민들의 요구사항은 이렇다. 무분별한 ‘저관세·무관세 농산물 수입’을 중단할 것, 이상기후 피해를 보아도 보험금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농업재해보험을 정부가 재정비할 것, 이상기후로 작물이 대량 피해를 본 경우 생산비를 보전해주는 농작물 재해보상법을 제정할 것, 농산물의 60%가 서울 가락시장에 집하됐다가 다시 전국으로 분산되는 복잡한 유통구조를 바꿀 것.
그러나 정부가 농민의 목소리에 성의 있는 답을 내놓을 것 같지는 않다. 지난 7월 3일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채소·과일·식품원료 51개 품목의 관세율을 0~10%로 낮추는 ‘할당관세’를 적용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무관세였던 바나나, 파인애플, 망고, 배추, 당근 등에 더해 무, 오렌지 농축액 등도 초저관세를 적용키로 한 것이다. 관세를 낮추는 또 다른 정책수단인 TRQ(저율관세할당) 제도의 활용도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TRQ는 WTO·FTA 협정에서 정한 품목에 대해 일정한 물량까지는 낮은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저관세 수입량이 너무 많아져 국내 생산자가 타격을 입는 것을 막는 게 제도의 애초 취지지만 정부는 수시로 시행규칙(시장접근물량 증량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저관세 물량’ 늘리기를 반복했다. 지난해에도 양파의 TRQ 물량은 기존(2만645t)의 5배가 넘는 11만645t으로 늘었다. 윤병선 건국대 경제통상학과 교수는 정부가 반복적으로 관세를 낮춰 수입물량을 늘리는 것에 대해 “수출국과 수입업자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라면서 “기후재난 고민이 없었던 과거 신자유주의 개방화 정책이 지금도 우리 농업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농민들의 분노
김재영씨의 구속 이후 농민들의 반발은 심상찮다. 경남 창원에서 농사를 짓는 김순재씨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한 사람-청년이 심각한 사태를 발생시키지 않았는데도 구금시키는 세상은 옳은 세상이 아니다. 의는 외로우면 안 된다”는 글을 지난 7월 11일 페이스북에 올려 후원모금을 시작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 목표액(1000만원)을 채웠다고 한다. 경남 진주시청 앞에선 매일 농민들의 1인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지난 7월 20일 창원시 국민의힘 경남도당사 앞에선 김재영씨 구속에 항의하는 ‘트럭 집회’가 열렸다. 권혁주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은 “지난 농민대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세 차례 정도 있었는데, 참가자 10명가량에 소환 통보가 이어지고 있다. 실패한 농정에 대한 규탄을 억누르려는 것으로 본다”면서 “청년 농민 구속에 대한 반발이 불붙는 근본 이유는 농민을 내팽개친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을 이끌었던 트랙터 투쟁조직 ‘전봉준 투쟁단’의 재결성 등 여러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