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3명 중 2명은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의 갈등도는 상승하고, 통합 수준은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10명 중 9명 이상은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심각하다고 생각했는데, 절반 이상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전체적으로 사회 투명성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고, 정치 성향에 따라 소통의 단절도 큰 것으로 풀이된다.
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의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 공정성과 갈등 인식’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기준 국민 65.1%는 한국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는 공정한 편이다’라는 데 동의하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4.9%에 그쳤다. 보사연은 2014년부터 매년 이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난해 19~75세 남녀 395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했다.
영역별로 국민들은 사법·행정 시스템(56.7%), 기업 성과 평가 및 승진 심사(57.4%), 신입사원 채용(43.4%), 대학입시(27.4%) 등 순으로 불공정하다고 느꼈다. 사회적 불공정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기득권의 부정부패’(37.8%)가 가장 많이 꼽혔다. ‘지나친 경쟁 시스템’(26.6%), ‘공정한 평가 체계의 미비’(15.0%), ‘공정에 대한 사람들의 낮은 인식’(13.0%), ‘계층이동 제한과 불평등 증가’(7.6%) 등이 뒤를 이었다. 보고서는 “상대적으로 사회의 투명성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국민들이 인식하는 사회 통합도는 낮아지고 갈등도는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 통합도는 10점 만점에 4.2점으로 2021년 4.59점에서 0.39점 하락했다. 사회갈등도는 2018년 2.88점에서 작년 2.93점으로 소폭 상승했다. 성별로는 남성이 여성보다, 연령대로는 중장년이 다른 연령대보다, 소득분위로는 1분위(소득 하위 20%)가 다른 소득분위에 비해, 지역의 경우 농어촌 거주자가 다른 지역보다 사회갈등 심각도가 높았다.
사회갈등의 원인으로는 청년과 중장년층은 미래 삶의 불확실성 심화와 계층간 사회이동성 단절을 주된 원인으로 봤다. 노년층의 경우 미래 삶의 불확실성 심화와 지도층의 도덕적 책임 부족을 더 중요하게 꼽았다. 보고서는 “공정성 인식이 사회갈등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사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할수록 사회갈등이 심하지 않은 것으로 인식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사회가 불공정하며, 그것이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 원인이 기득권의 부정부패와 불평등이라는 인식은 사회를 전반적으로 부정적이고 갈등적이라는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고 했다.
응답자들은 여러 사회 갈등 중 진보와 보수 간 정치적 갈등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보수 갈등은 2018년에도 한국 사회에서 가장 첨예한 갈등으로 꼽혔지만, 그 정도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92.33%가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매우 심각하거나 심각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치 성향의 차이는 일상 생활의 교제 성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8.2%)은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나 결혼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정치 성향이 다르면 친구·지인과의 술자리를 할 수 없다고 답한 사람도 33%였다. 71.4%는 정치 성향이 다르면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하지 않겠다고 했다.
진보와 보수 정치 성향에 따른 갈등에 이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갈등(82.2%), 노사갈등(79.1%), 빈부 갈등(78.0%),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 갈등(71.8%), 지역 갈등(71.5%)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주택소유자와 비소유자의 갈등에 대한 심각도가 2018년 49.6%에서 지난해 60.9%로 큰폭 상승한 점이 눈에 띄었고, 젠더갈등 심각도는 같은 기간 52.28%에서 46.61%로 감소했다.
지난 몇년 간 청년(19~34세)들 사이에서 ‘공정’이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로 떠올랐지만, 한국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인식은 청년층보다 오히려 중장년층에게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중장년층 67.9%, 청년층 62.1%, 노년층 59.4%이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했다.
청년의 절반에 가까운 46.5%가 한국사회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전체 응답자 38.7%보다 7.8%포인트 높은 수치다. 청년들은 청년 세대 내에서 젠더 갈등(52.6%), 계층 갈등(55.4%), 정치적 이념 갈등(50.8%)이 심각하다고 봤다. 청년들 86.6%는 청년 대상 정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보고서는 “사회 구성원 간의 갈등과 대립, 긴장과 반목을 풀어내기 위해서는 생각과 입장이 다른 사람과 조우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을 온·오프라인에서 조성해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또 사회갈등을 완화하면서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 사회갈등의 제도화를 통한 사회통합 방안 모색, 공정성 회복을 위한 위원회 설치 및 운영 방안, 시민교육 확대, 사회갈등 모니터링 실시 등을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