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최근 정산 지연 사태를 일으킨 티몬·위메프(티메프)의 ‘자율구조조정지원(ARS) 프로그램’을 승인하면서 앞으로 시도될 채권자(판매자·소비자)와의 협의 과정에 이목이 쏠린다. 두 기업은 회생 절차 개시를 일단 유예하고 최대 3개월 동안 채권자와 변제 방안을 협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채권자 집단의 규모가 크고 구성도 다양해 협의가 쉽지 않은데다 회사와 경영진을 상대로 하는 검찰 수사까지 진행되는 등 적지 않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법원이 지난 2일 티메프 측의 ARS 프로그램 신청을 승인하면서 두 기업의 회생 절차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ARS 프로그램은 법원이 기업이 신청한 회생 절차 개시를 일단 유예하고, 채권자와 변제 방안을 자유롭게 협의하도록 시간을 주는 제도다. 법원의 결정에 따라 티메프는 주요 채권자와 함께 채권자협의회를 구성하고, 자금 조달 방식을 비롯한 자율 구조조정 계획을 다음달 2일까지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법원은 채권자 보호 방안을 먼저 논의하기 위해 오는 13일 정부 및 유관기관과 함께 ‘회생절차 협의회’를 열 계획이다.
하지만 티메프의 ARS 프로그램이 순조롭게 진행되려면 극복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일단 티메프는 셀러와 소비자 등 돈이 물려 있는 채권자가 최소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해관계자가 많을수록 의견을 수렴해 합의를 이루기가 까다롭다. 협의회에는 카드사와 전자지급결제대행(PG)사까지 포함해야 해 협상 테이블을 구성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역사가 그리 길지 않은 ARS 프로그램의 성사율 자체도 45%로 절반을 약간 밑돈다. 2018년 ARS 프로그램이 도입된 이후 지난해 6월까지 서울회생법원에서 ARS 프로그램 절차를 밟은 업체 22곳 중 자율구조조정 합의를 이룬 업체는 10곳이다. 합의에 성공한 업체 10곳의 채권자는 대부분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자체적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갖춘 경우가 많았다.
박시형 변호사(법무법인 선경)는 4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구조조정에 대한 경험이 많은 금융기관들은 협의가 상대적으로 쉽겠지만, (티메프의 경우) 수많은 셀러와 소액 채권자들과 협의해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티메프 측은 협상안으로 ‘자금 마련을 통한 변제율 상향’을 꺼낼 것으로 보인다. 앞서 두 회사 대표는 신규 투자 유치나 인수합병(M&A)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미 판매자와 소비자의 신뢰를 잃어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 상태에서 이를 감내하겠다는 투자자나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김관기 변호사(김박법률사무소)는 “신뢰를 먹고 사는 온라인 사업은 한 번 신뢰를 잃으면 다른 업체가 나서기 힘들고, 변제 방안을 약속하더라도 이를 지킬 가능성이 없다는 인식 때문에 회생이 힘들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 역시 협의를 어렵게 만드는 변수다. 검찰이 이미 티메프 각 대표에게 횡령과 사기 혐의를 적용해 수사에 돌입한 상황에서 이들이 내놓는 자구책은 여간해선 채권자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달 26일 금감원의 수사 의뢰를 받아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이준동)에 특별 수사팀을 꾸려 구영배 큐텐 대표를 비롯해 류광진 티몬 대표와 류화현 위메프 대표를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 중이다. 검찰은 지난 1일과 2일 이들 경영진 자택과 티메프 본사, 큐텐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 했다.
박 변호사는 “형사적인 판단에서 면죄부를 받지 못하면 경제적인 책임도 피할 수 없으므로 회생절차가 진행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