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 지워지지 않도록···“동두천 ‘성병관리소’ 철거 막겠다”

김송이 기자
동두천시의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식이 1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사진 크게보기

동두천시의 옛 성병관리소 철거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발족식이 1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경기 동두천시가 한국전쟁 이후 국가가 ‘미군 위안부’를 강제 격리수용했던 옛 성병관리소 건물 철거에 나서자 시민사회가 “근현대 문화유산 철거 계획을 즉각 중단하라”며 반발했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과 정의기억연대 등 58개 시민단체는 12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 철거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동두천시는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철거하지 말고 역사와 문화예술이 깃든 평화와 인권의 기억공간으로 활용하라”고 촉구했다.

동두천 성병관리소는 1970~90년대 국가가 운영했던 ‘낙검자 수용소’이다. 한국전쟁 이후 정부는 주한미군 주둔지마다 기지촌을 조성했다. 당시 정부는 미군 기지 인근에 성매매 영업이 가능한 특정 지역을 설치하고, 성매매 여성을 상대로 성병 검사를 받게 하는 등 사실상 성매매를 조장했다. 성병 양성 진단을 받은 여성(낙검자)들은 관리소에 감금됐다. 수용자 중에 페니실린 등 약물 과다투여로 쇼크사하거나 탈출하려다 숨지는 사례도 있었다. 관리소는 ‘몽키하우스’라고도 불렸다. 수용자들이 철창 안에 갇힌 원숭이 신세라는 의미였다.

동두천시 낙검자 수용소 2층 방의 쇠창살 너머로 감시초소가 보인다. ‘달러를 버는 애국자’로 치켜세우던 정부는 그 일을 수행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신체를 감금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진 크게보기

동두천시 낙검자 수용소 2층 방의 쇠창살 너머로 감시초소가 보인다. ‘달러를 버는 애국자’로 치켜세우던 정부는 그 일을 수행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신체를 감금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동두천시는 소요산 관광지 확대개발 사업 계획을 세우고 지난해 옛 성병관리소 부지를 매입했다. 폐허로 방치된 성병관리소 건물을 철거하고 부지를 재단장해 새로운 용도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공대위는 “시가 오는 9월 초 의회에서 심의할 제2차 추경 예산안에 이 건물의 철거 비용이 포함돼있다”며 “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경험은 지워야 할 역사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반성해야 할 역사”라고 주장했다.

김대용 공대위 공동대표는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그 책임을 방기하는 것을 넘어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희생을 강요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던 폭력의 현장을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며 “이런 사실들은 기억돼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동두천 시민 중에서는 폐허로 방치된 이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지역 사회 갈등 현안이기도 하다.

공대위는 국회와 경기도에도 적극 행정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2022년 대법원 판결이 났어도 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21대 국회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며 “경기도는 상위법이 없다는 핑계를 대지 말고 피해 여성들에게 실질적인 생계 지원이 이뤄지도록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한다”고 했다.

대법원은 2022년 주한미군을 상대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이 국가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성매매를 조장한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피해자들은 정부의 공식 사과와 후속 조치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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