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아프지 않게”…아이들의 ‘소원’ 이뤄졌다

이홍근 기자

‘불합치’ 결정에 시민들 자축

“판결 형식·내용 독일과 유사

2030년 목표도 강화 예상”

국내외 환경운동 힘 받을 듯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온 29일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과 어머니가 함께 밝은 표정으로 대심판정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사진 크게보기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온 29일 서울 종로구 헌재에서 한제아 아기기후소송 청구인과 어머니가 함께 밝은 표정으로 대심판정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2년 전 열 살이던 한제아의 소원은 지구의 건강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된 후에도, 결혼해 낳은 아이가 열 살이 되어도, 유일한 고향 푸른 별이 여전히 안전한 집으로 남아 있길 바라는 ‘소원’을 담아 2022년 헌법재판소에 기후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소원이 헌법을 바꿔달라고 비는 소원을 줄인 말인 줄 알았다”는 한제아 기후소송 청구인은 29일 “마치 소원이 이뤄진 것처럼 기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헌재는 이날 2030년까지만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율’을 규정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 등은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했다”면서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지자 헌재 앞에 모인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자축했다. 2020년 처음으로 기후소송을 냈던 ‘청소년기후행동’ 소속 김보림 활동가는 기자회견에서 마이크를 잡자마자 울먹이며 “기후위기의 위험이 빠르게 커져가는 상황 속에서 우리 사회가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 방향을 제시하는 결정이 오늘 헌재에서 진행됐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기후위기로부터 안전한 삶을 누릴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기기후소송을 이끈 김영희 변호사는 “소송 청구인이 어른이 됐을 때를 상상했다”면서 “더욱 가혹해진 기후위기로 지금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헌재의 결정은 우리 사회가 규범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더 할 수 있도록 한 중대한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이영경 에너지정의행동 사무국장도 “폭우 때문에 먹고 싶은 배달음식을 내일로 미루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을 때, 산사태를 조심하라는 안전문자를 받고서 집 앞의 옹벽이 걱정될 때 다시금 오늘의 판결을 기억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이날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하면서도 2030년 감축목표 40%가 충분하지 않아 기본권 침해라는 원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후위기라는 위험상황에 상응하는 보호조치로서 필요한 최소한의 성격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2031년부터 2049년까지의 구체적인 감축목표만 정하면 2030년 목표는 상향하지 않아도 법률상 문제는 없게 된다.

이 같은 우려에 대리인단 이병주 변호사는 긍정적 해석을 내놨다. 이 변호사는 “판결의 형식과 내용이 앞선 독일 기후소송 결정과 거의 같으므로 한국도 2030년 목표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독일도 2030년 이후 목표가 미래세대를 보호하기에 부족하다는 법원 결정이 나왔고, 그걸 독일 연방의회가 받아서 법을 강화했다”면서 “우리 국회도 그렇게 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도 “편협하게 해석하면 강제조항은 2031년부터 2049년밖에 없는 것이지만, 판결을 가지고 입법을 어떻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로 국내외 환경운동이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장은 “의미 있는 디딤돌이 하나 놓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협정이 자율적 목표 설정을 전제하는 만큼 개별 국가들의 법원 판단이 중요하다”며 “이런 사례가 쌓이면 불확실한 국제협약을 확실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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