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그 후

“천둥 같던 사고…제가 ‘주인공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걸까요”

전지현 기자
시청역 역주행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지난 7월15일 추모를 위해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와 음료 등이 놓여 있다. 조태형 기자

시청역 역주행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지난 7월15일 추모를 위해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와 음료 등이 놓여 있다. 조태형 기자

한 해의 절반이 지난 7월의 첫날이었다. A씨(34)는 하필 그날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지난 한 달을 고된 업무로 보내야 했던 탓에 퇴근 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자리를 지켰다.

‘7월은 일이 밀리지 않게 해야지.’ 밤 9시가 지나서야 A씨는 짐을 챙겼다.

회사 앞 인도를 걸으며 A씨는 친하게 지내는 형과 전화 통화를 했다. 거기까진 여느 일상의 퇴근길과 다르지 않았다. 얼마 걷지 않았을 무렵 ‘쾅’ 천둥 같은 굉음이 들렸다. ‘이게 뭐야’ 생각이 들자마자 A씨는 자신이 길바닥에 내팽개쳐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연이은 굉음과 비명, 늘 지나던 퇴근길이 아수라장이 됐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바닥에 쓸린 양손에서 피가 흘렀다. 오른쪽 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 술집에서 뛰쳐나온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리다 안 들리다 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구급대원들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크게 다쳤겠구나.’ 그때부터 A씨는 사고 현장을 자세히 보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러나 구급대원들이 옮기던 이들의 맨발은 아직도 생생하다.

‘시청역 돌진 교통사고’ 피해생존자 A씨(34)가 지난 7월1일 사고를 당한 후 119대원을 기다리며 찍은 현장 사진. 방호울타리가 파손돼 있다. A씨 제공

‘시청역 돌진 교통사고’ 피해생존자 A씨(34)가 지난 7월1일 사고를 당한 후 119대원을 기다리며 찍은 현장 사진. 방호울타리가 파손돼 있다. A씨 제공

그는 ‘시청역 돌진사고’로 불린 이 대형 교통사고에서 가장 먼저 치인 당사자다. 평범한 하루 끝을 덮친 ‘굉음’의 정체가 역주행 차량이었고, 그로 인해 16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A씨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경향신문은 5일 A씨와 만나 그가 보낸 지난 두 달 이야기를 들었다. “일상으로 복귀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그는 아직 발에 부기가 빠지지 않아 슬리퍼 차림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A씨는 “사고가 발생한 거리는 아직 피해 다닌다”고 했다.

부기가 남은 다리, 굉음에 놀라는 마음

사고 당일 A씨는 구급차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처음 받은 진단은 타박상이었다. 정신을 추스르고 나니 괜찮은 것 같기도 했다. 아들 회사 근처에서 큰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팔다리도 멀쩡하고 꿰맬 정도도 아니니 집에서 기다리시라”라고 차분히 말할 정도였다.

다음날 오른쪽 종아리가 무섭게 부어올랐다. 나중엔 거동조차 어려웠다.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한 채 이틀 정도 택시로 출근했던 A씨는 통증을 참지 못하고 결국 입원했다. 결과는 전치 4주의 골절상. 오른쪽 다리 비골이 부러지고 발목 인대가 파열됐으며 종아리 근육이 손상됐다고 했다.

시청역 돌진 교통사고 피해생존자 A씨(34)가 부어오른 오른쪽 다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A씨 제공

시청역 돌진 교통사고 피해생존자 A씨(34)가 부어오른 오른쪽 다리를 들어보이고 있다. A씨 제공

다친 것은 다리만이 아니었다. 사고의 잔상은 그에게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고 이후 그는 천둥·번개가 치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갑작스럽게 등 뒤를 밝혀온 불빛, ‘쾅’하는 굉음이 떠올라서였다. 한동안 문 닫는 소리에도 깜짝 놀랐다. 그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이다.

출근 한 달째, A씨는 먼 길을 돌아 버스를 탄다. 그는 “습관적으로 그 길로 접어들었다가, 그 거리에 깔린 타일을 보자마자 차에 치인 순간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만든 사망자 추모공간도 찾아가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너무 빨리 찾아왔고, 자신은 간발의 차로 빗겨간 죽음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A씨는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깝고, 싱숭생숭하다”라고 했다. 사고 현장에 새로 설치된 철제 울타리마저 모질어보인다고 했다.

“제가 주인공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건가요?”

서울시가 시청역 돌진사고를 ‘사회재난’으로 선포한 것은 A씨에게 한 줄기 위안이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사고 다음 날 “재난안전법에 규정된 구호금과 장례비는 물론이고 서울시민을 위한 시민안전보험까지 가능한 모든 지원을 차질 없이 잘 챙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재난’이라 해서 당장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그는 ‘서울시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기도·고양시로 이관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고 후 두 달간 A씨는 꾸준히 구호금 지급 여부를 문의했다. 지자체는 난색을 표했다.

경기도는 “자동차 사고는 보험에 가입돼 가해자가 자력이 없는 경우가 아니니, 지원 결정 자체가 어려우나 서울시의 요청을 감안해 경기도민이 소외되지 않도록 검토한 것”이라고 했다. 고양시는 최근 ‘산업재해보험법상 심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현재로서는 구호금 지급이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장해등급 14급 이상이 나와야 하는데, A씨는 아직 장애등급을 판별받지 못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최저등급인 14급 충족 기준. 경기 고양시에 따르면 A씨는 이 기준에 미달해 서울시의 ‘사회 재난 선포’로 인한 구호금을 받기 어렵게 됐다.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최저등급인 14급 충족 기준. 경기 고양시에 따르면 A씨는 이 기준에 미달해 서울시의 ‘사회 재난 선포’로 인한 구호금을 받기 어렵게 됐다.국가법령정보센터 갈무리

불의의 사고로 신체적·경제적 피해를 입고도 지원 대상에서 배제된 것은 A씨만이 아니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부상자들도 단순 골절·근육 염좌·근육통 정도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해 구호금을 받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A씨는 “단순 교통사고인데 내가 너무 주인공 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건가”라는 자책이 들었다고 했다. 한 달 내내 신문·방송에 보도되고, 사회재난이 선포되고, 정부가 제도 개선에 착수하는 참사였지만 A씨에게는 단순 교통사고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희생자 조롱 글’의 주인공이 된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겨우 진정이 되려던 때, 악성 댓글들을 봤다”고 했다. 고소 의사를 묻고자 찾아온 경찰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악의적 글들을 보여줬다. 희생자·부상자들을 볼링핀에 빗댄 글에서 더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A씨는 “2차 가해하는 글이 사람을 정말 갉아먹는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다.

A씨가 바라는 것은 일상으로의 복귀다. 그러나 당시를 떠올리고 싶지 않은 마음과, 지자체 구호금을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 충돌하며 회복을 방해하고 있다. 재활에는 얼마나 걸릴지, 소송을 하게 되면 변호사 이용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아직 고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걱정도 한참 남았다. 답답함과 미안함, 분노 속에서 지내고 있다는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특별한 것을 하려 하기보다, 매일의 일상을 되찾고 싶어요. 그뿐입니다.”


Today`s HOT
이 기쁨이 203주년, 과테말라 독립 기념일 이집트 기차 충돌로 어린이 2명 사망 이색 대회 독일 취미 경마 선수권 대회 재앙처럼 번지는 남미 산불
태풍 야기로 인한 홍수로 침수된 태국 치앙라이 영국 공군대학에서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윌리엄 왕자
네덜란드 해방에 기여한 사람들의 묘지를 방문한 사람들 허리케인 프랜신으로 파손된 미국의 한 매장
볼리비아 산불을 냉각하고 있는 사람들 브라질 원주민의 망토 반환을 축하하는 기념식 베네수엘라 청년당 창립 기념 행사 태풍 야기로 경찰의 도움을 받는 미얀마 주민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