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의료공백 해결을 위해 ‘여·야·의·정(여당·야당·의료계·정부)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지만, 핵심 당사자인 의료계는 여전히 ‘2025·2026학년도 증원 원점 재검토’가 전제되어야 대화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는 협의체가 추계를 통해 의대정원을 늘린다면 2027년부터나 적용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증원을 둘러싼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9일부터 2025학년도 수시모집 일정이 시작된다.
의협 “2000명 늘렸다 줄여도 대혼란”
의협 관계자는 8일 기자와 통화에서 “당장 (의대 정원) 2000명을 늘렸다가, 2026년부터 한명도 안 늘린다고 해도 현장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2025년을 못 건드리고 다음해를 줄인다는 건 황당한 얘기”라며 “차분하게, 과학적인 기구를 통해 의대정원을 추계하면 2027년도 정도는 돼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공식입장”이라고 말했다. 일단 2025·2026년도 정원은 원점에 두고, 협의를 통해 증원할 수 있는 시기는 2027년도나 돼야 한다는 뜻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일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뒤 임현택 의협회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2025년 의대 정원의 원점 재논의가 불가한 이유와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반문한 뒤 “의협은 의료대란 사태를 해결할 여야정에 합리적 단일안을 요구한다”고 적었다.
의료계 전반의 반응도 비슷하다. 서울시의사회는 “2025년 입학 정원 재검토가 없는 협의체는 무의미하다”며 “의대정원 통보 등 일방적 정책 추진을 강행하지 않는다’는 2020년 9·4 의정 합의 위반에 대해 복지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기도의사회는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의 원인인 2025년도 의대 증원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는 본질을 왜곡한 꼼수 주장”이라며 “의학교육 파탄을 초래한 담당 공무원의 파면, 대통령의 사과가 상호 간의 대화를 위한 신뢰 회복의 기본”이라고 했다.
9일 대입 수시전형 시작…정부 “2026년 정원부터 논의”
정부는 9일부터 내년도 수시 모집이 시작되는 만큼 2025년 의대 정원 논의는 협상 대상에 올릴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2026학년도 의대증원 문제는 ‘0명 증원’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양측이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사이 의료 현장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이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중앙응급의료센터 종합상황판에 표출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80곳의 후속 진료 가능 여부를 분석한 결과, 27개 중증·응급질환의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모두 88곳(5일 기준)으로 확인됐다. 전공의 집단사직 이전인 2월 첫째 주(109곳)와 비교해 약 20% 감소한 수치다.
군의관을 파견해 응급 의료 공백을 막겠다는 정부 대책도 차질을 빚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 4일부터 의료 현장에 군의관 총 250명을 파견했다. 이들 가운데 15명은 집중관리 대상 의료기관 5곳에 우선 배정했으나, 일부는 업무 부담을 이유로 업무를 중단하고 기존 근무지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