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조기 사진을 올리세요”···추석 대목에도 활력 잃은 재래시장

오동욱 기자
임모씨가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가게 매대에 지난 11일 수산물이 진열돼 있다. 임씨는 “앞에 내놓은 매대가 원래 두 단은 더 나와있어야 하지만 물건도 손님도 없어 줄였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사진 크게보기

임모씨가 서울 마포구에서 운영하는 가게 매대에 지난 11일 수산물이 진열돼 있다. 임씨는 “앞에 내놓은 매대가 원래 두 단은 더 나와있어야 하지만 물건도 손님도 없어 줄였다”고 말했다. 오동욱 기자

“히익! 조기 한 마리가 이렇게 비싸?”

지난 11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수산물 가게에서 추석 장을 보러온 한 손님이 혀를 내둘렀다. 가격표에 적힌 ‘중국산 조기’ 1마리 가격은 7000원. 사장 임모씨(51)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안 오른 게 없어요. 조기도 너무 비싸니까 아예 조기 사진을 찍어서 붙여놓으려고요”라고 말했다. 임씨의 냉소 섞인 말에 손님은 “주인이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떻게 해”라며 멋쩍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이날 오후 30분 동안 임씨의 가게를 찾은 손님은 단 두 명, 그나마 물건을 사간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추석 대목을 앞둔 서울의 재래시장들에서 활력을 찾아볼 수 없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기 주저했고, 상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만 내쉬었다. 수산물 가게 주인들은 “가격할인 행사까지 했는데 아예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추석 대목에 오히려 적자만 보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만난 서모씨(56)는 22년째 수산물 장사를 해왔다. 그는 “국내산 조기는 도매가로 한 마리에 1만2000원씩 해서 한 손(2마리)에 3만원은 받아야 하는데 2만5000원에 ‘원가치기’를 하고 있다”며 “그래도 사질 않는다”고 말했다. 망원시장에서 52년째 장사를 한 최모씨(74)는 “추석 대목만 바라보고 장사를 하는데 물건이 통 팔릴 생각을 않는다”며 “추석 대목에 빚내서 (돈을) 까먹고만 있다”고 한참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내부 전경. 12일 시장에서 수산물을 파는 A씨의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없다. 오동욱 기자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의 내부 전경. 12일 시장에서 수산물을 파는 A씨의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없다. 오동욱 기자

공급자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한 시장 상인들은 손님들의 얇은 주머니 사정에 공감했다. 서씨는 “요즘은 자식들한테 집에 오지 말라고 하고 (먹을 것을) 안 싸주는 게 대세”라며 “이맘때 10만원 쓸 것을 요즘엔 5만원만 쓴다”고 했다. 다른 수산물 가게의 점원 A씨는 텅 빈 시장 거리를 가리키며 “주머니에 돈이 없는지 그냥 장사 자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어획량이 줄며 수산물 가격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는 말도 나왔다. 중국산 조기를 파는 임씨는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30% 이상은 비싸졌다”며 “200g짜리 국내산 조기는 2만~3만원 가량하는데 그마저도 물건이 없어 구경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망원시장에서 오징어 두 마리를 산 소비자 천모씨(43)도 “원래는 시댁에 갈 때 먹을 것을 좀 싸가는 편인데 물가가 너무 높아 이번엔 돈만 드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달 19일부터 비축 수산물을 풀고 할인행사를 여는 등 물가 안정 대책을 쏟아냈지만 상인들 “체감할 수 없다”고 다. 임씨는 “어획량 자체가 줄어드는데 비축품을 푸는 게 소용 있을까 싶다”며 “미끼용 상품이 싸게 나올 수는 있지만 품질을 담보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서씨는 “손님들이 더 싼 물건을 찾아서 시장을 두세 바퀴씩은 도는 게 당연하게 됐다”며 “차라리 서민들한테 돈을 주던 코로나 때가 그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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