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력추계기구 추진에 시큰둥한 의료계···“현재 갈등 해소엔 큰 도움 안될 것”

최서은 기자
최안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이 3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료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안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이 30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의료 현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계는 인력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구성의 필요성 자체는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추계위가 현재의 의·정 갈등을 해결하는 돌파구가 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각 의사단체별로 정부의 사과와 2025년 증원 재검토가 있어야 참여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부터, 구성이 잘 된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는 의견 등으로 층위가 갈리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30일 입장문을 내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 철회·사과 없이는 의사 인력 추계기구 참여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의협은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 정책 등 잘못된 의료정책을 강행하여 현재의 의료대란을 초래한 것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의료계가 신뢰할 수 있는 협의에 임할 수 있도록 분명한 입장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 한 모든 논의에 참여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이날 오후 의협회관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2020년 의·정 합의를 어긴 정부가 신뢰 회복을 우선 이뤄야 한다”며 “자문기구 아닌 의결 기구로 과반 의상의 의료 전문가를 포함하여 일방적인 정책 추진이 아닌 전문가 중심의 논의 구조를 법제화하고 협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의원회(전의비)도 비슷한 의견을 냈다. 전의비 관계자는 “전공의들이 복귀해야 문제가 해결되는데, 2025년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증원 재검토 없이 의료계가 추계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다만 추계기구의 필요성과 관련해서는 “필요하다고 보기는 한다”면서도 “2025년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가 전제부터 하고 진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추계위 구성에 따라 의료계가 참여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관계자는 “의료계가 요구해왔던 사항인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며 “추계위원회가 잘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에서 참여 요청이 오면 검토할 수는 있지만, 아직 참여 자격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참여 여부를 논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고 했다.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비상대책위원장도 “어디서 하든 독립적인 추계기구가 필요하다”면서 “구성원의 70~80%는 의사여야 한다”고 했다. 강 교수는 “일본을 벤치마킹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경험있는 의대교수가 참여해야 한다”며 “생중계나 속기록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투명하게 운영하고, 정권과는 독립적으로, 상설기구로 연속성을 갖도록 해야한다”고 제언했다.

일본의 의사추계기구인 ‘의사수급분과회’는 전체 위원 22명 중 의사가 16명, 간호사 2명 법학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교육학자가 각각 1명씩 참여한다. 담당 부처인 후생노동성은 행정적 지원만 한다. 2015년에서 2022년 1월까지 40여차례 회의를 개최했다. 일본의 의사 추계에 관한 회의는 녹취록과 참고 자료 모두 일반에게 투명하게 공개돼 있고 후생노동성 홈페이지에서 열람이 가능하다.

다만 정부가 인력수급 추계위원회를 만들더라도 현재 의·정갈등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의료계는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중요한 의·정갈등은 해결하지 않고 추계기구를 내세우면서 정부 계획대로 의료개혁을 추진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추계위원에 찬성했던 전의교협 관계자도 “현재 상황을 해결하는 데는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지금의 문제 해결에는 별로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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