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2년 연속 열린 서울 도심 국군 시가행진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첨단무기를 앞세운 행진에 열광하는 환호와 “시대에 맞지 않은 과시용 행사”라는 비판이 함께 나왔다.
건군 76주년 국군의날인 1일 열린 서울 도심 시가행진에는 다연장미사일(천무)과 전투기, K-9자주포 등 83종 340여대의 무기와 국군 장병 5000여명이 참가했다. 행사 4시간 전인 정오부터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 근처로 모여들기 시작한 시민들은 “벌써 이렇게 사람이 많아?”라며 행진을 잘 볼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다녔다. 화단에 올라갔다가 경찰에 제지를 받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가을비가 내린 직후라 쌀쌀한 날씨였지만 자리를 일찍 잡은 시민들은 돗자리·의자를 펴고 도시락을 먹으며 휴일을 즐겼다.
한국전쟁 뒤 독일로 이민했다는 김재근씨(88)는 “다음 주에 한·독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는 손자가 군에 입대할 예정”이라며 “예전과 달리 한국군의 강해진 모습을 보러 왔다”고 말했다. 자칭 ‘밀리터리 덕후’인 배태랑군(13)은 “아파치 헬기를 보고 싶어 강원 횡성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했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서울 송파구에서 어머니와 형 가족과 함께 구경하러 왔다는 차지현씨(38)는 “4살, 6살 된 조카들에게 탱크와 비행기를 보여주기 위해 일찍부터 나왔다”며 “군인들은 고생이 많겠지만 국방력을 자랑하는 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도 적지 않았다. 독일인 캐롤라인(31)과 니콜(34)은 “제주도와 부산을 갔다가 사흘 전에 서울에 왔는데 운 좋게도 대규모 군 행사를 한다고 해서 보러 왔다”며 “때때로 이런 행사를 통해 국방력을 뽐내는 자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전투기 5대가 노란색·분홍색·보라색 연기를 뿜으며 상공을 비행한 다음 본격적인 시가행진이 시작됐다. 탱크와 미사일이 지나가자 “아빠, 땡크다!” “나 좀 더 높이 들어봐!”하며 재촉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육·해·공·해병 의장대가 지나가자 박수와 함께 “멋있다” “늠름하다”는 반응이 나왔다.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사진을 찍었다.
군인과 무기를 동원한 대대적인 시가행진은 ‘보여주기식’의 불필요한 행사라며 비판하는 시민도 많았다. 딸·남편과 함께 행진을 바라보던 송숙희씨(45)는 “이런 보여주기식 행사가 지금 시대에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강도 높게 연습을 하다가 다친 군 장병도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치료는 제대로 받았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모씨(55)도 “개인들은 먹고살기 힘들다며 매일 울고불고하는데, 하루 군 행사에 돈을 80억원을 쓰는 게 말이 되냐”며 “내부에 분란이 일어나거나 위기가 닥치면 열병식을 하는 북한 모습을 똑 닮았다”고 말했다. 장래 희망이 군인이 되는 것인 정도현군(16)은 “행사도 좋지만 군 장병을 위한 보급 등 실질적인 지원이 먼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등 시민단체도 논평을 내고 “정부는 2년 연속 세수 부족으로 긴축 재정을 편성하면서 시민의 불편을 초래하는 과시성 행사에 80억원 가까운 민생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가 힘을 통한 평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하는 등 군사 위험이 고조됐다”며 “윤석열 정부의 실패한 군사대결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전용에 불과하다”고 했다.
온라인에서도 시가행진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다. 엑스(구 트위터)에는 “원래 국군의 날에는 군인은 쉬고 일반인은 안 쉬는데, 이제는 군인이 행사 뛰고 일반인은 쉰다”, “국민은 가난해지는데 이 와중에 국민 혈세 80억을 써가면서 국군의날 행사를 한다. 북한이냐” 등의 비판이 올라왔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오후 시간 대부분을 교통 통제하는데 굳이 이걸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불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