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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우울증으로 자살…법원 “의사결정 할 수 없는 상태, 보험금 지급해야”

유선희 기자
경향신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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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등 정신적 이유로 자살했다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동한 것”이라고 보고 보험사가 자살한 피보험자에 대한 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903단독 정성균 판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A씨의 유족이 보험사를 상대로 “보험금 3억5000만원을 달라”는 청구 소송에서 지난 6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20년 넘게 국내 대기업을 다니다 은퇴 후 2018년 미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 A씨는 영주권 취득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 등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한다. 그의 진료일지에는 2020년 3월 약 한 달 동안 우울증 등으로 통원 치료를 받은 기록이 있다. 증상은 더 나빠져 2020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중증 우울장애로 진료를 받았다. 그로부터 4개월 뒤 A씨는 자신의 집에서 자살했다.

A씨 유족은 보험사에 사망 보험금을 신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사 측은 “A씨가 자살 도구를 준비한 점 등을 고려하면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충동적으로 자살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보험사는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지만,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약관을 이유로 들었다.

정 판사는 “A씨는 사고 당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했다”면서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 예외에 해당해 보험사는 A씨 유족에게 사망보험금 3억5000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정 판사는 A씨의 진료기록 등을 종합해 “우울증 외에 자살할 만한 뚜렷한 동기가 엿보이지 않으므로 본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충동 탓에 자살에 이르게 됐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정 판사는 “우울증 등으로 자살을 실행에 옮기는 경우 자살의 의미를 몰랐다기보다는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반복되는 충동 탓에 어쩔 수 없이 자살을 행동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스스로 나름 노력했지만,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는 원칙적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행동한 것이라고 판단함이 타당한다”고 판시했다.

2012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전수안 대법관)는 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경우 심신상실, 정신착란 등 자유의지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의 자살만 국가유공자 자격을 인정해 온 판례를 처음으로 변경했다. 대법원은 “자유로운 의지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의 자살이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돼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표면적으로는 보험금 청구에 관한 민사사건이지만, 극심한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인 이유로 인한 자살을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상태’로 보고 ‘보건 대상자’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군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관한 판단이 나온 것으로도 볼 수 있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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