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대리운전 기사도 노동조합법상 ‘노동 3권’을 가진 노동자”라고 처음 인정한 판결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에 해당하지 않지만 실제론 일반 노동자처럼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는 추세와 궤를 같이 한다.
대법원이 지난달 27일 확정한 ‘대리운전 기사의 노조법상 노동자성 인정’ 판결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사용자와의 고용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들은 노동 3권을 보장받지만 개인 사업자이면서 사실상 사용자에 종속돼 일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는 노동 3권을 누릴 수 없는 점이 부당하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노동계에선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현실이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33조 1항에도 위배된다고 본다.
이 때문에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일일이 법원에 소송을 내고 노동자임을 인정받으려고 노력해 왔다. 대법원이 대리운전 기사 판결에서 인용했던 ‘2018년 학습지 교사와 방송 연기자에 대한 노조법상 노동자성 인정 대법원 판례’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처음으로 내렸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노동자의 노무제공에 따른 소득이 특정 사업자에 의존하고 있는지, 노동자와 특정 사업자의 법률관계가 상당한 정도로 지속·전속적인지,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하는지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은 “노조법은 근로기준법과 달리 헌법상 근로자의 노동 3권 보장을 통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사회적 지위 향상 등을 목적으로 제정됐다”며 “노조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노무제공 관계의 실질에 비춰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결은 디지털 기술 발달 등으로 늘어난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적용되고 있다. 2021년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신들이 고용한 대리운전 기사들과 관련한 행정소송을 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대리기사는 노동자가 아니고, 우리도 사용자가 아니다”라며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다투는 소송을 제기했다. ‘플랫폼 갑질’ 비판이 이어지자 카카오모빌리티는 소송을 취하하고 대리기사들과 단체교섭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7월 차량호출 서비스 ‘타다’ 운전기사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된다는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판례가 굳어지는 분위기지만 여전히 특수고용 노동자 인정 범위를 둘러싼 법적 다툼은 이어지고 있다. 화물연대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22년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화물차주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면서 화물연대를 노조로 인정하지 않았다. 정부가 화물연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노동계는 판례가 잇따르는만큼 법을 고쳐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간접고용 노동자와 특수고용 노동자를 보호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의 ‘노조법 2조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노조법 2·3조 개정안(간접고용 노동자 교섭권 보장, 쟁의행위 탄압 목적 손해배상·가압류 금지)’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법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