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1면이 그날 신문사의 얼굴이라면, 1면에 게재된 사진은 가장 먼저 바라보게 되는 눈동자가 아닐까요. 1면 사진은 경향신문 기자들과 국내외 통신사 기자들이 취재한 하루 치 사진 대략 3000~4000장 중에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입니다. 지난 한 주(월~금)의 1면 사진을 모았습니다.
■10월 7일
아동 원피스와 모자, 구두가 영정 사진으로 표현됐습니다. 영정 뒤로 헌옷 더미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7일자 1면 사진은 경향신문 창간 78주년 기획 ‘쓰레기 오비추어리’의 메인 사진입니다. 소비자가 버린 의류가 한국을 떠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추적했습니다. 유달리 빨라진 생산·소비·폐기의 속도는 대이동의 규모를 키웁니다. 해외 전자상거래 플랫폼 등으로 초저가 물품을 구매하기 쉬워지면서 일단 많이 산 뒤 단기간에 폐기물로 내놓는 소비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누군가의 물건으로 며칠을 살고, 지구를 돌며 오랜 시간에 걸쳐 죽는 물건들과 인간의 이야기를 조명한 기획입니다. 짧게 살고 오래 죽는 공산품의 생애가 괜찮은지를 묻습니다.
■10월 8일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10개 상임위에서 진행됐습니다. 수많은 사진 중 어떤 사진이 1면이 될까, 궁금한 날이었습니다. 사진들끼리 경쟁해 살아남은 한 장이 1면 자리를 차지할 테지요.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에 꽂혔습니다.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 정지 중인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직무 정지를 이유로 불출석 사유서를 냈다가, 야당에서 동행명령장 발부를 추진하자 오후에 국감장에 나왔습니다. 증인선서를 마친 이 위원장이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전달한 뒤 악수를 청하는 모습입니다. 둘 사이에 싸늘하고 팽팽한 신경전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10월 9일
민주당이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의혹들을 수사할 상설특검 수사요구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국회 본회의에 오른 특검법안들이 대통령의 거부권에 차례로 막히자, 상설특검안을 들고나온 겁니다. 민주당은 수사요구안에서 인천세관 직원이 연루된 마약 밀반입 사건에 대한 대통령실의 부당한 수사외압 행사 의혹과, 김 여사와 40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것이 확인된 주가조작 브로커가 연루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 대상으로 지목했습니다. 또 국회에 대한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증인으로 채택됐음에도 불출석한 사건도 수사 대상에 포함했습니다. 친절한 의원들이 사진에 잘 나오도록 큼지막하게 글씨를 써 붙였습니다.
■10월 10일
북한이 남측과 연결되는 도로·철도를 끊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요새화 공사를 진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북한이 올해 초부터 실시해온 남북 간 물리적 단절 조치를 공식화한 것입니다.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북 매체를 통해 발표한 보도문에서 “우리 공화국이 주권행사 영역과 대한민국 영토를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군사적 조치를 취한다는 것을 공포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이후 남북을 잇는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에 지뢰를 심고 철도를 철거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이날 1면 사진은 파주 접경 지역에서 바라본 북측의 모습입니다. 대거 동원된 북한 군인들이 작업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10월 11일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이며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입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림원은 “한강은 자신의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각 작품에서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는 점을 선정 이유로 꼽았습니다. 한 작가는 “나는 한국에서 책과 함께,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며 “동료 작가들의 노력과 강점이 나의 영감이 됐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오후 8시 신문사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야근자들 전원이 달라붙었고, 퇴근했던 기자들이 회사로 복귀했습니다. 이미 다른 기사들로 채워져 완성됐던 지면이 엎어졌습니다. 1면을 포함해 2, 3, 4, 5면까지 한강 작가의 수상 관련 소식으로 다시 채워졌습니다. 정말 큰 사건이자 사고였지요. 드물게 기분 좋은 사건이기도 했고요. 정신 없이 일하는 동료들의 표정이 그리 말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