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두고 백가쟁명으로 쏟아진 분석 중 공통의 단어 하나를 추리면 ‘고통’이다. 번역가 정은귀는 “한강은 응시하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시선이 머문 곳이 제주 4·3사건과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들, 가부장제 억압과 폭력에 놓인 여성들 고통이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 정인섭이 지난 15일 환경노동위 국감장에서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셀카를 찍었다는 기사를 읽을 때 떠오른 단어도 고통이다. 사망 노동자들과 동료, 유족들의 고통 말이다. 올해만 5명의 원·하청 노동자가 거제사업장에서 죽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소년이 온다> 중) 같은 문장은 한국의 여러 참사, 노동 현장 곳곳에도 적용할 수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는 권위를 더한 한강이 한국 곳곳 사람들의 고통을 문학의 힘으로 널리 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사회 부문 기자들이 어제도 오늘도 기록한 도처의 고통을 다시 읽어본다. 10월 기사 목록은 ‘죽었거나 죽어가거나’에 관한 고통으로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청첩장이 오는데) 딸아이(김산하)의 결혼식을 볼 수 없고 행복해서 재잘거리는 모습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많이 부럽고 아프다. 억울하다 외치고 몸부림치고 있는데도, 감춰지고 묻혀버릴까 봐 무서워서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의 구술기록집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발간 기자회견에 나온 신지현이 눈물을 흘리며 한 말이다.
외국인보호소에 갇힌 ‘비국민’은 “갇혀 있으니 죽은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들은 한 끼 1835원짜리 밥을 먹는다. 재활용품 선별 노동자들은 유리 조각에 손이 베이거나 주삿바늘에 찔리곤 하지만 찔림·베임 방지 장갑은 받지 못한 채 반코팅 목장갑을 끼고 일한다. “독한 오물 냄새”에 몸이 찌들기도 한다. 쿠팡 택배 노동자 강민욱은 “쿠팡을 사용하는 1600만 국민께는 희생과 죽음이 전제되는 배송을 용납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한강에게 포니정 혁신상을 준 포니정재단 출연자 중 하나인 HDC현대산업개발은 2021~2024년 상반기 산재 사망자가 17명이 나와 20대 건설사 중 가장 많았다는 사실도 이번 국감 자료로 나왔다.
한국 사회는 고통을 제대로 응시하지 않는다. 한강 생가를 매입한다느니, 제2의 한강을 육성한다느니 하는 일로 떠들썩하다. 자본은 노동자들의 죽음을 ‘부수적 피해’로 여기고, 정치는 이 문제를 대의하지 않는다. 정인섭이 기쁨의 미소를 짓던 지난 15일 국감장엔 쿠팡 노동자도 나왔으나 증인석에 서지 못했다. “불법파견이 인정됐지만 여전히 싸워야 하는 현대제철 노동자, 초과근무 수당 감축을 강요받는 해양수산부 청원경찰, 밀린 임금을 돌려받지 못한 삼부토건 노동자” 문제들도 국회는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여야 정치권력은 유독 자본의 착취가 초래한 죽음과 고통, 비극에 관대하다. 야권에선 몇몇 의원이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 정면으로, 전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시늉’이고, ‘워싱’이다. 이런 죽음과 죽어감의 문제에서 여야는 늘 ‘대연정’을 이룬다. 와중에 한편에선 “김건희 여사가 살이 많이 빠지고, 거의 누워만 있다고 들었다” 같은 ‘권력자의 고통’을 전파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고통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엇일까. “한강의 책을 읽으면, 나는 고통스럽게 달라진 사람이 된다.” 번역가 김명남이 가디언지에 실린 한강의 작품에 대한 외국 독자 반응 중 주목한 말이다. 고통을 동반하는 응시가 나눔과 저항의 힘과도 이어지리라는 걸 영국 작가 존 버거(1926~2017)의 글에서 확인한다.
“신세계 질서 아래 암흑기에 고통을 나누는 일은 존엄과 희망을 재발견하는 핵심 전제가 된다. 대부분의 고통은 나눌 수 없다. 그 고통을 나누려는 의지는 나눌 수 있다.”(<초상들> 중에서) 존 버거는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의 고통스러운 삶과 작품을 다룬 글에서 이렇게 썼다.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에서 실종된 동지들을 잃은 이들과 고통을 나누는 일에 관해 쓴 후안 헬만(1930~2014)의 시도 연결했다. 버거는 이어 “불가피하게도 불충분하나 그 의지를 나누는 데서 저항이 나온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