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서 지정한 마약 치료보호기관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단약을 유지해서 음성 확인이 나왔는데도 재판에서 양형에 전혀 반영이 안 되더라고요. 병원 주치의가 그러시더라고요. 치료받는 애들은 계속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하는데 구속해서 치료를 중단시킬 거면 왜 치료보호기관 지정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마약 투약으로 얼마 전까지 재판을 받은 회복자 A씨가 말했다. 마약 투약자들을 중독에서 빠져나오게 하려면 치료·재활이 절실한데, 한국 여러 기관은 처벌 위주로 접근하는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다른 20~30대 회복 당사자들 반응도 비슷했다.
“병원에서 ‘마약을 했다’고 말하는 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찰이 제가 치료 중인 병원에 영장을 들고 와서 진료기록을 요구했고, 결국 수사 끝에 재판을 받았어요. 병원도 안전하지 않았어요.”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했는데, 검찰 측에서는 실형 선고를 끝까지 주장하면서 항소를 했습니다.”
정부는 최근 들어 중독 재활·치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기치 아래 단순 마약 투약범까지 체포·엄벌 위주로 접근했다. 재활 정책이 제대로 정착·운영되기 위해 필수적인 인적·물적 인프라는 여전히 태부족이다.
경향신문은 앞서 미국·일본의 회복 지원 체계를 둘러봤다. 두 국가는 오랜 시간 마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재활을 지원하는 탄탄한 체계를 구축했다. 한국도 제대로 된 회복 체계를 마련해야 할 때다. 중독자들에게 치료와 재활 의지를 심어주고, 그들이 의지를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어떤 과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살펴봤다.
마약 정책 부처 통합관리 여전히 ‘절실’
정부에서 마약 관련 정책을 집행하는 주요 부처는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법무부다. 중독 치료는 복지부가, 재활은 식약처가 담당한다. 법무부는 보호관찰과 약물 관련 수강 명령을 집행한다. 정부는 부처별로 분산된 기능을 총괄하려고 국무조정실 산하에 마약류대책협의회를 설치했다. 복지부·식약처·법무부뿐 아니라 경찰청·대검찰청·국가정보원까지 13개 관계부처가 참여한다. 이 협의회는 1990년대에 처음 조직했는데 설치·운영에 관한 법적 근거는 지난해 7월에야 마련했다.
마약류대책협의회는 마약 관련 정책을 효율적으로 총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마약 치료·재활을 담당하는 현장에선 각 기관이 치료·재활 정책을 따로따로 내놓으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예를 들어 식약처는 올해 17개 시도에 데이케어 재활시설 ‘함께한걸음센터’를 개설했다. 복지부도 전국에 기초정신건강복지센터,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등 재활 인프라를 만들어 운영 중이다.
마약류대책협의회가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식약처의 새 재활시설에 들어간 재원을 좀 더 효율적으로 배분했으리라는 의견이 나온다. 백형의 을지대 중독재활복지학과 교수는 “복지부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에서도 마약 중독을 취급하지만 마약 때문에 센터에 오는 이용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새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약 문제를 먼저 겪은 다른 국가들은 마약 중독 문제 전담 부처를 따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국가들은 대체로 중독 문제를 보건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보건당국 산하에 통합관리 조직을 편제한다. 미국은 보건복지부 산하 약물남용 및 정신건강서비스 관리국(SAMHSA)이 마약 중독 치료·재활을, 국립약물남용연구소(NIDA)가 관련 연구를 총괄한다. 기초지방자치단체인 각 카운티도 공공보건국에 전담 부서를 두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카운티 공공보건국 산하 행동건강서비스(BHS) 부서는 법원과 협업해 사법과 재활을 연계한다. 포르투갈·스위스·네덜란드 등도 이런 형태로 총괄 조직을 운영한다.
싱가포르는 내무부 산하 중앙마약청(CNB)이 마약 관련 정책을 총괄한다. 한국의 마약류대책협의회가 이를 참고했는데, CNB는 치료·재활·수사 등 여러 기능이 유기적으로 작동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 교수는 “부처 간 조정이 잘되지 않는 건 결국 자원의 낭비”라며 “협력을 현재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마약, 질병이긴 한가요···현장에선 “병원 300곳 있어도 힘들다”
마약 중독은 치료로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 지는 한참 됐다. 지난 4월 기준 복지부가 지정한 마약 치료보호기관은 전국에 31곳이 있다. 지난해까지는 25곳이었는데 올해 6곳을 추가 지정했다. 치료 수요가 일부에 쏠리는 문제가 여전히 있다. 지난해에는 마약 치료보호기관으로 지정되고도 1년 동안 관련 치료 실적이 1건도 없는 기관도 여러 곳이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3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치료보호기관 치료 실적의 86.4%는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 단 2곳이 소화했다. 각각 461명과 93명을 치료했다. 나머지 병원들은 입원은 받지 않겠다고 하거나 ‘인천참사랑병원 또는 국립부곡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하는 곳이 많다.
지난해 마약 치료보호기관 가운데 치료 실적이 있는 곳은 25곳 중 10곳이다. 60%에 해당하는 15곳은 치료 실적이 전혀 없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현황을 묻는 말에 “치료를 최대한 독려하고 있지만 실적을 취합하지는 못한 상태”라며 “마약류 권역 치료보호기관을 9곳 지정한 이후로 실적이 확대되고는 있다”고 말했다.
상당수 병원이 마약류 중독자 치료보호기관으로 지정됐는데도 치료 기록이 미미한 것은 병원들의 경험 부족, 치료비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마약류 치료보호기관 중독 치료비 지원은 정부와 지자체가 나눠서 부담해 왔다. 이 경우 지자체의 예산에 따라 보상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관련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지정 치료보호기관에서도 마약 중독 치료에 국민건강보험공단 재정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민간 의료기관에도 중독치료 수가체계 보완 등 지원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복지부가 치료보호기관 지정을 대대적으로 홍보한 이후 치료 일선에서 변화를 체감하는지를 묻는 말에 “특정 병원 쏠림이 해소되지 않았고, 민간 의료기관에서는 마약 환자를 치료할수록 손해인 구조도 여전하다”며 “민간 의료기관에 수가 체계 개편 같은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지정 병원을 30개가 아니라 300곳을 만들어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 인력·인프라 확보 절실···“인력 양성, 내실 있게 가야”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마약류 사범 2만7611명이 검거됐다. 마약류 관련 암수범죄율이 최대 30배에 육박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적용하면 마약류 사용자는 60만명으로 추산된다. 반면 통계청이 집계한 마약류 중독 진료 현황을 보면 2023년 마약 중독 치료를 받은 환자 수는 6599명에 불과하다.
마약 중독 치료·재활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선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 식약처가 지난 3월 운영을 시작한 마약류 상담 콜센터 ‘용기한걸음센터’는 지난 9월까지 전화상담 실적이 3017건으로 집계됐다. 월평균 431건 수준이다. 지난해 검거된 마약류 사범이 월평균 2300명인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실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용기한걸음센터가 연계하는 데이케어 재활센터 ‘함께한걸음센터’는 전국 17곳에 92명이 근무한다. 센터당 평균 5.4명이다. 인력 확보가 절실하다.
특히 재활 정책이 효과를 보려면 무엇보다 중독자들이 함께 자고 먹고 생활하는 숙식형 재활시설이 필요하다. 실제로 재활 성공률은 외래 형태에 비해 공동체 방식일 때 더 높다. 식약처도 데이케어 형태의 운영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문제의식은 갖고 있다.
숙식형 재활시설을 만들고 꾸려가려면 넘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식약처 관계자는 “숙식형 한걸음센터는 각 지자체와 위치 협의를 해야 하고 직영 혹은 위탁 등 구체적 운영 방식까지 결정할 것이 많다”며 “내후년쯤에야 개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생활형 재활시설 추진 의사는 있지만 구체적인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생활형 재활시설은 위탁 형태로 운영하는 방안을 구상 중인데, 마땅한 운영 기관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김선민 원광디지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공에서 재활시설을 관리해줄 민간센터들을 여러 곳 접촉해도, 축적된 노하우가 없으니 엄두를 못 내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마약 중독 재활시설이 혐오시설로 인식되는 탓에 마땅한 입지를 구하기도 매우 어렵다.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시설 확충 못지않은 문제다. 식약처는 올해 ‘마약류 예방·재활 전문 인력 인증제’를 도입해 지난달 26일 첫 시험을 실시했다. 연말에 300명을 선발한다. 식약처 관계자는 “예방교육강사 200명, 재활상담사 100명을 모집하고, 각각 110차·140차시 교육을 이수했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이 인력이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는 연구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