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한 정부 지원책에는 여러 문제가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피해자들이 떼먹힌 보증금에 대한 회수 대책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되묻습니다. 개인이 사기 피해를 본 것까지 국가가 일일이 보상해줘야 하냐고요. 사실 저 역시도 심 기자와 대화를 나누기 전까지는 그런 의견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현관문만 빼고 다 은행 거야’라는 오래된 농담부터 신조어 ‘영끌’까지, 큰 빚을 지고 집을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잖아요. 심지어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집을 사고 전세 세입자를 들일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졌고요.” 심 기자는 전세사기가 “구조적 실패이자, 사회적 재난”이라고 강조합니다. 지금껏 갭투기를 비롯해 빚으로 집을 사는 위험한 도박이 계속될 수 있었던 건, 이 도박에서 얻을 것이 없는 전세 세입자들이 위험 부담을 대신 끌어안은 덕분입니다. 전세사기는 보이지 않는 ‘부담’이었던 위험이 눈에 보이는 ‘현실’이 된 것에 불과하죠. “전세가가 매매가를 웃도는 상황에 대한 경고만 명확했어도 피해는 최소화되었겠지만, 방관과 방치만이 지속되었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의 말처럼 국가는 엉뚱한 사람들이 투기 위험을 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관했어요. 이제는 국가가 그 방관의 책임을 질 시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국가는 여전히 피해자를 돕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국토교통부는 이 기사가 나온 뒤 “임대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도 대출 연장이 가능하다”는 설명 자료를 냈는데요. 시시각각 달라지는 피해자들의 복잡한 현실과는 유리된 이야깁니다. A씨의 경우 집이 이미 경매에 넘어간 상황이었고, 집주인과 연락까지 닿지 않자 은행은 대출 연장을 거부했어요. 누구도 손 내밀지 않는 벼랑, A씨가 마지막까지 서있던 자리입니다. 어쩌면 국가와 사회는 이 벼랑을 그저 이슈로만 소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 기자는 최근 정치권에서 전세사기 관련 토론회가 우후죽순 열리고 있다고 말했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당장의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에게 “이 자리가 논의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라는 둥 한가한 말만 던지고 사라지는 정치인들의 뒷모습을 잊지 못하겠다면서요. 무서워요. 이 폭풍이 지나고 난 뒤에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까봐, 더 무섭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