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Lite] 🕌 400억 아파트 광고가 일깨운 것

2023.06.13

6분

부동산 아파트 차별 특권 리처드세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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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오두막이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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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뉴스레터

2023.06.13. 화요일

독자님, 안녕하세요. 요즘 하루가 다르게 공기가 점점 습해진다는 걸 느껴요. 저는 이번 주 큐레이터 허남설 기자입니다.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한 지점을 파고드는 기사를 좋아해요.

얼마 전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충격적인 아파트 광고 문구, 독자님도 보셨죠? 결국 이 문구를 내건 아파트 '더 팰리스 73'의 시행사가 사과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되었어요.

하지만 이후에도 씁쓸함이 남았습니다. 광고의 의도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정확하게 적중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또 그 광고는 늦어도 3일 오후부터 온라인상에서 논란을 일으켰는데, 사과문은 사흘 지나고 6일에야 나왔어요. 이미 쏠쏠한 홍보 효과를 거둘 대로 거둔 다음이죠. 나중에 이 일이 기억에서 잊힐 때쯤, '더 팰리스 73' 분양 경쟁률이 아주 치열했다는 뉴스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도시에 살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로 구별 짓고 영역을 나누려고 애씁니다. 그렇게 끊임없이 애쓰다 보면 정말 차이와 이질감이 없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칼럼을 소개합니다. 기사는 2분 분량이에요.

☑️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분양 광고에 특권의식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는 문구가 담겨 논란이 일었다.

☑️ 도시화는 늘 이질적인 타자를 상정하고, 그들로부터 달아나거나 그들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됐다.

☑️ 하지만 과거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는 그들을 고립시키고자 했던 의도와 달리 열린 사회를 탄생시켰다.

닫힌 도시와 열린 도시

2023. 06. 10. 채석진 조선대 신문방송학과 조교수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분양 광고 문구이다. 이 문구는 특권의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든 안 하든,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혹은 자신이 속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자 한다. 따라서 도시화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사람들이 마주하고 섞이는 과정이자, 이 속에서 동질적인 공간을 구축하려고 끊임없이 분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리처드 세넷은 <짓기와 거주하기-도시를 위한 윤리>에서 이러한 도시화의 양면성을 세밀하게 그린다. 세넷은 우리가 “그들로부터 달아나거나, 그들을 고립시키는” 방식으로, 이질적인 타자를 기피해왔다고 말한다. 하이데거가 유대인을 피해 산골짜기에 지은 오두막이 전자의 예라면,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는 후자의 예다.

세넷의 도시 읽기가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분리가 도시 설계자의 의도와 전혀 다른 효과를 가져오는 복잡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베네치아의 유대인 게토에 대한 그의 설명을 살펴보자.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 당국은 기독교도만 도시에 수용하고 유대인 이주민을 배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도시에서 기독교도들이 꺼리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로, 도시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베네치아 당국은 특이한 도시 속의 섬으로 유대인 게토를 지었다. 이 게토는 운하로 둘러싸여 두 개의 다리로만 도시의 나머지 부분과 연결됐다. 아침에 다리가 열리면 유대인은 도시로 나가 활동하고 기독교도는 게토로 들어가 필요한 업무를 봤다. 저녁엔 각자의 거주지로 돌아가고 다리가 올라간다. 밤엔 불빛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게토 내의 바깥을 향한 모든 문과 창문을 닫게 하여, 유대인의 존재가 도시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도록 했다.

이러한 조치는 의도치 않은 효과들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게토는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안전하게 모여 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유대인들은 소규모로 흩어져 사는 방식으로 자신을 감추며 박해로부터 스스로 보호해왔다. 베네치아 당국이 게토 연결 다리에 세운 24시간 경비는 과격한 집단의 공격으로부터 유대인을 보호해줬다. 또한 게토 내에 거주하는 조건으로 유대교회당 설립이 허락되었다. 밤 시간은 게토 밖에서는 유대인이 사라지는 시간이지만, 게토 내에서는 교회당에서 성경 공부를 하며 유대인으로 거듭나는 시간이었다.

세넷이 주목하는 또 다른 주요한 효과는 다양한 민족 출신의 유대인들이 언어도 다르고, 공통의 문화도 없는 상태에서 함께 거주하도록 강요된 상황에서 같이 사는 방법을 배워나간 점이다. 세넷에 따르면, 이질적인 유대인 집단들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을 발전시키며 ‘이웃 관계’를 구성했다.

강남의 고급 아파트는 하이데거의 오두막을 연상시킨다. 하이데거는 도시 공간에 섞여 있는 유대인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했다. 그가 추구했던 평화로운 삶은 동질적 사람들끼리 구성하는 것으로, 이질적 타자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를 담고 있다. 앞서 언급한 강남 아파트 광고 문구가 불편함을 주는 이유는 다른 집단에 대한 배제와 혐오를 깔고 있어서다.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가 유대인 없이 돌아가지 못했듯, 현대 고급 아파트촌의 분리된 삶은 이들이 배제하고자 하는 사람들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스마트 시티는 이러한 모순을 기술적 장치로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열린 도시는 산골짜기 오두막이나 스마트 시티의 ‘편리하고 단순한’ 삶 속이 아니라, 공통의 기반이 없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불편하고 복잡한’ 삶들 속에 잠재해 있다. 이미 현실에서 구성되고 있는 열린 도시를 위한 윤리적 실천들을 읽어내는 작업이 절실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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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팰리스 73' 광고는 분명하게 암시하는 바가 있습니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문구 위에 삽입된 이미지는 이 고급 아파트가 마치 허공에 떠 주변 도시와 아무 상관 없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혼잡한 도시에서 타자와 분리되어 홀로 고고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암시하는 거죠. 아파트 시행사는 이 암시에 이끌릴 사람들을 광고의 타깃으로 생각했을 거예요.

그 타깃에서 과연 저는 자유로울까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분리의 욕구가 이렇게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아파트에서만 작동하는 건 아닌 듯해요. 사실 울타리 안에서 입주민만 공유하는 정원, 놀이터, 카페, 피트니스 센터, 경로당을 만드는 아파트 단지는 모두 이런 분리 욕구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그런 주거 방식에 익숙하고, 또 그런 주거를 지향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어쩌면 '더 팰리스 73'의 광고 문구에 대한 적절한 수위의 비판은 '지나치게 솔직했다'가 될지도 모릅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분리 욕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무의식중에 분리 욕구가 발동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분명히 있습니다. 칼럼 필자가 지적한 것처럼 "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가 유대인 없이 돌아가지 못했듯, 현대 고급 아파트촌의 분리된 삶은 이들이 배제하고자 하는 사람들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말입니다.

아무리 아파트 단지가 입주민의 사적 소유라고 해도, 근처 다른 단지에 사는 아이들이 통학로로 쓰는 단지 내 길을 아예 막아도 되는 걸까요? 모든 단지가 너도나도 이런 식으로 대처하면 도시의 기능 자체가 마비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강제로 경험한 게토에서 깨달은 것처럼, 서로 넘지 않아야 할 선을 유지해야 우리가 사는 도시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단지의 울타리를 허물어 서로에게 필요한 공간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선을 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근본적인 의문도 듭니다. 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 끊임없이 분리된 공간을 추구하는 걸까요? 아무리 나누고 벗어나려고 해도 복잡한 도시에서 사는 한 완벽하게 '멸균'된 세상은 오지 않을 텐데요. 우리는 아무래도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너무 큰 사회에 사는 것 같습니다. 독자님은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시리아 난민 출신 시장의 멘토

지난 4월, 독일의 소도시 오스텔하임 시장에 시리아 난민 출신 29세 청년이 당선됐습니다. 그는 당선 후 여러 언론과 인터뷰하며 독일 정착부터 시장 당선까지 삶을 술회했습니다. 그 과정에는 독일어조차 낯선 이 청년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그는 적극적으로 공동체에 편입시키려 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현대판 '불가촉천민'의 고용주

신간 <더티 워크>는 더럽고 비도덕적이지만, 누군가는 맡아야 하기에 가장 가난하고 취약한 계층에게 전가됐던 노동에 관한 르포입니다. 정신병동 교도관, 드론 전투원, 도살 노동자 등 '더티 워크'는 엄연히 공동체의 산물이지만, 그 공동체는 그 일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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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의 이야기

📬 "가해자 신상공개 등 사적 제재에 대한 논의를 다뤄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사법부에 대한 신뢰 붕괴 문제나, 가해자 신상공개하면 피해자의 아픔이 정말 해소될 것인가? 피해자가 그것을 원했다면 피해자는 왜 가해자의 신상 공개를 원하는가? 사법부를 비롯한 행정부 등 국가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는가? 등에 대한 의문을 다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백 님)

📝 "점선면팀이 내일(6월 14일)자 레터로 준비 중이에요🙂 메일함 꼭 확인해 주실 거죠? 잠깐 여유가 있는 독자님께는 이 주제에 관한 의견 남기기도 부탁드려요! 점선면에 반영합니다."

📬 "지역의사제를 반대하고 파업까지 갔던 이유는 단순히 ‘의사 과잉이 발생할 것이다’가 아니라 정부가 상황의 심각함을 자기들의 인기몰이에 이용하려고만 할 뿐 제대로 고민하고 토론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전 정부는 의사협회 등에서 요구한 토론에도 협의할 자리에도 전혀 참석하지 않고 무시로 일관하면서 진정성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그게 파업의 원인이기도 했어요. 그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자리에 나와서 함께 상황의 심각함을 인지하고 꼬인 매듭을 조금씩 풀어나갈 마음이 있다면, 그리고 미래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더 큰 계획을 이후의 정부까지도 계속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큰 로드맵을 만들 생각이 있다면 왜 의료계가 반대하겠어요?

그리고 의사들은 집단의 의견에 동조하기보다는 개개인의 생각이 많은 매우 개인적인 집단이에요. 그러니 아마 제대로 이 의료계의 상황을 알려면 수많은 의사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거예요. 듣고 생각하는 걸 포기하고 그저 ‘의사는 나쁘고 악이다’라는 식으로 몰아가지 말아 주세요." (익명의 독자님)

📝 "지난 6월 7일 점선면 <그럼 의사들은 어떻게 하자는 걸까?>편에 한 독자님이 닉네임을 남기지 않고 보내주신 의견이에요. 2020년 여름 정부가 '지역의사제'를 추진할 당시 상황에 대한 의료계의 시각을 전해주신 것 같습니다. 많은 독자님께서 이 주제에 관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또 다뤄보고자 합니다. 앞으로도 다양한 의견 많이 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