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구매할 때 결제를 다음달로 미룰 수 있는 소액 후불결제(BNPL·Buy Now Pay Later) 시장이 확대되면서 해당 서비스 이용자들의 연체율이 상승하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후불결제 서비스는 금융 이력이 부족한 사회초년생, 주부 등을 포용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고물가와 경기둔화 등의 영향으로 후불결제 이용자의 상환 여력이 감소하면서, 이용자는 연체에 빠지고 사업자는 건전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위해 후불결제업과 관련한 규제를 강화하고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신용카드 없는 취약층 위한 제도
네이버·카카오페이·토스서 출시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소액 후불결제는 정부가 디지털 신사업의 하나로 2021년 2월 도입했다. 금융 이력이 부족해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는 사회초년생, 주부 등 금융소외계층도 신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자는 취지였다.
정부는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은 기업에 대해 여신전문금융업법상 신용카드업 허가를 받지 않고도 후불결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특례를 부여하고 있다. 후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요 업체로는 네이버파이낸셜(네이버페이)과 비바리퍼블리카(토스), 카카오페이 등이 있다.
후불결제는 말 그대로 물건은 지금 사되 값은 나중에 치를 수 있는 서비스다. 일종의 외상이다. 후불결제 업체가 가맹점에 상품 대금을 먼저 지급하고, 이용자는 정해진 날짜에 해당 금액을 후불결제 업체에 내는 방식이다. 카드거래와 유사해 신용카드가 없는 사람에게 유용하다.
네이버페이와 토스는 소비자가 선불 충전금으로 물건을 살 때 충전 잔액과 상품 가격 간의 차익을 나중에 갚을 수 있도록 했다. 소비자는 1인당 월 30만원 이내에서 후불결제를 사용할 수 있다. 카카오페이는 후불형 교통카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교통카드 충전금이 부족할 때 월 15만원 이내에서 후불결제를 활용할 수 있다.
2분기 연체율 토스 7%·네이버 2%
은행 평균 0.4% 비교하면 매우 높아
문제는 빚 갚을 여력이 없는 이용자들이 후불결제를 이용했다가 결국 연체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토스·네이버페이·카카오페이의 2분기 말 후불결제 누적 가입자 수는 총 302만명으로, 전 분기 대비 13.4% 증가했다.
토스의 지난 2분기 말 연체율은 7.76%, 네이버페이는 2.50%, 카카오페이는 0.54%로 집계됐다. 지난 5월 말 국내 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평균 0.40%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다. 지난 1분기 말과 비교하면 네이버페이 연체율은 0.2%포인트 하락했지만 토스는 2.76%포인트, 카카오페이는 0.03%포인트 상승했다.
연체율이 7%를 돌파한 토스는 연체 채권액 규모도 3사 중 가장 컸다. 연체 채권액이 지난 1분기 말 15억9800만원에서 2분기 말 17억1700만원으로 불었다. 네이버페이는 같은 기간 3억3900만원에서 2억9900만원으로 감소했고, 카카오페이는 90만원에서 130만원으로 증가했다. 카카오페이는 후불결제가 교통카드 기능에 한정돼 있어 연체 채권 규모가 작은 것으로 보인다.
20대 사회초년생이 후불결제의 주 이용층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후불결제 연체율 상승은 청년층의 부채 증가 문제와 직결된다. 20대의 은행권 주택담보(전·월세) 대출 연체율이 지난해 2분기 말 0.19%에서 올해 2분기 말 0.41%로 뛰는 등 빚을 제때 갚지 못하는 청년이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최승재 의원은 “20대 이하의 은행 연체율이 급등하고, 소액생계비대출 등 정책상품에서도 20대 청년층의 이자 미납률이 증가하고 있다”며 “후불결제의 취지가 청년층, 주부 등을 대상으로 한 포용금융이라 하더라도 금융당국은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혁신금융 사업으로 관련 규제 예외
해외선 신용카드업 수준으로 적용
연체율 상승은 후불결제 업체의 건전성 관리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후불결제가 금융규제 샌드박스에 해당하는 사업이라 해당 업체는 여전업법상 규제를 받지 않는다.
업체 간에 후불결제 연체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법령상 제한돼 있어, 이용자가 한 업체에서 연체해도 다른 업체는 이를 알 수 없다. 업체 관계자는 “대안신용평가모형을 사용해 이용자의 금융·비금융 이력 등을 검토한 뒤 후불결제 한도액을 정하는 등 연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하지만 후불결제 연체 정보가 공유되지 않아 건전성 관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후불결제 서비스를 먼저 도입한 미국·일본·호주·싱가포르 등에서도 이용자들의 연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미국 금융소비자보호국은 지난해 9월 보고서를 내고 “후불결제가 과소비를 유발하고 기존 금융시장과 비교해 정보 공개가 불균등하며 소비자 보호가 취약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호주는 후불결제 이용자의 연체가 증가하는 상황을 우려해 후불결제 업체를 신용카드업과 같은 수준으로 규제하기로 했다. 또 싱가포르는 이용자가 대금 결제 기한을 지키지 않으면 계좌를 정지시키는 등 건전한 이용을 유도하려는 조치를 시행 중이다.
고은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세계적으로 후불결제 서비스의 잠재적인 위험을 우려해 신용카드업법 수준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며 “국내 금융당국은 해외 규제 조항을 검토해 금융소비자를 보호하고 금융시스템 안정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구체적인 세부사항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경희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도 “빅테크 업체들을 중심으로 후불결제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만큼 합리적인 규제 체계를 수립하는 게 필요하다”며 “후불결제 서비스가 발전·확대할 가능성과 경제주체의 실생활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