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노동은 혁신의 얼굴을 하고 등장했습니다. 원하는 때와 장소에서 필요한 만큼 일하고 쉴 수 있는 '첨단 노동'일 줄 알았지만 실상은 이와 달랐습니다. 일단 플랫폼 일을 부업이 아닌 전업으로 하는 배달원들이 많습니다. 2022년을 기준으로 플랫폼 종사자 중 57.7%가 해당 일을 주업으로 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지난해 실태조사에 따르면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는 배달원들은 평균적으로 1주일에 5.7일, 총 54시간 일하고 한 달에 284만원을 벌었어요. 무엇보다 플랫폼 업체들이 노동의 상당 부분을 통제합니다. 배달원들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정도, 플랫폼으로부터 실질적으로 통제받는 정도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플랫폼에서 일감을 받는 배달원의 71%가 자신의 업무를 '임금 근로'로 인식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자율성이 높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마치 회사에 고용된 상태처럼 사용자의 존재를 느끼고 있다는 거예요. 종합하면 생계를 위해 플랫폼 배달 일을 하는 이들은 평균적으로 이 일을 전업으로 삼으면서, 1주일에 52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200만원대 후반의 돈을 벌고 있으며, 자신이 개인사업자가 아닌 회사원인 것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결국 실상은 임금 노동자에 가까운데 노동법(근로기준법)상 지위는 개인사업자인 겁니다. 마치 유급휴가·출산휴가·육아휴직 등을 쓸 수 없고 영업 상황에 따라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만두면 실업급여를 받기도 어려운 '안 좋은 회사'에 다니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 거죠. EU가 플랫폼 배달원들을 노동자로 간주하고자 한 데도 이 같은 배경이 있습니다. EU는 2020년부터 플랫폼 노동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플랫폼 노동자가 일반 노동자의 속성을 띠게 된 현실을 파악하고, 이들이 스스로 노동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논의했습니다. 프랑스 법원은 '유럽의 배민' 딜리버루가 배달원을 노동자처럼 쓰면서도 프리랜서로 간주한 것이 노동법에 어긋난다며 벌금형을 선고했고, 스페인은 2021년 5월 배달 라이더를 노동법상 노동자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어요. 한국에서도 배달 라이더를 노동자라고 판단한 법원과 노동위원회 판단이 나오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아직 희귀한 몇 건의 승리에 불과해요. 이들이 노동자로서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 법으로 인정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플랫폼 배달원들은 일방적 배달료 삭감, 부당한 계약 해지 등 피해를 겪어도 '나를 노동자로 봐 달라'는 지점부터 일일이 싸워야 합니다. '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자'를 사용자로 규정합니다. 플랫폼 종사자도 노동자로 볼 수 있는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폐기됐죠. 22대 국회에서는 통과될 수 있을까요? 두고 볼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