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정량평가라고 다 안 좋은 지표는 아닙니다. 정량지표를 잘 만들면 되니까요. 법안 발의 건수만 보면 여러 가지를 놓칠 수 있으니 실제 처리된 건수와 발의 건수 대비 통과 건수를 함께 보는 것처럼요. 그런데 그 지표에서마저도 그림자가 보인다는 겁니다.
정량지표만 보다 보면 우스운 결과가 나오기도 합니다. 정치인들은 상을 몇 건 받았는지도 홍보하곤 하는데요. 지난 1월 기준으로 서울시의원 110명이 의정활동 명목으로 받은 수상 내역을 집계해 보니 100명이 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10명 중 9명은 의정활동 상을 받았다는
웃긴 결과가 나온 거죠. 그래서 정량지표만 보는 건 결과적으로 게으른 평가이기도 합니다.
국회에서의 입법 활동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에 정량적 방식으로만 평가해서는 안되겠죠. 그런데 21대 국회가 끝나가는 지금 '발의'보다는 '발언'으로 기억되는 정치인들이 더 많다고 느껴집니다. 입법 실적을 피상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결국 국회의 본령인 입법을 곁다리로 밀어내는 건 아닌지 걱정되고요.
국회에서 1년 반 가까이 정치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내내 답답했습니다. '입법'이 이곳의 1순위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요.
꼭 필요한 민생 법안이 있다고 합시다. 법안이 통과되려면 소관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가 열려야 하고,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소위원회와 전체회의도 넘어야 합니다. 그다음엔 본회의가 기다리고 있고요.
그런데 상임위 단계부터 툭하면 회의 개최가 정쟁에 발목을 잡힙니다. 정쟁은 대개 말의 전쟁이죠. 정부·여당이 야당을, 혹은 야당이 정부·여당을 공격합니다. 상대가 반발하고, 재반박하고, 또 몇 차례 공격이 오가요. 출구가 생기기 전까지 계속 대치합니다. 그리고 그 출구를 찾을 공간은 나날이 협소해지는 중이죠. 서로가 서로를 점점 악마화하니까요. 22대 국회도 '강 대 강' 대치가
예고되어 있습니다.
정치란 서로 갈리는 이해관계를 옥신각신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한정된 자원을 배분하는 작업이기에 대립은 반드시 일어나죠. 조율이 아름답게 이뤄질 때의 짜릿함이란 것도 있고요. 모든 정치적 대립을 무용한 정쟁이라 일축하며 눈을 흘기는 것이라고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적 대립의 궁극적 목적이 결국 '법안'이라는 것이 국회 안에서도 밖에서도 자주 잊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싸우다가 상임위도, 법사위도, 본회의도 못 열고 마는 것이겠죠. 당장 21대 국회가 역대 가장 저조한 입법 실적을 보인 국회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정쟁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잡아먹히고 있어요. 수없이 쏟아지는 정치 기사도 상당수가 정쟁을 다룹니다. 정치부 기자를 하면 이 과정에서 진한 '현타'를 맞지만, 경기장에 마주 앉은 성난 군중 같은 독자들이 주는 당장의 클릭수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또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아예 한쪽 당이 비대칭적 힘을 갖기를 바라는 이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게으르고 피상적인 '입법 정량평가'는 이 모든 답답함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지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저희 회사 높으신 분들이 이 레터를 본다면 정치부 기자의 출입처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쳐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보고 싶네요. 출입처를 당별로 정하다 보니, 정쟁 상황에서는 각 정당의 입장과 논리를 학습하고 재생산하는 기사가 나온다고 느꼈거든요. 야당 출입기자는 야당의, 여당 출입기자는 여당의 논리를 주로 마주하다 보니 그렇게 되곤 해요. 여당의 상임위원회별 출입 제도로 바꾸는 실험을 해 보고 싶습니다. 복지에 관심이 많다면 보건복지위원회에, 노동이나 환경에 관심이 많다면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입하면서 법안들을 취재하는 거죠. 정쟁이 벌어지더라도, 이를 법안 처리의 관점에서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결국, 모든 정쟁은 입법을 위한 것이라는 걸 잊지 말자고 외치고 싶어서 해보는 말이었습니다. 22대 국회의 입법을 평가할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까요? 같이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