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선면

[Lite] 🩺 의사가 친절하면 좋겠어

2024.06.03

6분

의대증원 의사파업 촛불집회 의사협회 이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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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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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이 촛불을 들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5월30일 '대한민국 정부 한국의료 사망선고' 촛불집회를 열었어요. 이날 정부는 의과대학 정원을 1497명 늘린 내년도 대입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의사들은 촛불을 들고 '한국 의료는 죽었다'며 애도사를 낭독했어요.

그런데, 의사들은 무엇을 애도한 걸까요? 2007년부터 한 번도 변하지 않은 의대 정원 3058명이란 '기득권'이 죽은 건 확실히 알 것 같습니다. 의사들이 슬로건에서 말하듯 정녕 한국 의료를 애도하고 싶었다면, '응급실 뺑뺑이'나 '소아과 오픈런'이 시작될 때 촛불을 들어야 했습니다. 칼럼 한 편 읽고 대화 이어갈게요.

나도 주치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2024. 5. 23. 이희경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 대표

어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관절 전문병원'부터 갔다. 특정 자세를 취할 때 통증이 온다고 하자 의사는 MRI를 찍으라고 했다. 비싸서 좀 망설였지만 찍었다. 진단은 회전근개파열이었다. 의사는 수술해야 한다면서 다짜고짜 수술 일정을 잡고 가라고 했다. '회전근개'라는 단어도 처음 듣는 나에게 병의 원인 혹은 수술 이외의 치료 방법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채로 집에 돌아온 나는 '회전근개파열'을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온라인상의 산더미 같은 정보 속에서 갈피를 잡기란 힘들었다. 나는 동네 정형외과에 또 갔다. 그 의사는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면서 비급여 항목인 DNA 주사를 권유했다. 뭔가 개운치 않아서 이번엔 재활의학과를 찾아갔다. 여기서도 수술보다 보존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처방은 초음파를 찍고 도수치료를 받으라는 것이었다.

역시 모두 비급여 항목이다. 나는 결국 대학병원에 갔다. 몇달 기다려서 어렵게 만난 교수는 "회전근개파열 맞고요, 지금은 수술하지 않아도 되고요, 6개월 후에 다시 봅시다. 전공의가 가르쳐주는 밴드 운동 열심히 하세요"라고 짧게 말했다. 그날 의사를 만난 시간은 채 3분이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이 병원, 저 병원으로 의료쇼핑하러 다녀야 했을까? 어깨 조금 찢어진 것을 가지고 왜 대학병원까지 가야 했을까? 3차 의료기관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좋은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병원 순례를 다니고도 왜 나는 '슬기로운 어깨 질환자 일상생활'을 위해 매번 인터넷에 "회전근개 환자 스트레칭을 해도 되나요?" 등을 검색해야 할까? 의대 증원 문제가 의료개혁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최근 상황을 보면서 이런 묵은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서울아산병원, 울산대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대형병원 일부 교수들이 하루 휴진한 지난 5월3일 서울아산병원 앞에서 의사들이 피켓팅을 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쿠바에는 '콘술토리오'라는 마을진료소가 있다. 마치 온몸의 말초신경처럼 동네 구석구석 퍼져 있는 그 1차 진료기관에서는 가족 주치의가 평균 500~700가구를 돌보는데 가난한 나라 쿠바에서는 이런 공공 주치의 제도를 통해 지역사회에 밀착된 예방적 의료실천을 수행한다고 한다. 캐나다에서도 가족 주치의 제도를 운용한다. 감기나 비염, 고혈압, 당뇨 같은 일상적 질환은 동네의 '패닥'(패밀리 닥터)을 통해서 적절한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의료비는 두 나라 모두 거의 무료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십년 전에는 소아과, 내과 등 동네 병원이 일종의 가족 주치의 노릇을 했었다. 엄마들은 큰아이에 이어 작은아이까지도 한 소아과에 계속 데리고 다녔고, 세월만큼 의사와 환자 혹은 보호자 사이에 친밀감과 신뢰감이 쌓였다. 의약분업 전 동네 약국은 사람들이 들러서 수다도 떨고 아프다고 호소도 하는 동네 사랑방이었다. 어떤 병은 털어놓기만 해도, 누군가 잘 들어주기만 해도 낫는다.

공공병원 고작 5.7%, 고사 직전의 지방의료,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피안성, 정재영', 전공의 번아웃, 4000만명이 가입해서 제2의 국민보험이 된 실손보험, 개인 의료비 부담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상위. 누구나 말하는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의료 현실이다. 대안은 공공병원 확충과 1차 의료 개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얼마 전 친구 모임에서는 단초점이냐 다초점이냐가 이슈가 되었다. 백내장 수술 이야기였는데, 단초점의 경우 건강보험으로 가능하지만 다초점 수술은 수백만원이 드는 비급여 항목이라고 했다. 최근 퇴행성 백내장과 황반변성 초기 진단을 받은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제라도 실손보험에 가입해야 할까?

하지만 앞으로는 어깨와 눈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 기관도 점점 망가질 것인데 그때마다 분절적으로 전문의를 찾아가서 맥락 없는 비급여 처방을 받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필요한 것은 실손보험이 아니라 점점 늙어가는 내 몸의 온갖 증세와 징후들을 함께 살펴보고 함께 겪으면서 또 적절한 안내도 해줄 수 있는 동네 병원과 주치의 아닐까? 내 몸과 삶을 통합적으로 계속 지켜봐주는 주치의, 나도 그런 주치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 경향신문 홈페이지에서 기사를 읽으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의사 단체는 줄곧 한국이 '의사 과잉' 상태라면서 "우리나라만큼 의사 만나기 쉬운 나라가 없다"고 주장했어요. 아마 사실일 겁니다. 외국인이 한국 병원을 찾았다가 빠르고 간단한 절차에 감탄하는 모습이 담긴 유튜브 영상이 많더라고요.

하지만, 오늘 칼럼에 나온 이희경 대표의 경험처럼 현실에선 '의료 쇼핑'을 다니며 막막함을 느끼는 경우가 흔하죠. 의사를 만나기는 쉬운데, 이른바 '3분 진료' 체제에서는 의사에게 질문 두어개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의 지위는 이렇게 비대칭적입니다. 환자는 전문가인 의사, 즉 전문의가 의학 지식에 따라 처방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전문가'란 무엇일까요? 이희경 대표가 만난 의사 3명의 말은 모두 다 달랐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겪을법한 일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가 기대한 전문성이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요?

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복잡하고 신비하니까요. 어디서 어떻게 탈이 날지 예상하기 어렵고, 탈이 난 걸 알아도 의사가 권고하는 치료법이 제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의술 역시 다른 기술처럼 완벽하지 않습니다. 불과 20세기 초만 해도 나쁜 피를 빼내 병을 치료한다는 '방혈'이 유행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고요.

지금 우리의 의료 체제는 비교적 쉬운 의료 쇼핑으로 이 의술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습니다. 여러 병원을 쉽게 전전하며 소비자 입장에서 비교·분석하는 거죠. 그 과정에서 판단은 전적으로 소비자인 환자 몫이 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의사를 만나기 쉬운 의료 체제에서 느끼는 불안감과 불만족은 여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희경 대표는 캐나다의 주치의 '패닥(패밀리 닥터)' 이야기를 했습니다. 2020~2023년 캐나다에서의 삶 이야기를 경향신문에 쓴 성우제씨는 그곳에서 경험한 의료 현실을 여러 번 들려줬어요. 20년 넘게 캐나다살이 중인 그는 한국이 의료에서 캐나다를 오래전에 추월했다고 생각합니다.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의료 관광'을 오는 실정이니까요.

그럼에도 성우제씨가 하나 단언하는 건 그곳 의료인들의 '친절함'입니다. 캐나다의 패닥은 병원에 환자의 항의편지가 오면 경위서를 써야 합니다. 오진을 하면 제소되거나 면허가 정지되기도 합니다. '친절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 있는 셈이죠.

당연히 '친절'은 의술이 아닙니다. 다만, 캐나다 병원에서 말하는 친절이란 단순히 상냥한 말투나 표정이 아니라, 누군가 내 몸을 찬찬하고 세심하게 관찰해 주고 있다는 믿음과도 연결되죠. 그런 바탕 위에서야 의사가 권고하는 치료법을 신뢰하고 따를 수 있을 테니까요. 의료 쇼핑에 익숙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렇게 친절한 의사, 친절한 의료시스템이 아닐까요?

캐나다의 친절한 의료시스템 이면엔 1960년대부터 의사 파업 등 오랜 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도 꽤 큰 진통을 겪는 중입니다. 정부는 '의료 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말합니다. 늘어난 의대 정원을 지방에도 고루 분산시키고, '피안성정재영'(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이 아닌 외과 등 필수의료, 예방의·가정의 등 일상의료로 진로를 유도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개혁이 그저 숫자에 그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 1. 우리는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다니는 '의료쇼핑'과 '3분 진료'에 익숙하다. 의사를 만나기는 쉬운데, 그 의사들의 말이 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 2. 의사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오롯이 소비자인 환자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의료에 대한 불만은 상당수 여기에서 비롯된다.

✦ 3. 캐나다의 '패밀리 닥터'처럼 내 몸을 오랫동안 관찰한 의사가 있다면 어떨까? 정부의 '의료개혁'이 의대 정원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다.

대통령의 '개인폰'

윤석열 대통령의 통화 몇 통이 정국을 흔들고 있습니다. 해병대원 사망 사건이 '항명 사건'으로 급변하던 순간에 얽힌 대통령의 통화. 대통령의 개인폰은 그 자체로 문제입니다.

알리·테무를 제쳤다

중국 다녀오면서 이 술 사서 돌아오는 분들 많습니다. 바로 40만원을 호가하는 마오타이주. 이 주류회사의 주가가 '유통 공룡'의 주가를 뛰어넘는다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일본의 '예스키즈존'

"그때 100엔짜리 빵도 못 사먹는 집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20년 넘게 선술집을 운영하다 '어린이식당'을 열게 된 나카지마씨의 이야기. 일본에선 이런 식당이 확산 중입니다.

군인은 두 번 묻힌다?

최근 군에서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잇달아 전해졌습니다. 경향신문은 2022년 군 사망사고 5년치 기록을 분석했습니다. 군이 지목한 사망 원인은 뒤집어지기 일쑤였습니다.

📬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다 보니 김보미 의장의 일을 점선면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정치인들보다 그렇지 않은 정치인들이 많다 보니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이 들고, 그러다 보니 관심을 끊은 거란 걸 깨달았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좋은 정치인의 어려움을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나쏭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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