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장 유치전은 경북 포항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포항시가 지난해 6~9월 추모공원 부지를 공모하자 읍·면 단위 마을 7곳이 신청했어요. 화장장은 분진 등 오염물질과 부정적 이미지 탓에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 시설로 취급받았는데, 지금 어떤 지역에서는 너도나도 당겨오려는 '핌피(PIMFY·Please In My Frontyard)' 시설로 부활했습니다. 화장장 유치전은 '지방도시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공공기관 이전 정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산업단지 역시 '알짜'는 수도권이 다 쟁취하는 현실을 지켜본 지방자치단체들의 눈이 이제 화장장을 향하고 있습니다. 화장장이나마 지역경제에 기여하길 바라면서요. 화장장은 청년은 사라지고 노인만 남은 지역에 필수적인 시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이야 앞다퉈 화장장을 원해도, 나중엔 과연 그 노인들이라도 남아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멀찍이서 보면, 이것은 지방도시가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의 찰나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일본에서는 지방소멸 극복에 실패하고 좌절한 경험이 쌓여가면서 이제 지방의 죽음을 그저 잘 관리하는, '지방 존엄사' 단계에 이르렀다는 어느 지역재생 활동가의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화장장 유치전은 정부의 지방소멸 대응책이 가져올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는 것도 같습니다. 포항에서 화장장 한 개를 둘러싸고 7개 읍·면이 경합했듯, 지금 정부는 소멸 위기에 처한 지방도시끼리의 경쟁을 유도하고 있어요. 지난해 말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제1차 인구감소지역 대응 기본계획'에 따르면, 각 지역은 이제 수조원대의 정부 기금을 놓고 누가누가 더 많은 일자리를, 더 나은 정주여건을 만들 수 있는지를 다투게 됩니다. 때마침 전국 광역자치단체들은 '특별자치도'로 승격해 자치 권한 강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를 계기로 '지역정당' 운동도 일어났고요. 모두 지방에 더 큰 자율권과 더 큰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는 취지를 띱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상향식(Bottom-up) 결정', '직접 민주주의', '풀뿌리 자치권' 같은 말들로 뒷받침됩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콘트롤타워 없는 무한경쟁'의 다른 말이 될지도 모릅니다. 문재인 정부의 비전이자 지난 선거를 앞두고 화두가 된 '메가시티'는 조금 달랐습니다. 수도권에 비견할만한 초광역권(예를 들어, 부산·울산·경남)을 키워 그 안에서의 협력과 상생을 지향했어요. 메가시티 안에서는 화장장이든 산업단지든 고속철로든 서로 가져오려고 경쟁할 게 아니라, 지자체 간 협의를 통해 적재적소에 배치해 경쟁력을 키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부산은 부산대로, 울산은 울산대로, 경남은 경남대로 전략적으로 움직여 성과를 내야 하는 체제로 가고 있습니다. 그 아래 시·군·구, 읍·면·동도 물론 마찬가지고요. 지난 20여년 동안 공공기관 이전이든 메가시티 논의든 지방소멸 추세에 반전을 가져오진 못한 건 사실입니다. 그사이 수도권을 빼고 전국이 사실상 인구감소지역으로 돌아섰습니다. 다가올 '경쟁하는 지방시대'가 지역 자생력 강화로 이어질지, 한바탕 각자도생에 그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일단, 거창군의 실험이 성공하길 바랄 뿐입니다. |